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at … 보랏!” <영진공 68호>

구국의 소리
2007년 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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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 간만에 정말 징한 영화 였습니다.

사챠 바론 코헨, 이 사람 평소 사진은 멀쩡하더만 역시 사람 속은 모르는 것.
뻔뻔함이라고 해야 할까, 용감함이라고 해야 할까, 혹은 광기라고 해야 할지도…

제가 보기에 이 영화는 전반과 후반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에서는 보랏이 미친 짓을 해댑니다.
미친 짓의 압권은 게이레슬링 쇼 입니다.
아즈맛의 그 푸짐한… 은 정말 대단합니다.
둘은 몸을 아끼지 않는 열연을 호텔 로비에서까지 해댑니다.
이 영화에 관련된 소송이 줄을 이을만 합니다.
(호텔에서는 체포될 뻔 한적도 몇번 있었다죠.)

그러다가 파멜라의 본색을 알고 나서 가방을 패대기친(그때 나는 꼬꼬댁 소리는 압권…-_-)
다음부터 보랏은 오히려 정상적이 되고 미국이 미친 짓을 해댑니다.

뭐 보랏이나 오순절날 거기 모인 사람들이나 비슷비슷해보이죠.
게다가 대법원장이라는 아저씨 나와서 하시는 말씀이 압권이고…

예로부터 광대들은 바보 광인 역을 하면서 세상의 모순이나 부조리를 까발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광대는 불가촉천민에 가까웠기 때문에 지배계급도 웬만해서는 그들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걔네들하고 상대하면 자기들 체면이 깎이는 셈이었으니..
게다가 그건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책이고 체제 유지의 보완책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소할 수 없다면 축적된 스트레스는 결국 체제를 위협하게 되죠.
민중이 광대의 광대짓을 보며 스트레스도 풀고, 사회의 모순을 맘껏 비웃는게
불만을 축적해뒀다가 반란을 일으키는 것보다는 나았던 셈입니다.
그러니 지배계급은 이런 광대들을 대부분 묵인해줍니다.
심지어 왕실에도 광대가 한둘씩 있기도 했었고요.

<왕의 남자>에서 사당패가 한 것도 그런 일이었고,
패로디 라는 말도 그런 광대짓에서 연유한 것이고,
인형극, 광대놀이 대부분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보랏을 보며 이런 광대 본연의 역할을 떠올린건,
이 영화가 바로 그 광대짓 정신을 이어받았기 때문이겠죠.

하나 더, 우리나라에서 이런 짓이 통했을지는 의문입니다.
사진은 로데오 경기장에서 미국국가에 맞춰 (가짜)카자흐스탄 국가 부르는 장면인데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짓을 했다면?

많은 이들이 보랏(혹은 카자흐스탄이라는 국가)에 감정이입하던데
저는 사실 그 불쌍한 미국사람들에 감정이입이 되더라구요.
광대 앞에서 나름 매너 지켜가며 상대해주려 노력하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도 그런 대우를 기대할 수 있었을까요?

영화속 미국인들의 태도를 위선이라고들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그런 위선이라도 기대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렇게 만든 영화를 우리나라에서 개봉했어도 흥행 1위를 할 수 있었을까요?
관객들은 즐거워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개봉 자체가 가능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때 그 사람>도 삭제 개봉되고, 의사 다루면 의사들이 들고일어나고
변호사 다루면 변호사들이 들고 일어나는 이 나라에서 말이죠.

그래도 누군가 미친 척 하고 정치인, 관료, 의사, 변호사, 교수들 한테 가서
이런 거 하나 찍어오면 참 재미있을거란 생각도 드는 군요.

이거 결국 몰래카메라와 같은 컨셉입니다.
단지 본색이 까발려지는 대상이 연예인이 아니라 점잖으신 분들이라는 게 차이.

이경규 아저씨는 고만고만한 연예인들 몰카나 찍지 말고
한번 이런 거 찍어보는 거 어떠실지.

물론 방송생명 끝장날 각오도 해야겠지만…

새해들어서도 계속 구국의 소리로 마실 나오는
국립과학연구소장
짱가(jjang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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