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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氏


나는 꼼짝없이 식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엊저녁 퇴근길에 사온 콩이-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집안이 좀 덥군."

얼어붙은 채로 노려보는 나에게,
콩은 의아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왜 그러나?"

기가 막혀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나저나 자네, 나를 먹겠지?"
"그러겠지."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이래서야 어디 먹을 마음이 나기냐 하겠냐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콩이 말을 건넨 순간부터, '먹느냐 안 먹느냐' 가 아니라
'죽이느냐 마느냐' 란 문제가 돼버린 것입니다.

"아쉽군."

콩은 입맛을 다셨습니다.

"하지만 살만큼 살았으니 미련은 없네."
"그러면 다냐?"

화가 치민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내 평생 콩이 말한다는 얘긴 들어본 적이 없어! 콩이 말하는 건 정상이 아니야.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서 멋대로 지껄이더니 미련이 없다고? 너는 그럴지 몰라도 난 아니라구. 이제 콩을 먹긴 다 틀린 거지. 비위가 상해서 먹을 수가 있겠어? 그뿐 아니야. 앞으론 뭘 먹든 그게 갑자기 말을 걸면 어쩌나 불안에 떨 거라구. 새우가 말하고, 고등어가 말하고, 무가 말하고, 사과가 말하면 어쩌지? '어르신, 제가 보기보다 아직 덜 익었는데요, 옆엣 놈을 먼저 드시면 안 될깝쇼?' 그러면 그걸 먹고 싶어지겠냔 말야. 찻잎이 말을 해도 볼 만 하겠군. 찻물을 붓는 순간 뜨겁다는 둥, 이러지 말라는 둥, 그냥 먹으면 안 되냐는 둥 떠들어 댈 테니까. 그런 밥맛 떨어지는 일이 또 있겠냔 말야. 너 같은 콩 따위야 팔자가 늘어져가지고 기껏해야 벌레 눈치나 볼 줄 알겠지만, 인간은 다르다고. 사는 게 얼마나 치사한 일인지 알아? 가뜩이나 눈치 봐야 할 일도 많은데 이제 음식들 눈치까지 보게 생겼으니 썅! 날 그 지경으로 몰아넣고 넌 그냥 편하게 가시겠다? 살만큼 살았으니까 미련은 없다고 말하면서? 이런 건방진 콩 자식!"

나는 길길이 뛰었습니다.
생각할수록 분하고 억울한 일이었습니다.
콩은 내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말했습니다.

"콩이 말하는 게 그렇게 드문 일인 줄은 몰랐네.
그런데 원, 그렇다면
그저 콩이 말하는 걸 본 적 있다고
친구들한테 수다나 떨면 그만 아닌가."

그러더니 콩은 아주 질려 버렸다는 듯,
영영 입을 굳게 다물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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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대체
문예창작위 l 2008/01/2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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