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공 61호]한 번 만나줘요, 016-xxx-xxxx 김하나

재외공관소식
2006년 10월 23일

한번 만나줘요. 너무 심심해요. 016-356-xxxx

짬지닷컴에 가끔씩 이런 글 남기는 사람들이 있다. 060으로 시작되는 번호인 경우, 그냥 삭제해 버리지만, 그렇지 않고 위에서처럼 핸드폰이거나, 지역번호가 포함된 전화번호라면 아무리 내가 운영자라도, 그냥 삭제하기란 쉽지 않다. 정말 심심해서, 전화번호를 남겼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심심하니까, 같이 그냥 얼굴이나 보고, 손이나 한번 잡아 보자고 전화번호를 적어 놓았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물론, 왜 하필 성인용품 쇼핑몰에 전화번호를 남겨 놨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 마음 알 수 없는 일이다. 고로 이런 경우, 보통 내가 먼저 전화를 해서, 본인이 남겼는가를 확인해 본다. ( 다른 마음이 들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 그런데, 여태껏 단 한번도, 실제 전화번호의 주인이 게시판에 번호를 남긴 경우는 없었다. 또한, 게시판에 남겨진 이름과 전화번호의 주인 이름이 일치하는 경우도 없었다. 김하나(가명)씨의 경우만 빼고.

몇 달 전의 일이다.
한번 만나줘요. 너무 심심해요. 016-356-xxxx 김하나 (가명)
이런 글이 사이트 자유 게시판에 올라왔다.
언제나처럼 확인 차원에서 게시판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김하나씨 되시나요?”
“네.”
허걱.. 김하나씨 되신단다. 이런..
“진짜 김하나씨 되시나요?”
“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허걱.. 진짜 김하나씨 되신단다.
이건 무슨 일이다냐.. 순간 당황했다. 그래도 마음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혹시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전화번호를 남긴 적이 있으신가요?”
“아뇨? 어떤 게시판인데요?”

헉. 없단다. 좆 됐다. 잘못하면 사건이 커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누군가 명의를 도용했다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이건 구속은 아니더라도, 팔자에도 없는 경찰서 출입이 가능한 시츄에이션이 될 수 있는 문제다. 어떻게든 일을 축소시켜야 한다. 어떻게든.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고, 어떻게든 문제를 축소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당황한 나머지
“전화를 잘 못 걸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바보이지 않은가? 이름도 묻고, 전화번호도 맞는데. 게다가 게시판 이야기까지 했는데, 잘 못 전화를 했다고 말을 하다니. 나의 어리석음을 안타까워하며, 고개 숙여 좆 잡고 반성하고 있는데, 역시나. 김하나씨한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일단 받았다. 피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니까.

“저기요. 어떤 게시판이죠? 어떻게 제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았나요?”
김하나씨의 목소리는 의외로 차분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당황해 있었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 하나.
[아. 예. 여기는 대출업체입니다. 김하나님의 전화번호는 xx카드를 통해 알게 되었으며, 고객님에게 연리 28%의 이자로 200만원까지 대출 가능한 상품을 알고 있어서, 소개해 드리고자 전화 드렸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막상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이렇게 말을 하면 거의 전화가 끊긴다. 예전에 대출 회사에서 전화가 왔을 때도, 나는 “아. 그래요? 제가 더 저렴한 상품을 알고 있는데요. 제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라는 멘트로 전화를 끊은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통할 것이다. 그렇지만, 문득 든 생각. 피하기만 해서는 되는 일은 아니다. 정말. 복잡한 일이 생긴다면, 거짓말을 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그래서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짬지닷컴 주소까지 이야기 해줬다. 사이트에서 확인해 보고 잠시 후 전화를 걸겠다며 전화를 끊은 김하나씨는 조금 있다가 전화를 해서는
“그냥. 그 글 삭제해 주세요.”
라고 말을 한다. 조금 힘이 빠진 목소리였다.
“그냥. 그렇게만 해도 되나요? 어디 신고 같은 것은 안하실 건가요? 저희 쪽 아이피 기록을 제공해 드릴 수 있는데요?”
솔직하게 말 한 이상, 할 수 있는 데까지 도와야 겠다는 마음에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렇지 않겠는가? 누군가 내 전화번호를 도용해서 이상한 사이트 ( 이렇게 적고 보니 이상하다. -.-)에 전화번호를 남긴다면, 그거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주어야 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지만 김하나씨는 됐단다. 누가 썼는지 알아내야 하지 않겠냐는 내 말에, 알고 있단다. 이제 그런 일 없을 테니 그만 두란다. 궁금한 마음 목구멍까지 치솟아, 캐 물어 보려 했는데,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런.. -.-

뭐, 막상 적어 놓고 보니. 별 것 아닌 이야기다. 당시에는 너무나 큰 충격이어서 ( 쇼핑몰 운영 몇 년 만에 처음 생긴 진짜 번호였고, 명의 도용이었다. ) 하루 종일 고민했었다. 왜 김하나씨는 그 번호를 쓴 사람을 찾지 않은 것일까? 누가 썼는지 안다면, 찾아내서 족쳐야 하는 것이지 않은가? 혹시 애정관계가 겹쳐 애인이 쓴 글인 건가? 아니면 정말 심심했다가, 안 심심해졌던 것은 아닐까? 오만 가지 생각을 하며, 고심을 해 봤지만 정답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오직 김하나씨만이 알고 있는 일이니 말이다.

아까, 내가 자주 가는 동호회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김하나 완전 올누드 사진
가명이긴 했지만 김하나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고 있던 나는 괜히 뜨끔했다. 그래서 재빨리 게시물을 클릭해 봤다.

제목 : 김하나 완전 올누드 사진

인생. 뭐 있나. 속고 속이며 사는 거지.

그나저나, 아직도 궁금하다. 김하나씨는 왜 그렇게 명의도용을 당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대처했던 것일까? 게시판에 이렇게 전화번호가 적힌 글이 올라오면, 나는 그 때의 일이 생각나 혼자 상념에 잠기고는 한다. 혹시.. 다중인격자? ( 오싹.. -.- )

영진공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산하
성역사연구회 과장
짬지(http://zzamziblo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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