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공 61호]나는 모든 것을 할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재외공관소식
2006년 10월 18일

내가 고3때였다 . 춘추복을 입은 학생들과 하복을 입은 학생들의 비율이 50:50인걸로 봐서는 여름에서 가을로 막 넘어가려는 때였던것 같다 . 2교시가 막 끝났을때였나 . 평소의 나는 늘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자마자 매점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뭔가 먹을것을 잔뜩 사가지고 우리 3학년들의 교실이 있는 3층으로 다시 쏜살같이 올라오곤했다 . 그 날도 그런 날이었다 . 다른 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

친구들은 복도에서 둘 혹은 셋이 짝을 지어 울고 있었다 . 눈에 띄는 아이들은 거의 이과학생들이었다 . 난 문과라 복도에 나와 있는 아이들중엔 친한 아이들이 별로 없었고 , 계집애들이 울 일이란 중차대한 이유는 아닐거라 생각해서 우리 교실로 그냥 쓱 들어와버렸다 .

“그 얘기 들었냐 ?”
“옆반에 걔 자살했다며 ?”
“접때 서울대 수시 넣었는데 떨어진것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
“안됐긴 하지만 … 그건 좀 그렇긴 하다 .”
“야야 . 그거 아니래 . 아버지가 재혼해서 … 그래서 그런거래 .”

굳이 친구 한명을 붙잡고 물어보지 않은 또 한가지의 이유는 , 여학교란 가만히 앉아있어도 ,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소문이란 것들이 귓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

(나는 여기까지 쓰고 잠시 손을 모으고 가만히 앉아 나지막하면서도 긴 한숨을 내쉬었다 . 늘 그때 왜 그러지 못했을까하는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 어쩔수 없는 , 어떤 운명같은 종류의 것이었다고 생각할때도 있지만 . 아니 . 난 그럴수 있었다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년까지는 그 아이의 이름이 기억이 났었지만 지금은 이미 7년이나 지난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여 그냥 ‘그 친구’ 정도로 불러야겠다 . 아무튼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했다는 그 친구는 , 분명 내가 아는 친구였다 . 한 학년에 12개 반 . 기껏해야 6백몇십명 . 2학년때 나는 학생회장을 해서 꽤 마당발인 편이라 친구의 친구들과도 아는 척을 하고 지냈다 . 친구들이 많이 생기는 것이 즐거웠으나 유독 , 공부 잘해 선생님께 총애받는 애들하고는 친해지기가 힘들었다 . 그 친구가 바로 그런 부류였다 .

3학년이 되고 나서는 모두 공부에 집중했다 . 수험생의 본능이라는 건지는 몰라도 , 그때는 모두 공부 잘하는 아이 하나를 중심으로 두고 잔챙이들이 같이 어울려 다니며 스터디 그룹같은것을 만드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 내가 보기엔 무척 재수없는 일이었다 . 당연할수밖에 .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반항적이었고 前 학생회장이라고는 해도 그건 성적순으로 뽑는게 아니었을뿐더러 , 난 공부에 취미가 없었다 .
2학년까지 주로 혼자 등하교를 했었던것 같았던 ‘그 친구’ 는 그 시기가 되자 주변에 점점 친구들이 늘어갔다 . 그 중에는 야간자율학습 시간만 되면 내 책상 앞으로 와서 화장이 잘 안받는다느니 했던 친구도 있었고 , 쉬는 시간만 되면 나와 같은 음악을 들으며 랩을 지껄였던 친구도 있었으며 , 쉬는 시간만 되면 앞마당에서 배드민턴을 쳤던 친구도 있었다 . 그 시기에는 , 모두 공부를 할수밖에 없었다 .
그 친구가 웃는 모습을 처음으로 본것도 그 시기쯤이었던것 같다 .

나는 늘 하교시간만 되면 그 당시에도 내 절친한 친구였던 ‘김양’ 과 함께 돈이 있는 날은 커피숍에서 김치볶음밥에 반주로 맥주 한잔 , 돈이 없는 날은 오락실 . 늘 이런 코스였다 .

그 날은 돈이 없는 날이었다 .

내가 그 당시 한참 유행하던 오락에 심취해 있을때 , 아까 이야기한 그 재수없는 한 무리 – 스터디 그룹 – 가 오락실에 들어왔다 .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져 게임을 하고 있는데 , ‘그 친구’ 는 내 옆에 앉아서 내가 하는 모양을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 당시 난 그 게임은 거의 캐릭터별로 엔딩을 다 본터라 눈감고도 할 정도의 실력이었는데 , 그 친구는 그 게임에 흥미가 있었던지 내 옆에 앉아서 내가 스틱을 조작하는 것을 보고 옆에서 조심조심 따라해보기 시작했다 .
그 날 그 친구를 보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샌님이 여긴 왜 와.’ 였었지만 이내 나는 속으로 즐거운 웃음을 띄웠었던 것 같다 . 잘은 모르겠지만 , 이 녀석도 나와 친구가 될수 있는 녀석이구나라는 비슷한 생각을 했었나보다 .
그게 일주일 전이었다 .

그리고 일주일 뒤 . 난 그 친구의 자살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 나는 그 친구와 한번도 같은 반이었던적이 없었으며 , 그 친구와 말 한마디 나눠본적 없었고 , 물론 스터디 그룹 따위를 같이 하지도 않았었다 .
나는 울지도 않았으며 , 우는 친구들에게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지도 않았다 . 책상위에 쌓여있는 과자더미들을 외면하고 대신 스콜을 쪽쪽 빨며 나는 , 그 친구가 그 지경에 이르지 않을수 있었던 – 그 중에서도 내가 할수 있는 – 모든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 친구가 되어줄껄 . 나와 비슷한 처지였는데 . 내가 도움이 될수 있지 않았을까 ? 그 친구가 표정이 약간 어둡고 성격이 활달하지 못하다 해서 왜 나는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던거지 ?
갖가지 가능성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머리에서 죄다 끄집어내지자 , 나는 현실로 돌아와서 그 친구는 이미 없다는 ‘사실’ 을 인지했고 이내 죄책감에 시달렸다 .

나는 모든 것을 할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

학생회장 출신
담패설(http://dampaesul.ddanzi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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