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다리 위에서 노을을 보다. <재외공관소식>, <영진공 67호>

재외공관소식
2007년 1월 24일

첫 외박을 나가던 날.

포항에 집이 있는 영복이와 나는 꿈에나 그리던 라면을 두그릇째 비우고 있었다. 물론 자장면 한그릇을 비운지 10분도 되지 않아서다.

여름의 하늘은 맑았고 우린 아직도 20대 초반이었다.

두 그릇째의 라면이 비워지고 부대 바로 앞에 있는 치킨집에서 닭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신지 두시간. 시간은 어느덧 6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포항까지 점프해야 하는 영복이를 더이상 잡고 술을 마실 수는 없었다.

삼송리에서 버스를 타고 종로까지 나가 헌병이 없는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기위해 버스를 갈아탔다.

생각보다 버스는 막혔다. 반포대교를 올라탄지 10분째 아직 1/3도 오지 못한 버스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옆에 있는 영복이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붉게 물든 노을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영복이는 어디가 무척 아픈듯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영복아. 어디 아프냐?”
“아니, 아까 기름 많은걸 먹었더니 설사가 나올거 같아”

영복이는 버스 손잡이를 꽉 쥐며 다시한번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그 의지가 오래 갈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정체모를 휘득, 푹, 푸득튁 한 소리가 들렸고
다리에는

고무링에 걸린 정체모를 물체가 툭, 투둑~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영복이의 꽉잡은 손잡이의 손이 힘없이 풀린 것도 그 즈음이다.

“어떤 개새끼가 버스에서 똥을 싸”

승객중 누군가가 외친 한마디에 버스내부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뒷문이 열리고 버스기사 아저씨의 외침이 이어졌다.

“똥싼 사람 빨리 내려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영복이가 내렸고 난 좀 머뭇거렸다.
잠시 전우애보다 쪽팔림이 더 무서웠다. 논개가 왜장을 끼고 절벽에 뛰어드는 심정으로 내렸다.

노을은 어느덧 63빌딩 너머로 뉘엇뉘엇 지고 있었고 영복이는 하염없이 노을만 바라보고 있었다. 뜨거운 눈물이 붉고 굵게 흐르고 있었다.

“영복아, 잠시만 기다려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바지좀 사올게.”


결코 영복이와 같이 있는게 쪽팔려서 터미널로 달린게 아니었다. 혹시나 영복이가 반포대교로 뛰어내릴 때 어디를 잡아야 똥을
안뭍히고 잡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바지를 사올 때 까지 영복이는 붉은 노을에 자신을 온전히 적시고
있었다.

모든 군바리가 그런 것처럼 우리에게 돈이 많을리 없었다. 신발은 못샀고 바지는 터미널 화장실에 버렸으며 전투화는 헹궜다.

난 화장실 앞에서 망을 봤다. 세면대 물내려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로 봐서 막혔을 것이다.

수습이 끝나고 전투복 상의에 기장이 조금 짧은 흰색 면바지를 입은 영복이는 조금 어색해 보였다.

버스표를 끊고 포항행 고속버스를 타는 영복이의 뒷통수에 버스 운전기사가 낮게 중얼거렸다.

“어떤 새끼가 방구를 꼈나?”

88년 올림픽 벤존슨의 속도로 나는 고속버스터미널을 도망치듯 빠져 나오고 있었다…

추억은 몽글몽글 툭툭
그럴껄(tit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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