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세대?” <영진공 68호>

재외공관소식
2007년 2월 10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5년도에 어딘가와의 서면 인터뷰를 위해 정리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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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사진을 반복적으로 촬영하면서 자기 성찰 같은 것이 가능한가?

– 자기성찰의 정의에 따라서 다른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시대마다 중요한 자아의 측면이 다른데, 근대화 세대는 인간 대 자연의 구도에서 살았습니다. 자연에게는 없고 인간에게는 있는 것은 이성이었습니다. 그 이성의 총화가 자아입니다. 즉 근대인들에게 자아는 이성적인 인간존재의 기반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성의 영역인 글이나 말로 표현할 수 있고, 인간 존재의 기반이므로 잘 변화하지 않는 고정된 자아를 중시했습니다. 이때의 자기성찰은 내 속에 변치 않고 존재하는 어떤 핵심적인 본질 같은 것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이걸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글로 쓰거나 현자와 대화를 하는 등의 과정이 필요했죠.

하지만 컴퓨터와 함께 생활하는 N세대에게 인간존재의 기반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성에 기대기는 좀 약합니다. 인간보다 더 이성적인 존재인 컴퓨터가 있기 때문이죠. N세대들은 인간 대 컴퓨터의 구도에서 살아갑니다. 컴퓨터에는 없고 인간에게 있는 것은 감성입니다. 따라서 N세대가 추구하는 자아는 이성보다는 감성이고, 고정불변하는 논리보다는 다양하게 변하는 이미지적 측면이 강해집니다. 셀프카메라는 이 이미지로서의 자아를 확인하는 성찰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장면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자기 이미지 속에서 어떤 일관성을 찾아내는 작업이 되겠죠.

셀프이미지가 자아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어떤 영향을 주는가?
셀프사진을 촬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간의 자긍심, 자존감 차이는?

– 중시하는 자아의 측면이 다를 뿐, 자기존중감이나 자긍심에서 차이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청소년기에는 누구에게나 자아가 중요합니다. 발달 과정상 청소년들은 신체적/심리적 측면에서 변화를 겪게 되고, 이전에는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자신을 거울 속에서 만나니까요. 그런데 비슷한 나이의 젊은이들 중에서도 이성적인 자아를 중시하는 사람은 별로 셀프카메라를 찍을 필요가 없습니다. 감성만 하더라도 글로서 표현할 수 있는 문제죠. 셀프사진에 특히 몰입하는 청소년들은 감성적이고 이미지적인 자아를 중시하는 이들입니다.
반면에 성인들이 셀프카메라를 찍지 않는 이유는 성인들은 자아를 찾거나 확인하는 것 보다는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라깡의 거울단계 이론을 디카 거울론에 적용할 수 있는가?

– 라깡은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논리와 상징구조를 많이 사용해서 자아의 발생과정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그 설명은 실제 아동의 행동과는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라깡의 거울론 제1단계인 상상계에서 아이들이 거울속 자신과 실제 자신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설명합니다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아이들 몰래 코나 뺨에 빨간색 점을 찍어놓고 거울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거울속의 자기 얼굴에 찍힌 점을 만지려 하지 않고 진짜 자기 얼굴을 만집니다. 만약 거울속 이미지와 실제 자신을 구분 못한다면, 거울도 만져보고 자기 얼굴도 만져볼 겁니다만 그렇지 않죠. 상상계에서의 이런 전제가 사실로 확인되지 않으므로 그 이후에 둘을 구분하면서 자아가 분열된다거나 하는 가설 역시 무의미해집니다. 라깡의 이론은 실제 발달과정이라기 보다는 성인의 개념체계를 재구성하는 철학적인 논리입니다.

– 라캉의 거울론을 설카족에게 적용하면, 역시 위험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설카족이 자기를 찍은 셀프사진을 자기 자신과 혼동하고, 이 둘을 구분하면서 자아분열이 일어날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죠. 저는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애초부터 이미지 중심의 자아개념에서는 단일한 자아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고, 다양한 자신의 이미지를 아우르는 어떤 스타일이나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간단하고 정확합니다.


디카를 여성적인 미디어라고 할 수 있는가? 여성들이 더 이미지에 우호적이고 민감한가?


– 원래 카메라는 남성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바로 사냥이죠. 많은 남자들이 총으로 사냥을 하는 대신 카메라를 들고 산을 누빕니다. 그들이 하는 행동은 비슷합니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어떤 것을 자기 것으로 하는 거죠. 직접 총으로 쏴 잡아서 끌고 와도 되지만, 단지 그 대상을 카메라에 포획해도 비슷한 만족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만족은 아마 자기가 잡은 사냥감을 들고 찍은 사진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디카는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필름 카메라가 상당히 엄정한 현상과정을 거쳐서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사진을 만들어내는 반면에, 디카는 이미지 그대로를 찍은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따라서 디카는 사냥용 도구보다는 거울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나 디카가 여성적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최소한 근대 산업화 사회에서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분이 명확했습니다.
남성성은 이성적이고 사실적이고 목표지향적이고 공격적이라고 정의한 반면, 여성성은 감성적이고 이미지중심이고 관계지향적이고 수동적이라고 정의했죠. 이런 정의에 의하면 순수한 이미지를 다루는 디카는 여성적인 미디어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명확히 구분하기 보다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 상황에 따라서 이 둘을 적절히 발휘하는 양성성이 더 중요한 시대입니다. 돌격앞으로를 외치는 불도저식 리더 보다는 자기 부하들을 잘 다독일줄 아는 관계지향적 리더가 필요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즘은 여자만큼이나 남자들도 이미지를 중시합니다. 따라서 디카를 무조건 여성적인 미디어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어떻게 다른가?

– 예쁜 나, 잘생긴 나를 보는 맛에 사는 것은 남녀가 같지만 자기 외모에 대한 만족도는 전반적으로 여자가 더 적습니다.
전통적으로 남성은 주로 사람보다는 물건에 관심을 두고,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보다는 남을 관찰하는 쪽의 입장에 서게 키워집니다. 따라서 자기 외모에 대해서 비교적 관심이 적었죠. 하지만 그런 남자들도 여자만큼이나 거울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외모에 대한 자신감입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기 외모에 나름대로 자신감을 가지고 살죠. 즉 다들 자기가 잘생겼다고 믿습니다. 반면에 여자들은 주로 자기 외모의 부족한 점에 주목하고 늘 어딘가 부족하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남자나 여자나 모두 외모에 대해 자신이 없으면 다른 능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합니다. 단지 문화에 따라서 남자에게 중시되는 능력과 여자에게 중시되는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분야에 주력하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아이들, 청소년이 싸이 같은 미니홈피를 통해서 이미지로 의사소통 하는 과정에서 자아의 어떤 부분을 발전시킵니까?

– 앞서 설명한 것과 같습니다. N세대는 자신과 남의 이미지들을 끊임없이 접하면서 이미지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을 얻습니다. 이것은 이전 세대가 대화를 통해서 얻었던 성찰과 비슷한 의미입니다. 단지 그 결과 얻어지는 자아의 형태가 다르다는 차이가 있죠. N세대가 얻는 이미지로서의 자아에 대한 성찰은 “자기 스타일의 발견” 같은 것입니다. 현재는 아주 사소해 보이는 것이지만 향후 세대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가치가 될 수 있습니다.

미니홈피, 블로그 등에 자신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일상을 공개하는 욕구는 단순한 과시욕과 어떻게 다른가?

– 단순한 과시욕이라는 말에는 과시욕은 그 이상 어떤 의미도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죠. 하지만 과시욕은 인간의 본성이고 그 본성은 자기존재를 확인하고픈 존재론적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기성세대에게 있어서 외모를 판단하는 기준은 상당히 단순했습니다. 미인은 미스코리아가 최고였죠. 이렇게 통일된 기준으로 이미지를 평가할 때는 단순한 과시욕이라는 말이 통합니다. 정말 남과 나를 비교하고 우열을 따지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미스코리아 말고도 여러 미의 기준이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는 단순비교가 불가능하고 의미도 없죠. 그보다는 자기만의 스타일과 미의 기준을 찾아내려고 하겠죠. 보내주신 미니홈피들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인데, 이 홈피의 주인공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미인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개성이 있고 나름대로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죠. 그 스타일을 발견하고 남들에게 확인받음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정립하려는 것입니다.

자신의 글을 올리는 것과 이미지를 올리는 것의 근본적인 차이는?

– 위에서도 설명했듯, 중요하게 여기는 자아의 형태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성적인 자아를 중시하느냐 아니면 이미지적인 자아를 중시하느냐의 차이죠.

사이버 공간상에서 타자와의 관계, 의사소통에서 문자가 아닌 이미지가 매개체가 됨으로써 타자와의 관계에 어떤 질적인 변화가 생길 수 있는가?

– 일단, 이미지 세대와 문자 세대는 서로 소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문자세대는 이미지 세대를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즉흥적인데다가 속을 알 수 없다고 느끼죠. 반면에 이미지 세대는 문자 세대를 너무 장황하고 느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개성이 없어 지루하다고 느낍니다. 같은 세대 내에서도 약간 차이가 있겠죠. 문자세대에서 어감을 잘 조율하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인정받듯이, 이미지 세대사이에서는 이미지 속의 스타일과 뉘앙스를 잘 찾아내고 조작할 수 있는 사람이 각광받겠죠. 이미지 세대는 사실상 이미 존재해왔습니다. 광고기획자나 디자이너들이 그렇죠. 회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진대제 장관이 파워포인트를 쓰면서 공무원 사회에서도 보고서를 잘 쓰는 것만이 능력이던 시대에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연출을 잘하는 것이 중요한 능력으로 인정받고 있지 않습니까?

이미지가 타자와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가 퇴행시키는가?

– N세대가 이미지를 중시할 수 있는 이유는, 이전의 문자와 언어가 담당하던 기능을 기술이 대신해주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우리가 좀더 확실히 믿을 수 있는 변함없는 인간관계를 중시했던 이유는 그런 관계가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주기 때문이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으니 한번 만난 사람을 놓치면 안되었죠. 하지만 사회제도가 안정화 되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기도 쉬워질수록 이렇게 변함없는 인간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은 줄어듭니다. 즉, 사이버 시대의 인간관계가 피상적이 되고 지속성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것이 이미지 중시 때문에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지에 의존한다고 해서 타자와의 관계가 퇴행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이 발견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게시판에 경쟁적으로 올리는 이미지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의 산물인가?

– 예 맞습니다. 그러나 소설가가 책을 쓰고, 학자가 논문을 쓰고, 심지어 신문기자가 열심히 기사를 쓰는 것도 역시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의 산물입니다. 인정받으려는 능력이 다르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대상들이 다를 뿐이죠. 결국 같습니다.

이미지가 범람하는 한국적 사이버공간의 특성을 개념적으로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 우리나라 사이버 공간에 이미지가 더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미국이나 유럽이 그렇지 못한 이유는 그쪽 동네의 인터넷 인프라가 아직 이미지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초고속인터넷이 정액제로 서비스됩니다. 이미지를 아무리 주고받아도 부담이 없죠.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 일본만 해도 초고속인터넷도 적고 통신비는 종량제입니다. 홈페이지에 사진이 많으면 한번 들어가는데 부담이 많이 되죠. 이러니 이미지를 못 쓰는 겁니다. 그 결과 외국의 인터넷은 여전히 통신망일 뿐, 아직 사이버공간이라는 느낌을 주지 못합니다. 매트릭스 같은 영화가 그냥 영화일 뿐이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생활공간으로서 인터넷을 경험합니다. 진짜 사이버공간이죠. 매트릭스는 MMORPG 같은 온라인 게임을 영화로 담은 것인데, 우리나라에는 실제로 그 게임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수백만명이죠.
따라서 이것이 한국적 사이버 공간의 특성이라기보다는 보다 풍부해진 사이버공간의 특성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국립과학연구소장의 이미지 이야기
짱가(jjang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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