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하나님을 아십니까?” <영진공 71호>

재외공관소식
2007년 3월 25일

기독교에 삼위일체라는 것이 있다지. 불교 군종병 할때 깨달은 사실. 불교에도 삼위일체가 있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두고두고 3이라는 숫자를 즐겨쓰는 이유는 종교적인 이유도 꽤나 큰 듯.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다가 나도 나름의 삼위일체를 가지고 있다. (말도 안되는 논법이지만..;;)
성자와 성부와 성령… (맞나)같은 것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나의 삼위일체는

걷기 괜찮은 거리

걷기 괜찮은 날씨

귀에 꽂은 괜찮은 음악


세개 되시겠다. 없다는 이어폰/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정처없이 걷는, 텅~ 빈 머릿속으로 만두속 채워넣듯 음악이 꾸여꾸역
밀려들어오는 느낌을 병적으로 사랑하여 마지 않는 바,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닙시다.”라는 서울시의 연료절약 캠페인을 본의아니게
고수하고 가끔은 이해 안갈 정도의 먼 거리도 걸어서 돌아가는 똘아이스런 습성을 소유하고 있음이다.

최근 구입한
e2c(이어폰)가 지나치게 훌륭한 차음성으로 귀를 틀어막아 발생한 주변환경과의 단절로 인해 길거리에서 트럭이나 피자배달
오토바이와 정면충돌할 뻔한 적이 몇번 있기는 하였으나, 뭐 아직 죽거나 병신이 되지 않은 관계로 이와 같은 습성은 당분간 유지될
전망이다.

안그래도 번잡하고 시끄러우며 공기 더러운 서울 시내에서 위와 같은 삼위일체의 환경을 찾기란 쉽지 않은데,
어쩌다가 찾은 경우 없다는 행보관의 눈초리를 피해 완벽하게 짱박힐 3종창고 구석탱이를 발견한 말년 병장의 기분으로 더없이
행복감을 느끼며 mp3 혹은 mdp의 볼륨을 올리곤 한다.

며칠전.
지인과의 만남을 위해 일찌감치
집을 나선 없다는 종로를 지나 동대문으로 가는 길로서 천계천을 택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아직 넉넉하게 남은 시간. 봄처럼
따뜻했던 날씨 덕에 오후 날씨는 몸을 움직이기 딱 좋은 환경을 조성해 주었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는 청계천 길은 –
명박이가 이 말을 듣고 자부심을 갖거나 기뻐하는 건 죽기보다 싫지만 – 없다의 취향 3종 셋트를 모두 만족시켰다.

며칠전 구입한 윤미래3집 cd를 광녹음한 md의 볼륨을 높이고,
살짝 덜 끊인 라면 면발처럼 탱탱하고 유려하게 리듬을 타는 우리 미래양(완전소중 윤미래!!)의 랩핑을 흥얼거….리려고 하는 찰나.

누군가 나의 등을 쿡,쿡,쿡 세번 찌름으로서, 막 유체를 이탈하려는 나의 영혼의 발목을 콱 잡아챈다.
어렵사리 찾은 나의 삼위일체는 비눗방을 터지듯 퍽.
동시에 친절하며 배려심 넘치며 젠틀…하려고 항상 노력하는 없다 역시 아스트랄로 날아가 버린다.
귀에서 이어폰을 빼낸다. 샴페인 병을 막고있던 코르크 마개를 뽑아낸 듯, 거품처럼 짜증이 흘러나온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안녕하세요. 설문 조사좀 하려고 하는데… 혹시 어머니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 있으세요?”

….끄-_-^응…

“없습니다. 수고하세요.”

이번엔 40대 아주머니가 정면에서 내 도주로를 차단한다. 아, 2인 1조였구나… 씨바 청계천 길은 너무 좁아…순간, 진짜 순간이지만 오른쪽 어깨로 하복부 딥 태클을 감행하며 그녀를 흐르는 물속으로 밀어버리는 상상을 했다.

“잠깐이면 되요. 8문항밖에 안 되니까… 솔직하게 대답해 주시면 되거든요.”

……그래? 솔직하게 대답하면 된다고? 좋아 알았어. 똑똑히 보이게 대문짝만하게 써주지.
객관식은 모두 패스. 주관식만 썼다.

종교를 가지고 계십니까?
아니오.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십니까?
신의 존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하나인지 둘인지 세어볼 생각은 없습니다.

어머니 하나님에 대해 들어보신적 있으십니까?
신을 고작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는 유치한 시도는 듣도보도 못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존재하듯이, 인간들에게 어머니 하나님도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결혼해서 2세를 낳았으면 그게 왜 인간입니까 하느님이지.

한글자 한글자 또박또박. 흘려쓰지 않고 성실하고 솔직하게 답변했다. 나 잘했지?

경건하고도 신실한 종교인
거의 없다(1000j100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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