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기자와 영화 저널리즘” <영진공 68호>

언론중재위원회
2007년 2월 9일

영화 <중천>이 개봉했을 때 모 인터넷 영화기자와 CJ측과 오간 어떤 ‘싸움’에 대해 술자리에서 ‘대강’ 들었다. <중천>에 대해 심하게 악평이 떴고, CJ 마케팅팀장이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고, 기자는 심지어 마케팅팀장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 전화 내용을 기사화했다는. 헌데 알고보니 이 사건은 <중천>과 관련된 일회성 해프닝이 아니었다. 얼마 전부터 RSS를 받아보고 있는 필름2.0 기사에서 최광희 기자가 안티기사 논란에 관한 언급을 했길래 마침 호기심이 발동해 찾아봤다가 알게 된 사실들은 처음 생각보다 간단치 않았다. 영화단체 아홉 곳에서 해당 사이트에 K기자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다고 하고, 최광희 기자는 그 K기자가 ‘글 쓰는 자의 권력’에 대해 잊어버린 것같다고 논평했다. K기자는 이전 다른 인터넷 뉴스사이트에서 기사를 쓸 때도 안티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이른바 ‘악동 기자’였다.  담론의 초점이 그저 K기자의 자질 문제로 모아지는 것에 대해, 나는 현상의 ‘축소’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의 한국의 저널리즘, 특히 영화 저널리즘의 특성(과 수준)을 그대로 집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서 온라인 매체의 등장과 새로운 언론권력의 이동,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기존 종이언론과 온라인언론 간 갈등과 세력다툼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는 모두가 알고있는 사실일 터이다. 아마추어리즘으로 무장한 온라인 매체는 이미 거대한 권력이 돼버린 기존의 언론권력이 할 수 없었던 일들,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해내며 새로운 매체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이 아마추어리즘은, 언론의 소명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기존 언론이 떨어뜨린 언론의 퀄리티를, ‘기본 문장도 안 되는 글 수준’ 혹은 ‘통찰력과 의미가 결여된 개인 신변잡기를 “기사”로 남발하는’ 방식으로 또다시 떨어뜨린 게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매체간의 갈등과 세력다툼은, 단순히 구매체와 신매체간의 갈등일 뿐 아니라, 세대간의 갈등이기도 하며, 또한 정치적 집단간의 갈등이기도 하기에 양상은 더욱 복잡하다.


이것이 한국 저널리즘의 전반적인 현재의 특성이라 한다면, 여기서 ‘영화’라는 부분을 특화했을 때 또 한 가지 문제가 추가된다. 그것은 영화사와 언론간 지나친 밀착관계이다. 최광희 기자의 글에서 ‘글쓰는 자의 권력’이라는 부분에 원론적으로 동의하지만, 나는 기존의 영화 저널리즘, 즉 각 일간지/주간지의 영화담당 기자들과 씨네21, 필름2.0, 무비위크, 프리미어, 스크린 등의 영화전문 잡지 기자들이 과연 영화자본으로부터 얼마나 독립되어 있는지 역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게 워낙 시장이 작고 판이 좁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들도 있긴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 대해 솔직히, 영화사와 영화저널리즘이 ‘지나치게 친한 관계’라 생각한다. 주례사 비평만이 넘쳐나는 건 결코 문학판만이 아니다. 지금 당장 어떤 매체건 한번 펴서 영화 리뷰를 보라. 솔직히 인상비평에 불과하거나 영화를 철학의 볼모로 잡고는 글쓴이의 현학을 과시하는 수많은 프리뷰 / 리뷰들에서는 하나같이, 영화에 대한 극단적인 비판은 피하거나, 하더라도 아주 우회하고 세련된 ‘동정과 연민’의 어조로 표현하는 게 사실이다. 이 와중에 극단적인 표현이 등장하는 영화리뷰가 있다면, 그 기자와 영화사가 ‘안 친한’ 거라고 봐도 될 것이다. 신생영화사거나, 영화판에 새로 진입한 사람들의 회사거나, 영화사가 기자 접대를 안 했다거나.


영화사와 영화저널리즘은 판도 좁은 곳에서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 사이에는 암묵적으로 합의한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영화에 대해 센 비판을 하면 영화사가 곧바로 그 매체에 실력행사를 하기 때문이다. 시사회에 절대 들여보내주지 않고 자료제공도 안 한다거나 하는. 실제로 딴지일보의 경우 몇몇 영화사로부터 몇년간 절대로 시사회 공지를 못 받은 것으로 안다. 시사회뿐 아니라 제작발표회, 정킷, 촬영장 공개, 배우/감독 인터뷰 등 실력행사는 여러모로 가능하며, 그 결과 영화사와 영화저널리즘이 얼마나 친한 공생관계냐 하면, 심지어 영화기자들이 써야 할 기사를 영화 홍보담당이 대신 써준다. 기자는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쓰고, 홍보담당은 기자에게 기사 아이템은 물론 실제 기사까지 제공해주는 상황인 것이다. 지금의 그 암묵적 합의선이 지나치게 영화사, 특히 대형영화사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판단은 과연 나만 하고 있는 걸까.


솔직히 나 역시 영화산업 내부에 있는 사람이라 어떤 게 올바른 판단인지 헷갈리고, 객관적이 될 수도 없다. 미우나 고우나 어떻게든 영화를 ‘사수해야’ 하는 입장, 후진 영화에 대해 정말 후지다고 쓰고 싶은 입장, 후진 영화에 대해 정말 후지더라고 쓴 글을 읽고싶은 입장, 모두에 조금씩은 공감하기 때문이다. 영화 정보를 볼모로 보도자료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기자들의 입장이 있는가 하면, 기자들에게 기사 아이템은 물론 기사에 따르는 자료조사 결과까지 ‘상납’해야 하는 홍보담당의 입장도 있는 법이다. 이 와중에 게임은 서로가 상대진영에 속한 이들 중 상대적인 약자를 죽이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외국 매체들은 개봉일 전날까지도 영화 리뷰가 나오지 않는 대신, K기자가 항변한 것처럼, 때로는 섬뜩할 정도로 독설적인 표현들이 넘쳐나는 사실이다.


나는 업계에 있는 사람이므로, 사실 기자보다는 홍보담당자, 회사쪽에 조금 더 감정이입이 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K 기자의 기사들이 표현의 수위가 아슬아슬하다고 하긴 해도, 나는 특정 영화에 대해 ‘찬양’만 넘쳐나거나, ‘우리 다 같은 편 아이가’가 노골적으로 묻어나는 기사들만 넘쳐나는 건 분명 위험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과연 외국 매체들처럼 심하게 비아냥대는 표현들이 넘실대는 리뷰가 한국에선 가능할까. 지금으로썬 절대로 가능하지 않을 것같다. 모두가 알아서 몸사리고 있으면서 “좋은 게 좋은 것”으로 가는 저널리즘을 과연 누가 믿는단 말인가. 아닌 영화에 대해선 심하게 까주고, 정말 괜찮은 영화인데 자본의 논리에 의해 묻혀버린 영화를 적극적으로 발굴해주는 것, 나는 그게 소위 영화 저널리즘의 힘이라고 믿는다. (모두가 ‘재난’이라고 표현했던 <타이타닉>을 살린 건 업자들이 그토록 기피하던 인터넷 평론가 Harry Knowles였다. 그의 사이트에선 박찬욱과 임권택의 영화에 대한 놀라움과 찬양이 넘쳐난다. 또한 대형 자본을 들인 영화일수록 영화가 후졌을 때 더욱 크게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대기업에서 제작하고 대자본이 투입되어 결과가 안 좋을수록 영화계 전반에 미칠 파장이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이걸 좀 ‘어설프게’ 시도한 이를 그저 자질부족으로 혹은 지나친 오만의 권력놀이를 해본 것으로’만’ 해석하는 건 본질을 가리는 것이지 않을까. 차라리 그의 기사가 왜 객관성이 떨어지는지를 조목조목 논리를 세워 반박한 글이 나왔다면, 영화 저널리즘에 대해 내가 이토록 불신을 표하진 않을 것이다.


어쨌건 한 가지는 거의 확실한 것같다. K기자가 받아들여지는 수준이 바로 한국의 영화산업과 영화저널리즘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라는 것.



ps.씨네21에 K기자의 전화인터뷰 기사가 떴다. 어느 쪽이건 무기는 ‘진실’이 될 터이다.


공화국 언론중재위 서기관
노바리(invinoveritas@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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