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 무나: “21세기”, <산업인력관리공단>, <영진공 66호>

산업인력관리공단
2006년 1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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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무나 감독
동지이자 친구였던 ‘이주노동자 자히드’가 ‘다큐멘터리 감독 사이드 무나’가 되어 돌아왔다. 이주노동영화제에서 상도 탔다는
그의 영화 <21세기>를, 나는 어제 후원의 밤에 가서야 봤다. 현재 방글라데시에 큰 이익을 안겨주고 있다는
의류산업의 장에서, 전체의 약 80%인 여성노동자들은 한달 겨우 1,000 ~ 1,500 다카(약 2만원)를 받고 일한다.
1인당 최저생활비가 3,000다카는 필요한 상황에서. 아침 8시부터 밤 12시, 어떨 땐 새벽 2, 3시까지 일을 하고 돌아와,
새벽 4시부터 화장실에 줄을 서서 물을 받아 식사준비를 하거나 씻고서 출근하고, 시간 외 수당은 전혀 받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일하는 동안 문을 밖에서 잠그기도 하고,  중간 관리직인 남성 노동자들과 고용주에게 일상적으로 성폭력에 노출돼 있는 아주
열악한 상황. 그 안에서 방글라데시의 의류노동자들은, 스스로 모여 스스로를 조직하고 투쟁에 나섰다. <21세기>는
감독의 개입이 전혀 없이(그 흔한 내레이션이 한 줄도 없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쌩으로’ 그대로 전하며 이들의 상황을,
그리고 고조되는 투쟁에의 의지를 ‘스스로 카메라에 대고 고발 / 고백’하게 하는 데에 그 진짜 미덕이 있다. 비록 짧은
러닝타임과 조금은 서툰 구성일지라도, 그 구체적인 지리적 장소가 방글라데시의 의류산업 공장이었을 뿐, 한 나라의 중추적 산업에
있어 정부-자본의 합동작전 하에 육체노동을 담당하는 여성 노동자가 처하게 되는 상황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건 어느 나라, 어느
산업에서도 같다. 우리나라에선 바로 6, 70년대 청계천으로 대변되는 의류산업이 그랬고, 이젠 서비스산업으로 옮겨갔을 뿐,
그리고 민주화 투쟁을 통해 착취/억압의 방식이 조금 더 세련돼졌을 뿐.

[#M_ 접은 부분은, 영화상영 후 감독-관객 간 대화|less..|

Q. 방글라데시에서 실제 노동자들의 경제적 사정이 어떤가?

A. 1971년부터 2001년까지,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은 960다카였다. 한국 돈으로 1만원 가량 된다. 한국에서 현재 한
끼를 밖에서 먹을 때 드는 밥값이 4~5,000원 정도라 할 때, 그 상당의 식사를 하려면 70다카가 든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60다카 정도 하는 도시락을 먹곤 한다. 이 노동자들의 집을 가 보면, 가구가 밥통, 물통, 그리고 그 사이에
매달아놓은 끈이 전부다. 그 끈에다 옷을 건다. 바닥도 거의 맨바닥. 서울역 등에서 노숙자들이 박스를 깔고 덮고 자곤 하는데,
거의 그렇게 생활한다고 보면 된다.

영화에서 인터뷰에 응한 노동자는 1,500다카를 받는다고 하는데, 그 사람 정도면 아주 잘 받는 축에 속한다. 의류공장의
노동자는 80%가 여성이며, 이들은 주로 시골에서 돈을 벌기 위해 올라왔고 집이 없으므로 당연히 밀집지역에 방을 구할 수밖에
없는데, 미혼 여성들은 방을 얻기가 힘들다. 지역 깡패들이 여성들을 괴롭히고, 방주인들은 이런 복잡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 미혼
여성들에게 방을 내주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 여성들은 회사에서 20%를 차지하고 있는 중간관리직 남성 노동자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중간 관리 노동자들이 여성들에게 성 상납 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공장 내에서도 협박과 성폭력은
아주 일상화되어 있다. 중간관리직 남성 노동자는 물론이고, 고용주가 심지어 자기 친구들까지 동원해서 여성 노동자들에게 성희롱을
일삼는다. 고용된 여성 노동자가 예쁠 경우 야간 작업조로만 돌리고는 밤에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식이다. 귀가 길에서도 문제다.
지역 깡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경찰한테도 고초를 당하게 되는데, 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여성들에게 이들은 자신이 성매매 여성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출퇴근 카드에는 실제로 밤늦게까지 일을 했음에도 7시에 퇴근한 것으로 돼 있어 괴로움이
많다.

화장실에 가는 것도 어렵다. 잠깐 미싱 앞을 떠나 있는 게 관리직 눈에 띄면 200다카를 벌금조로 월급에서 제해버리곤
한다. 일하는 동안 감금당하는 일도 부지기수이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일년에 몇 차례씩 의류공장에서 대형화재가 나곤 하는데, 이렇게
감금돼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명피해도 그만큼 높다. 공장 내엔 비상계단이 없거나 있어도 매우 좁고 위험해서, 화재가 나면
대피하는 와중에 부상을 당하는 일도 많다. 심지어는, 화재가 나면 혼란 와중에 회사 재산을 훔쳐가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오히려
문을 닫아버려 인명피해가 더 증가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도 치타칸이라는 지역에서 실제로 화재가 났는데, 정부와 언론에서는
사망자의 숫자가 약 400명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들과 노동자들이 파악한 숫자는 무려 1,400명이다. 이것을 어떻게 알았냐
하면, 그날 공장으로 배달된 도시락인 1,400개였기 때문이다. 공장 안에서 노동자가 다 죽었고 그 숫자는 1,400명이었다.
이런 일이 1년에 몇번씩 발생한다.

영화 속의 투쟁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의류노동자들이 30년을 그렇게 살다가, 인터뷰에서도 말을 했던 분이 가먼트
포럼(Garment Forum)을 조직을 했다. 노동조합은 아니지만, 노동자들의 투쟁을 하는 단체다. 가지푸르에서 5개 공장을
중심으로 파업을 주도했는데, 가지푸르 사거리에서 경찰 폭력 때문에 2명이 사망했다. 그 다음날, 50여 개의 공장에서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여했고, 이 날도 2명이 죽었다. 그러자 그 다음엔 전국에서 300만 명이 집회에 참여했다. 조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때 거의 1주일 동안 전쟁 분위기였다. 공장에 불을 지르기도 하면서 투쟁이 계속되자 정부가 나서서 사장들의 단체와
함께 협상을 중재했다. 노동자들의 8개 요구안을 수용하기로 약속하고 투쟁이 멈추었는데, 2달 후 정부는 1인당 최소 생활비가
3,000다카는 필요한데 최저임금을 1,100다카로 올렸고, (노조는 아니라도) 노동자 단체를 만들어도 된다는 허가를 내줬다.
그래서 지금 노조를 만들려는 작업이 한참 진행중이다.

재미있는 게, 물론 방글라데시에서도 정부, 사장들의 편을 드는 나쁜 지식인들이 있다. 그 중 아주 보수적인 지식인이 책을
하나 썼는데, 거기에 “노조는 필요하다, 지난 번 그 전국적인 파업은 노조가 없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라고 썼다. 정부와
사장들의 단체가 이것을 받아들여 노조를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기 전에 사장 단체가 자기들
말을 잘 듣는 노조, 일명 어용노조를 결성을 하려고 하고 있다. 복수 노조를 허용하지 않는, 1개 회사에 1개의 노조를 허락하는
조항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희망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저 투쟁을 이끌었던 가먼트 포럼이 노동자들에게 신뢰를 받게 됐다는 것이다. 이제
많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찾아와 스스로를 조직화하려 애쓰고 있으며, 가먼트 포럼의 지부를 신청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미
만들어진 노조들은 대부분이 아직 어용노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한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조직화하자 경찰이 지도부를 연행해
갔다. 다음 날 또 조직을 만들자 이번에는 조직의 새 리더들이 실종되었다. 이들은 공장에도 집에도 안 돌아왔고 간 곳을 아무도
모르기에 우리는 납치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다음 날 또 조직을 만들자 결국 사장 단체가 방글라데시 내에 이름이 좀 알려진
다른 조직의 노동자 리더 8명을 데려와 협상에 임했다. 그런데 협상에도 불구하고 그곳 노동자들은 더욱 투쟁을 했고, 이에 대한
이유를 묻자 투쟁하던 노동자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 8명은 우리 조직의 리더도 지도부도 아니다. 그 8명은 오히려 우리를,
노동자들을 팔아먹었다. 일을 조금 시키는 대신 보너스를 25%에서 15%로 삭감하는 협상에 서명했다.”

Q. 언론의 반응은 어떤가?

언론도 사업체일 뿐이다. 다들 커머설(Commercial – 상업적) 미디어들인 것이다.

Q. 정부는 이 상황을 모두 알고도 묵인하는 것인가?

A. 그렇다. 사장들의 단체가 정부를 움직인다. 방글라데시에서 의류산업은 아주 크고 중요한 산업이다. 사장들의 단체는
여당이고 야당이고 할 것없이 정치자금을 제공하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어도 노동자들의 편을 드는 정치가는 없다.모두 사장들의 편을
든다.

Q. 내가 아는 사이드 무나는 이주노동자 조합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미디어 감독이 되어 나타나서 개인적으로 참 놀랐다. 어떻게 미디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인가?

A. 내 20대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보내며 이주노동자로 일하면서 노동운동을 배웠다. 방글라데시에 돌아간 후 처음엔 너무
힘들었다. 입만 열면 한국 얘기라고 친구들이 구박할 정도였다. 그런데 방글라데시에서 보니, 한국에서의 내 생활은 너무 편한
거였다. 생활은 (방글라데시의 노동자보다) 훨씬 편한데 투쟁은 훨씬 더 치열하게, 무섭게 했다. 방글라데시에서 노동자들의 상황은
너무나 열악하다. 그런데 나는 사실 학교에 다닐 적 학생운동을 했다. 인터뷰에도 나온, 가먼트 포럼을 만든 분이 내가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 선배였다. 그 선배를 찾아가 내가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 물었더니 당장 자기 단쳉 들어와 일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난 그게 좀 아닌 것같았다. 내가 의류노동자가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그냥, 연대할 다른 방법을 찾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노동자들을 만나보면, 사람들이 너무 착하다. 한국에는 방글라데시가 못사는 데도 행복지수가 높다는 말이 떠돌고
있는데, 그건 결국 바보라서 그런다. 그렇게 착취당하고도 행복하다고 말하고, 밤새 남편에게 맞아도 다음날 아침에 행복하다고
말하다. 바보라서 착한 거다. 가먼트 포럼 사무실에 나가 그냥 이일 저일 조금씩 도와주면서 노동자들을 만나고 친해지고, 그분들
집에 찾아가 그 열악한 상황을 보면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치가들을 만나거나 하면, 처음에 혼자라고 무시를 많이 당했다. 거의 쟨 뭐냐, 분위기. 후배 학생들을 만나러
가면, 얘네들은 “우리도 다 알지만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우린 안 돼”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거다. 그때, 카메라를
떠올렸다. 한국에서 명동성당 천막농성을 할 당시, 사실 카메라가 천막 안에 들어오거나 인터뷰를 하자고 하거나 하면 솔직히
귀찮기도 하고 신경질도 나기도 했는데, 그 카메라가 떠오른 거다. 카메라로 우리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려야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ETV에 들어갔다. 여기는 그나마 약간은 진보적인 방송국이었고, 결국은 정부의 탄압을 받고 문을 닫아야 한 이후 지역
미디어 교육 등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함께 공부하면서 만난 친구들, 여자 넷, 다른 남자 동지 둘과 팀을 꾸렸다.

한국에서 투쟁하면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가사가 있는 노동가도 부르고 했는데, 방글라데시에서는 정말,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많다. 인간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동운동을 직접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디어 운동도 굉장히
중요하다. 학생단체들은 자기네들도 다 안다고 하지만 실제론 잘 모른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게 됐다.

Q. 노동운동과 미디어운동이 마치 양립할 수 없는, 분리된 것처럼
얘기하고 있는데, 그것도 반-자본주의라는 하나의 큰 틀로 같이 볼 수 있지 않을까? 방글라데시에서 지금의 투쟁이, 나에게는
반독재투쟁과 반자본주의 투쟁이 섞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반자본주의 투쟁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상황이
어떤가?

A. 노동운동과 미디어운동이 양립할 수 없다거나 분리돼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제까지 내가 받은 질문들 중엔,
노동운동을 해야지 왜 미디어를 하고 있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렇게 대답을 한 거다. 반자본주의 투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내와 국외를 막론하고 단결과 연대가 필수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미디어를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현재
방글라데시에서는 ‘연대’라는 말 자체가, ‘단결’이란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단결과 연대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동운동을 직접 하는 것보다도 미디어운동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Q. <21세기>는 한국에서만 상영된 것인가?

A. 그렇지 않다. 일단 국내에서 상영을 했고, 내가 개인적으로 한국에 추억이 많기 때문에, 특히 한국에서 꼭 상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한국에서 상영을 한 거다. 현재 21세기는 터키의 노동영화제와 캐나다의 토론토인권영화제에 가 있다.

Q. 많은 사람들이 21세기를 봤으면 좋겠는데, 유투브와 같은 온라인 상영도 했으면 좋겠다. 계획이 있는가?

A. 생각은 하고 있는데, 우리 그룹 멤버들 중 컴퓨터를 가진 사람이 단 한 명뿐이다. 우린 편집을 할 수 있는 컴퓨터도
가지고 있지 않다. 게다가 방글라데시에서 인터넷 속도는 매우, 매우 느리다. 사실 미디어 운동이라는 게 쉽지가 않다. 얼마
전에도 (독립 다큐멘터리를 찍는 문성준 감독을 가리키며) 잡혀갔다 풀려났는데, 방글라데시에서는 잡혀가고 풀려나고, 이런 거
없다. 그냥 죽을 거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경찰이나 군인 등이 갖고 있는 합법적인 총의 4배가 넘는 불법 총이 풀려있고, 이것은
깡패들이나 정치인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거나 암살할 때 쓰인다. 우리도 이런 미디어를 찍는 게 그냥 잡혀가고 풀려가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길가다가 그냥 죽을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사람을 참 쉽게 죽일 수 있다. 20만원만 준다고 하면
누구나 청부살인을 해달라는 요청에 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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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1. 자히드 씨가 긴급히 16일 귀국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와의 만남은 어제가 당분간 마지막이 되었다. 악수와
포옹을 나누며 그가 눈물을 흘렸다. 그가 한국에서 추방되었을 때와 달리 나는 울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때의 그는 언제나 어딘가
불안하고 지친 모습이었지만, 미디어 활동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지금의 사이드 무나는 자신감 있고 안정적으로 보인다. 그것으로
좋다. Take yourself, comrade.

ps 2. 사이나 무나가 속한 미디어 집단 “Break Through”는 현재 편집 컴퓨터는커녕 카메라도 없어 활동이 힘든
상황이다. 이 상황에 연대하기 위해(까놓고 말하면 카메라를 비롯한 영상장비 조달을 위해) 팀이 꾸려졌다. 자세한 내용은 브레이크 쓰루 블로그를 참조하시라.(후원금 내시란 얘기다.)

산업인력관리공단 조사1부 부장
노바리(invinoveritas@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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