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공 61호]우석훈 –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산업인력관리공단
2006년 10월 18일

대학 신입생이 되었던 9X년의 봄, 선배들이 쌀개방 반대 시위를 나가자고 했다. 당시만 해도 레드 콤플렉스가 만만찮았던 나, 쌀개방 반대라니 나가긴 나가는데 우루과이 라운드니 뭐니, 당최 못 알아먹을 말들뿐. 하여간 영문도 자세한 내막도 모른 채 그저 동원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거부감 팍팍 느껴지는 시위에서 쭈뼛거리면서 거부감 팍팍 느껴지는 방식으로 구호 따라 외치고 하다가 막간에 데모 나가자던 그 선배에게 좀 쉬운 말로 설명해 달라고 했다. 설명을 듣고 내가 물었다.

– 그러니까 우리가 데모하는 건 결국 쌀개방을 막을 순 없지만 좀더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하라는 압력인 셈이네요?
– (졸라 떨떠름하게) 그, 그, 그렇지…
– 그럼 애초부터 그렇게 설명하면서 데모 나가자고 하면 좋았잖아요. 농민들 다 죽는다 어쩐다, 절대 하면 안 될 것처럼 전단도 써놓고, 사실은 쌀시장은 결국 개방될 거라면서요.

이후 나는 데모에 나가지 않았지 않았고, 그 선배도 다른 선배도 내겐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배나 나나 얼마나 웃긴지. 나는 스스로 알아보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채 그저 운동권 선배들만 탓하고 있었다. 그 선배는 NL 특유의 살뜰히 후배 챙기는 척하며 꼬시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동원하고 있었다. 그저, 내가 어느 자리에 왜 서 있는지 스스로 알아야 한다는 알량한 자존심만 있었을 뿐, 호기심과 그를 채우기 위한 노력같은 걸 할 생각을 못하는 전형적인 ‘게으른 구경꾼’이었다.

링크

경제에 대해선 기본조차 없는 ‘교양없는 인간’이라 한미 FTA, 한-칠레 협정, 우루과이 라운드, WTO 등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다. 그냥 이제껏 속편하고 극단적으로 단순한 내 입장은 이거였다. “자유무역 안 하고 살 순 없지만 선진국과 ‘형식만 동등한’ 조건이라면 실질적으론 이쪽이 심하게 밑지는 장사다. 그리고 그 피해는 오롯이 여기 농민들, 하층 임노동자들이 질 것이다.” 스크린쿼타를 유지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런 기본원칙과 반세계화에 대한 책 몇 페이지에서 주워들은 지식을 짬뽕해서 이해했다. 너무 단순하긴 하지만 기본적인 입장에선 틀리지 않는다 생각한다. 게다가 미국이야말로 보호무역 비율이 만만치 않게 높다는 소린 어디서 또 들었단 말이지. 미국 섬유산업이 관세가 30%라지, 아마?

여러 블로그에서 ‘쉽고 알차게’ 한미 FTA의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고 극찬을 해서 이 책을 찍어두었다가, 저자의 블로그 글들에 (새삼) 반해버려서 신뢰를 갖고 이 책을 사서 읽었다. 결론. 한미 FTA에 대해 알고싶은 경제치들을 위한 최고의 책이다. 항간의 ‘쉽다’는 얘기는, 다른 어렵고 심도높은 책들에 비해 쉽다는 것이지, 담고있는 내용 자체가 경제치들이 손사래를 칠만한 대상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결코 쉽지도 만만하지도 않다. 다만, 꼭 알아두어야 하는 실질적인 내용들을 저자가 최대한 쉽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풀어썼다는 점에서, 쉽게 읽히고 쉽게 책장이 넘어간다. 게다가 이 책은 현재 진행중인 한미 FTA의 문제점에 대해 파악하는 것뿐 아니라 현재 가장 기본적인 경제학적 툴의 모습, 경제학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에 관해 명료하고도 간결한 예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같은 경제치들에게 필독서로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예를 들면 각 선진국이 택하고 있는 경제발전 모형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들, 한국의 미래가 이제껏 어떤 길을 걸어왔으며 지금의 한미 FTA의 어떤 문제점 때문에 어떤 문제를 안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경제치들이 대강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쉽고 간결한 근거들 위에 설명되어 있다. “무조건 개방은 안 된다”도 아니고, 디립다 협박만 늘어놓는 방식도 아니다. 지금의 이 협상방식에서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정확히 어떤 점이 어떻게 위험한지, 중학생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찬찬히 쉽고 친근한 어조로 아주 실용적이고 일상생활에서 시작하는 조근조근한 논리와 함께 펼치고 있어서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경제학이 어려운 학문이라는 건 여전해 보이지만, 그 경제학도 실은 사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논리 위에 서 있다는 걸 발견한 건 과외의 수확. [맨큐의 경제학]을 보다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진 전력이 있는 “심한 경제치”인 나로서는, 이 책이 여러 모로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책장도 어찌나 쉽고 빨리빨리 넘어가는지, 스스로가 신기했을 정도. 앞으로 이 책을 두 번 정도만 더 읽으면, 좀더 어려운 다른 책들도 좀 쉽게 읽게 될 수 있으리란 자신감도 조금 생겼다.

미국과 특수한 관계를 맺고있고, 수출, 그 중에서도 대미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이란 곳에서, 이런 식의 큰 협상은 내가 경제에 관심을 갖고있건 아니건, 물적 토대를 뿌리부터 뒤흔들며 나의 가장 사적이고 개인적인 삶에까지 어느 순간 영향력을 끼치게 돼 있다. 안타까운 점은 요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경제니 정치니 하는 게 “겁나먼 왕국”에서 일어나는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는 것, 뭐 좀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기웃거려 봐도 이 무식하고 게으른 인간이 아무래도 쌩기초도 없는지라 도무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사실, 참 미안스러운 만큼 고마운 책이다. 아무래도 내가 무식한 건 결국 게을러서인데, 그런 게으름뱅이조차 이렇게 쉽게 뭐가 문제고 뭐가 중요한지 관심을 가지게 해줄 만큼 쉬운 책을 써준다는 것. 이건 사실 밥상을 차려놓는 것도 모자라 아예 밥을 끓여 죽을 만들어서 입 앞에 떠준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걸 삼키느냐 거부하느냐는 각자가 선택할 몫이지만, 아직은 ‘무식한 주제에 게으르기까지 한’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 이런 분들이 쉽고 재미있는 책들을 계속 좀 써주셨으면 한다.

산업인력관리공단 조사1부 부장
노바리(invinoveritas@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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