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공 64호]<프레스티지> – 코디가 안티???

상벌위원회
2006년 12월 4일

1.

[유주얼 서스펙트]의 관람을 기다리며 줄을 서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절름발이가 범인이다아~!!!”를 외치던 그 녀석으로부터.

[식스 센스]포스터에 박힌 브루스 윌리스의 넓다란 마빡마다
“이 새끼 유령”이라고 큼지막하게 써 넣고 다니던 그 녀석을 지나

각종 포털사이트의 댓글란마다 돌아다니며 “[쏘우3]의 범인은 누구누구다.” 식의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테러를 감행하는 수많은 또라이들까지

도대체 3박4일을 고민해봐도”심심하니까”혹은 “욕 먹고 싶어서” 외에는
그 이유를 도-오저히 규정할 수 없는 수많은 스포일러들이
강원도 밤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처럼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는 판이니.
누구나 한번은 이들의 제물이 되어 영화관람을 망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당하고야 말았던 가장 극악무도한 스포일러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반전이 영화의 핵심을 이루는 그런 종류의 영화가 아니라
생뚱맞게도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몽땅 외우고 있다니 대단하지 않은가?)의 [21그램]을 관람하러 들어간 극장에서, 표를 받던 아가씨에 의해서 행해졌다.
미소띈 한마디(유독 다른 관객들 다 내비두고, 나한테만… 왜 그랬지? 미쳤나?)로 말이다.

“마지막에 반전이 있으니까 잘 생각해서 알아맞춰 보세요.”

….
반전? 어라? 21그램에 무슨 반전이 있지? 그닥 뒤집어지는 반전이 있을만한 내용이 아닌데?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단 말인가?
극장에서 일하는 아가씨니까, 뭔가 알고 이런 얘기를 하는 거겠지….? 오호라, 그렇다면 역시 뭔가 있는 것인가?


국 혼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이냐리투 감독의 전작 [아모레스 페로스]의 이야기 비비꼬아 전개시키기 신공을 생각해 낸
후, 21그램 역시 뭔가 기똥차고 획기발랄한 반전을 깊숙히 짱박은 영화일 것이라고 당연하게 결론내고 말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그노무 반전에만 신경을 집중시킨 채
오로지 “끝이 어떻게 날 것인가”에만 골몰하고 대굴빡을 서른여섯방향으로 굴려 대는 통에
영화 자체에는 단 한순간도 집중하지 못하고

감상을 완전히 망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는건데, 아마 그녀는 숀 펜이 죽는것을 황당스럽게도 반전이라고 표현했던 모양이다….이, 이런 썅…)

아무리 똥꼬가 탈장을 하고 콧구멍이 뒤집어져 콧털들이 죄다 발딱 일어서는 어마어마한 반전을 인디아나 존스도 찾지 못할만큼 조낸 깊숙히 짱박은 영화라고 해도,
“반전이 있다.”라는 사실을 인지해 버리는 순간 이미 영화가 주는 재미의 절반은 뚝 떼어 덜어버리는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무릇 뒤통수를 화끈하게 후려갈기는 반전의 맛이라는 것은, 아예 그것의 존재 유무조차 모르고 있을 때 당해야 제대로 당하는 맛(!)을 느낄 수 있는 것 아니던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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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도 아니고 휴 잭맨도 아니고 크리스챤 베일도 아닌
“기똥찬 반전”이란 타이들로 당 영화[프레스티지]를 광고하는 것은 그야말로

코디가 안티적인 행위

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음이다.
왜 이렇게 관객들로 하여금 최대한 재미없게 영화를 보게 해야겠냔 말이다. 응?

그놈의 반전히 뭔지 한번 알아맞혀 보시겠다고, 그래서 남들 다 놀라 자빠질때 혼자 팔짱끼고 껄껄대며 “내가 진작에 다 알아봤거등.”등등의 대사 한번 날려보겠다고
눈을 헤드라이트를 튜닝하고 덤비시지만 않는다면.
[프레스티지]는 충분히 볼만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다.

변칙이 아닌, 명확하고 클래식한 서사구조로도 멀쩡히 영화 잘 만들수 있음을
[인썸니아]에서 입증한 바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번엔 보든(크리스챤 베일)과 엔지어(휴 잭맨)두 주인공의 관점을 시간차로 나누어 세개의 시점으로 영화를 전개시킨다.(써놓고 나니 뭔 말을 한건지 모르겠다.)


점과 시점 사이마다 관객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킬만한 의문점들을 하나씩 남겨 놓은 후에 – 보든의 비밀, 엔지어의 비밀, 두
주인공간 대결의 결말 등등 – 후반부에 이것을 한방에 몰아 확 까발리는 전법을 취하고 있는 당 영화의 전개방식은

과정을 생략하고(또는 의도적으로 가려놓은 후에)결과를 먼저 보여주고, 보는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흥미롭게도 마술사가 마술을 보여주는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무릇 마술이란 비밀을 알고 난 후엔 허무하리만큼 간단한 법.

그러므로 당 영화가 막판에 까발리는 비밀이란 그렇게 기똥차게 기발하지도 않고, 뒤집어지게 놀랍지도 않다. 새장을 통채로 사라지게 하는 마술이 손수건을 걷어내고 나면 그저 새를 통채로 눌러 죽이는 무식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마술에 목숨 걸고 피똥싸는 경쟁을 펼치던 두 주인공이 끝끝내 감추려고 했던 커튼을 걷어서 보여주는 것은 엄청난 비밀이 아니라 끝없는 경쟁 속에 스스로의 손을 더럽힌 주인공들이 처한 현실이다.

놀란 감독이 당 영화의 반전을 그저”관객들 한번 뒤지게 놀래켜보자”라는 식으로 만들지는 않았다는 것은 명백하다. 아무리. 이렇게 뻔한 결말에 목숨을 걸 만큼 멍청한 사람일까.

커터(마이클 케인)의 대사처럼, 관객들이 마술을 즐길 수 있는 이유는
“굳이 비밀을 알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법 긴 상영시간동안 “너무 미리 알려고 하지 않는”미덕을 지킬 수 있는 분이라면
탁원한 이야기꾼인 놀란 감독이 “보여주는”이야기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상벌위원회 정규직 간사

거의 없다(1000j100j@hanmail.net)

“[영진공 64호]<프레스티지> – 코디가 안티???”의 한가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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