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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이십 년이나 말을 안 했다면 다들 놀라지.
지금 자네는 영 못 믿겠다는 얼굴이지만, 그런 반응이 당연하니 미안해하진 말아.
그렇지만 난 정말 한 마디도 않고 살았거든. 마누라 죽고부터 말야.
처음엔 말을 딱 끊으니깐, 다들 내가
마누라 죽은 것 때문에 맛이 간 줄 알더군. 사정을 몰랐으니 뭐.

내가 말야,
젊었을 때 인기가 최고였네. 여자들한테 말야.
이 얼굴로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 말재주가 좋았거든. 입만 열면 여자들이 줄줄 줄을 섰지.
처음에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래 딱 지금 자네 같은 얼굴로 새침하게 앉아있던 여자도
내가 요 입을 열기 시작하면 슬쩍슬쩍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는 거야.
오분이 지나면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십분이 지나면 피식피식 웃기 시작하고
이십분이 지나면 고개도 끄덕이고 박수도 치고.
삼십분이 됐다? 그러면 이젠 뭐 제정신이 아닌 거지.
여자가 넋 놓고 듣느라 침을 흘리면서도 창피한 줄을 몰라. 넋을 놨으니까.
그때부턴 일사천리지. 어차피 아무 말이나 해도 재밌는 줄 아니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나도 모르면서 막 떠들어도 되는 거라구.

서른 살에 마누라를 만났는데, 마누라도 요 말에 넘어와서 시집 왔어.

그런데 요놈의 입이라는 게, 꼭 산 동물 같아서
장가 갔다고 꽉 다물어지는 게 아니었던 거야.
일단 여자가 나타나면 뭔가 생각하기도 전에 자동으로 입이 벌어져요.
그러면 또 술술 나오는 말에 여자들이 껌뻑껌뻑 넘어오고
그때부턴 이제 아랫도리가 제 차례라고 나서는 거지.
그러니 마누라 속이 엄청 썩은 거야.
귀신같이 눈치채고 펄쩍펄쩍 뛰는 날엔
내가 할 줄 아는 게 순 말하는 재주 뿐이니깐
또 말로 구슬리고 타이르고 했던 거지 뭐.

그렇게 이십 년을 같이 살았는데
내가 쉰, 마누라가 마흔 넷이던 해에
아 이 여편네가 덜컥 암에 걸렸다는 거야.
늦게 발견해서 뭐 손도 못 썼어.

숨 넘어가는 마누라 옆에 있자니깐 덜컥 겁이 나데.
마누라가 자꾸 정신을 놓더군. 그러니깐 더 겁나지 뭔가.
그래서 정신 차리라고 계속 말을 걸었어. 이 얘기 저 얘기 쉬지않고 막 떠들었지.
그렇게 마누라 손을 꽉 잡고 한참 떠들고 있는데, 드디어 무슨 말인가 하려는 거라.
유언인가 해서 잘 들으려고 입을 꾹 다물었는데. 아 이러더라구.

"진심이 아닌 건 열심히 말하지 마소."

그러더니 꼴까닥.

눈물이 쏙 들어갔네.
그러고나서 이십 년을 말 않고 산 거야. 마누라 말이 맞는 말이었거든.
같이 산 동안 헛소리만 열심히 해대며 살았으니깐,
적어도 그만큼은 말하지 말아야지 싶었네.
하긴, 마누라 말대로 사는 거나
아예 말 없이 사는 거나 별 차이 없었을 것 같기도 해.


영진공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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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대체
문예창작위 l 2008/02/0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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