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의사 봉달희: 한국에서 의사에게 부여된 코드는? <영진공 70호>

짱가의 ‘너 사이코지?’
2007년 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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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테르 라파이유의 책 <컬처코드>에 따르면 미국인들에게 의사는 ‘영웅’이라는 코드를 부여받는다고 한다. 사람을 살려내는 사람, 죽음과 맞서 싸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알고 보면 3D 직종에 가까운 직업임에도 유능한 젊은이들이 의사가 되려고 몰려드는 이유도 이런 이미지와 관계가 많다. 이들에게 의사는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기 이전에 훌륭한 사람이 되는 길이다. 그래서 돈과는 상관없이 가장 어려운 수술을 감당하는 심장이나 신경외과 의사들에 대한 동경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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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성에 대한 연구서 컬처코드, 내용은 좀 뻔하지만...


또한 영웅 이미지에는 자동적으로 인간적인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이 세상에 몰인정한 영웅은 없지 않은가. 따라서 의사들은 굳이 인간적일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 자기 일을 제대로 하는 모습 그 자체가 이미 가장 인간적인 영웅의 모습이 되니까. [ER]이나 <하우스>, <그레이아나토미> 같은 의학드라마들이 인기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드라마에 등장하는 의사들은 죽음의 위험에 맞서 생명을 살려내는 짜릿함을 즐기는 전문가들이다. 하키로 부상당한 환자 옆에서 ‘하키시즌은 외과 의사들에게는 크리스마스’라고 흥얼거리는 의사나, ‘환자의 말은 절대 믿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괴팍한 진단의사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괴팍하더라도 남들은 찾아내지 못하는 병의 원인을 알아내고 정확한 진단을 내려서 환자를 살려내기만 하면 충분하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전문가이기 때문에 시청자들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받는다. 애초부터 의사란 그런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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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하우스가 성격 좋아서 인기 있던가...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의사는 어떤 의미 혹은 코드가 부여되어 있을까?
<외과의사 봉달희>를 보면 아무래도 ‘전문가 영웅’은 아닌 것 같다. 이 드라마에서 거의 유일하게 설득력을 가진 캐릭터 봉달희를 보자.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전형적인 캔디 캐릭터이지만, 그녀는 뚜렷한 목표의식과 동기가 있으며 그에 걸맞게 움직인다. 물론 신참이기 때문에 실수연발이지만 그 실수를 통해서 성장한다. 이렇게 불완전하면서도 잠재력이 충만하고 선의로 가득찬 캐릭터는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이전세대의 캔디와는 달리 이 신세대 캔디는 자신의 감정에도 충실해서 마음에 드는 직장 상사에게는 적극적으로 대시를 해댄다. 현대여성의 감성까지 반영하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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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버젼 캔디'라지만, 그래도 생동감은 있으니



하지만 안중근이나 이건욱, 조문경은 얘기가 다르다. 분명히 외과 전문의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전문가적인 침착함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감정 과잉이라는 것이다. ‘버럭중근’ 이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왜들 그렇게 버럭버럭, 쉽게 흔들리고 오바를 연발하는지… 하는 짓들만 보자면 이들은 전문의가 아니라 십대청소년들 같다. 물론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지만, 그 이유들이란 게 전부 ‘출생의 비밀’ 수준이다. 내 생전 이렇게 기구한 팔자를 가진 의사들만 모여 있는 병원은 처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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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기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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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만 그런게 아니라, 하나 같이 기구해...

어째서일까. 나는 이 드라마의 작가가 건드리고자 하는 의사에 대한 코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계속 ‘감정이 철철 넘치고,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권력관계와 상관없이 애정을 남발하는’ 의사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의사들에 대한 원래 이미지가 ‘냉정하고, 비인간적인 권력자’ 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의사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으려면 아예 <하얀거탑> 처럼 냉정한 권력자의 모습을 곧이곧대로 보여주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과장되게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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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차라리 <하얀거탑>이 더 그럴듯 하다는... 이런 의사들만 봐서 그런지...

* 그레이 아나토미의 캐릭터들도 기구하긴 마찬가지이지만, 그 기구한 과거를 대하는 방식은 천양지차. 어떻게 된게 전문의들이 인턴 보다도 더 유치한건지…

국립과학연구소장
짱가(jjanga@yonsei.ac.kr)

“외과의사 봉달희: 한국에서 의사에게 부여된 코드는? <영진공 70호>”의 2개의 생각

  1. 미국의사들은 ‘전문가’ 이기에, 드라마상에서 성격이 괴팍하던, 애정행각을 벌이던간에, 시청자들에 사랑을 받는다는 말인가요?
    한국의사들은 ‘냉정하고, 비인간적’이여서, 드라마에선 장준혁처럼 비열하거나, 봉달희처럼 오버해야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인가요?
    제가 보기엔 미국에서의 의사라는 직업의 위상보다, 한국에서 의사라는 직업의 위상이 더욱 낮기에, 사람들이 더욱 감정을 쉽게 이입할수 있는 케릭터가 많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미국은 병원한번 가는게 우리처럼 쉬운일이 아니기에 의사에 대한 판타지가 더욱 높지 않을까 합니다.

  2. 미국의 의료보험이 비싼것은 사실이지만, 주치의제도가 확립되어있고, 처방전없이 살 수 있는 약이 극도로 제한된것이 아주 오래전이기 때문에… 미국에서의 의사가 한국에서의 의사보다는 더욱 일반인에게 친근한 존재일겁니다. 한국 의사들 중에 과연 얼마만큼의 수가 자신이 진정 ‘의사’라는 직업을 스스로 결정했는지가 궁금합니다. 특권의식(?)이 심한쪽은 한국 의사쪽이라고 봅니다. (의사계 내부에서 서열도 너무 강한것 같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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