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공 64호]<사형도수> 그리고 성룡

과거사진상규명위
2006년 12월 7일

성룡이 스타덤에 오른 <취권>은 내가 중학교 1학년이던 79년 9월에
개봉했다. 그 영화는 무려 5개월 동안 상영하면서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서울관객 90만을 기록했는데, 이 기록은, 내 기억이
맞다면, 십여년이 지난 뒤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에 의해 깨졌다. 그때 취권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는데, 당시
신문광고에는 이런 선전문구가 실렸었다.‘취권을 보기 위해 서둘러 머리를 깎으신 6학년 여러분…’

그 해 겨울, 난 친구와 함께 취권을 봤고, 짜장면을 먹고 집에 갔다. 어린 애들이 다 그렇듯 난 이 영화를 보고나서 한동안 무술흉내를 냈고, 젓가락 같은 걸 집을 때도 무술의 초식을 구사하는 것처럼 생쇼를 했다.

당시 다른 극장에선 <사형도수>라는, 역시 성룡이 주연한 영화가 상영 중이었다. 취권의 위세에 눌리긴 했지만
그 영화도 무려 55만의 관객을 불러 모았는데, 국산영화는 10만, 외화는 30만 정도가 들면 대박이었던 시절인 걸 감안하면
성룡 혼자서 140만의 관객을 동원한 건 거의 신화적이라 하겠다. <취권>을 보기 위해 돈을 탄 것만 해도 엄마에게
죄송했기에, <사형도수>까지 볼 염치는 내게 없었다. 두 개를 같이 본 친구들은 “둘 다 재밌다.”며 내 염장을
질렀는데, 그 이후 성룡이 나온 영화는 죄다 봤지만 <사형도수>는 오래된 빚으로 마음 속에 남아 있었다. 오늘 밀린
잠을 자려다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니 마침 <사형도수>가 막 시작하는 중이다. 난 잠자는 걸 잠시 뒤로 보류한 채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27년, 강산이 세 번쯤 변했을 긴 시간이다. 그때 중학생이던 난 지금 마흔살의 배나온 아저씨가 되어 버리고 말았지만,
성룡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귀엽다 (피부는 물론 옛날이 좋지만). 영화 내용이야 뭐 뻔하다. <취권>에서
‘소화자’라는 무술의 고수로 나온 영감이 이번엔 ‘백장천’이란 고수로 나와 성룡에게 무술을 가르치고, 성룡은 사부의 목숨을
구하며 사형권의 멸문을 막는다는 것. 단순한 스토리와 느려터진 액션, 지금 애들이 보면 하품이 나올지 모르지만,
<취권> 이후 성룡에게 홀딱 반해버렸던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성룡 신화의 기원이 된 그 영화를 봤다. 거지로
변장한 백장천에게 친절을 베푸는 성룡, 그런 성룡이 맨날 두들겨 맞고 사는 처지란 걸 알자 백장천은 바닥에다 발자국 그림을 그려
피하는 법을 연습하도록 한다. <취권>에서 성룡이 반찬을 집는 걸 소화자가 현란한 젓가락 무술로 방해하는 장면이
나온다면, 이번 영화에서 백장천은 사기로 된 밥그릇을 안 뺏기는 묘기를 선보인다. 컴퓨터 그래픽 같은 건 생각도 못했을 테니 다
진짜일 터, 그때 이걸 봤다면 아마 집에서 그릇 깨나 깨먹었을 것 같다.

<사제출마>, <소권괴초> 등의 영화로 명성을 이어나가던 성룡은 <폴리스스토리>를 계기로
현대적인 이미지로 탈바꿈하고, <용형호제>부터는 아예 세계를 무대로 한 대작을 만든다. 그 영화를 찍다가 성룡은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침으로써 몇 달간 누워만 있어야 하는 신세가 되기도 했는데, 다행히 다시 일어나 ‘007에 맞먹는다.는 평까지
들은 <용형호제 2>를 비롯해 웃다가 죽을 뻔했던 <시티헌터> 등의 ‘명작’들을 내게 선사해 줬다. 그러고
보면 나는 사춘기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성룡과 더불어 살아온 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꼭 봐야 할 명작’들을 안보고 성룡
영화나 봤다.”고 후회하기도 했다. ‘성룡 영화는 남는 게 없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였는데, 심지어 난 내가 영화평을 못쓰는
걸 성룡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적반하장이란 건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다.

내가 식상한 탓인지 성룡이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2000년대 이후 성룡의 영화들은 재미가 좀 덜해졌다. 그럼에도 내가
<턱시도>나 <러시아워 2>같은 범작들도 꼭 극장에서 봐주는 이유는 물론 성룡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지만,
잠시나마 성룡을 미워했던 나 자신에 대한 반성도 있다. 27년이 지났건만 성룡은 여전히 건재를 과시하고 있고, 올해 개봉했던
‘BB 프로젝트’는 다행히 예전에 느꼈던 재미를 듬뿍 담고 있었다. 만년소년 성룡이 언제까지 영화를 만들지 모르지만, 성룡이
나오는 영화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볼 생각이다. 성룡은 그 이름만으로 날 극장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배우다.

과거사진상규명위 상임간사
서민(bbbenji@freechal.com)

“[영진공 64호]<사형도수> 그리고 성룡”의 한가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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