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공 64호]조셉 맨케비츠, <이브의 모든 것>

산업인력관리공단
2006년 1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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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의 모든 것
성깔 나쁘고 히스테릭한 40줄의 여배우 마고 채닝(베티 테이비스)에게 숭배자가 나타난다. 마고 채닝을 유명하게 해준
연극들의 극작가, 로이드 리처즈의 부인 캐런 리처즈를 통해서다. 우아하고 순진한 외모와 겸손하고 고운 말씨를 가진 이브
해링턴(앤 백스터)이라는 이 여자, 마고 채닝의 비서로 마고의 깐깐한 성깔을 견디어내면서 마고와 그녀의 연인이자 짝꿍 연출가인
빌 샘슨, 캐런 리처즈, 로이드 리처즈, 그리고 이들의 연극 제작자 맥스 패비언의 신뢰와 애정을 듬뿍 받는다. 열렬하게 마고
채닝을 ‘모방’하던 그녀를, 마고는 어느 순간 경계하기 시작하고, 주변인들 모두는 마고의 히스테리에 진절머리를 내며 이브를
동정하고, 그리고 이브는, 이브는…

영화의 시작은 사실, 이브가 권위있는 연극협회의 여배우 상을 수상하는 장면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그녀의 정체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조셉 맨케비츠는 중요한 순간마다 조금 더, 카메라를 배우들에게 멈추어 줌으로써 충분한 암시와 예상을 제공한다.
하지만 순전한 열정과 우아한 겸손의 얼굴을 갖고 있는 이브를 의심하기란 쉽지 않다. 모든 남자들이 그녀를 찬미한다. 모든
남자들이 마고를 지긋지긋해한다. 그리고 이는 남자들뿐만이 아니다.

기막힌 대사들을 써내려간 조셉 맨케비츠의 각본은, 표면적으로는 명성을 누리고 있는 원숙한 중년 여배우와 야망에 찬 젊은
신인 여배우의 대립을 중심에 놓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밑에서 작동하고 있는 권력의 작동 방식을 좀더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모든 권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좌지우지하는 듯한 마고의 권력은 실은 명목상의 권력이다. 여배우란 실은 꼭둑각시
인형에 불과하며, 이 인형뿐 아니라 연극판 전체를 움직이고, ‘유명 여배우’를 키워내는 건 결국 제작자와 감독과 각본가의 몫,
바로 이들이 실질적인 권력을 쥔 자들이다. 제작자, 연출가, 각본가, 여배우, 심지어 평론가까지 등장하는 한 무리의 연극쟁이들
중에서 ‘남자배우’가 없다는 점을, 영화 안에서는 이상하다고 느끼기 힘들다. 그러나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그것은, 실은 이
게임의 권력 싸움의 본질이, 지는 일만 남은 보름달 마고와 차오를 일만 남은 초승달 이브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작 이제
마흔을 앞둔 배우와 스물네살의 배우를 대립시키는 이, 이들을 철저하게 소모품으로 부려먹으며 그저 앞에서만 오냐오냐 해주는 이,
즉 인형의 줄을 움직이는 이는 따로 있다. 마고가 이브를 의심하며 이브를 두둔하는 모든 ‘남자들’, 즉 권력자들과 대립할 때
마고에게 쏟아지는 이 권력자들의 속내의 표현을 보라. “언제부터 여배우가 ‘생각’이라는 걸 했는가?” 남자배우는 이 대립판에서
걸치적거리는 존재다. 현명한 감독이라면 그 존재를 생략할 수밖에 없다. 싸움을 붙이는 이는 남자들이고, 정작 선수들은 여자들 –
마고, 이브, 캐서린까지 – 이다, 여자들끼리 싸운다. 그 싸움의 승자가 새로운 사용품으로 선택된다.

그러나 맨케비츠의 각본이 재미있는 것은, 그럼에도 이 영화의 주인공은 마고와 이브라는 것이다. (물론 이브의 정체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이전의 영화 전반부는 저 유명한 정통 미스테리의 전통적 구조, 즉 ‘모두가 한 사람 바보만들기’도 효과적으로
힘을 발휘한다.) 평론가 애디슨 드윗을 제외하고, 이 모든 권력자들은 그들이 꼭둑각시로 놀던 이브에게 모두 놀아나며 장기판의
말이 돼버린다. 체스의 퀸이 체스두는 이를 말로 부리는 싸움, 이건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 안에서, 용도가
다 돼가는 소모품이 새로운 소모품으로 대체되는 과정은 반복되고, 그 주기는 계속 짧아질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대체품의 숫자는
말그대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이브의 생명은 마고의 생명보다도 훨씬 짧을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피비는
또다른 이브이다. 이브가 각본가의 아내라는 간접적인 연줄에 접근하고 ‘불쌍한 이야기’로 자신을 포장하여 동정을 얻고…
등등등을 통해 공들여, 오래 시나리오를 짜고 실행한 것과 달리, 피비는 훨씬 저돌적이고 직접적이며 더욱 큰 야망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굳이 이브처럼 ‘착한 척’을 하지 않는다, 할 필요도 없다. 이브의 가운을 걸치고 이브의 트로피를 들고 ‘상받는 연습’을
하는 피비가 거울 속에서 무수한 숫자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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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각축장. 마릴린 먼로의 모습도 보인다.

재미있게도 이 영화는, 그리하여 해피엔딩이다. 연하의 연인 빌의 외도를 항상 신경쓰며 ‘여자로서의 삶’을 원했던 마고는 결국
생명이 다한 여배우가 되긴 했지만 빌 샘슨과 결혼을 한다. 모든 것을 희생시켜가며(삶 자체가 연기였던 – 이는 영화 초반에서부터
이브의 직접 대사를 통해 설명된다) 연극무대에서의 성공을 원했던 이브 역시 그토록 원하던 헐리우드행 티켓을 따낸다. 캐서린과
로이드 부부는 금슬을 회복한다. 빌 샘슨은 여전히 훌륭한 감독이며, 로이드 리처드는 여전히 훌륭한 각본가이고, 맥스 패비언은
여전히 성공한 제작자이다. 애디슨 드윗 역시 자신의 명성을 굳건히 지켜나가는 – 팬클럽의 여고생조차도 한번에 알아차리는 –
유명한 평론가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소위 공/사 양 부분에서 모든 것을 얻는 남성 캐릭터들과 달리, 여성 캐릭터들이 얻은
행복이 다른 것을 희생하고서 얻은 것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소위 ‘사적 행복’을 얻은 마고는 당대 최고 여배우로서의
권력을 다른 이에게 이양(당)했고, 떠오르는 최고의 배우가 된 이브는 친구와 후원자를 잃고 드윗에게 종속당한다. 게다가 이브가
얻은 성공의 생명은 더없이 짧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브의 권모술수가 제재를 당한 건 그녀의 야망이 남자의 권력을
(조금이나마) 위협했을 때다, 그러나 남자들의 권력은 안전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그녀의 야망은 제지당한다. 빌 샘슨 – 마고
채닝처럼 실질적 권력자와의 결합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보장하려 했던 – 그리고 완벽한 창작자 커플을 이루려 했던 – 이브의
야망은, 드윗이라는 또다른 권력자에 의해 제재받고, 조정된다. 맨케비츠가 이 모든 걸 염두에 두었는지 의식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여성의 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남자들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속성을, 맨케비츠는 현대의 영화감독들을 훨씬
앞지르는 통찰력으로 그려내고 있다.

산업인력관리공단 조사1부 부장
노바리(invinoveritas@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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