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케 다카시의 하드보일드 누아르, <태양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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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참 근사합니다
원래 이번 씨네바캉스에서 미이케 다카시 영화는 건너뛰려고 했습니다. 제게 미이케 다카시는 ‘엽기적으로 신체훼손을 해대는 감독’으로 꽉 박혀있거든요. “웬만하면 피해가야 할 이름” 리스트에 올라있는 셈이죠. 그런데… 이 영화 번역했던 친구한테 낚였어요. 예전에 한참 번역하고 있을 때도 “미이케 다카시 천재인가봐” 하면서 영화의 한 장면을 설명들은 적이 있고, “이번 상영작들은 그렇게 쎄지 않대”라는 얘길 들은데다, 상영작 중 한 편은 무려 어여쁜 남자배우 두 분이 예쁜 때깔 배경에서 사랑을 나누신다길래… 친구가 첫 상영 때 자막 확인하러 간다는데, 마침 전해줄 것도 있었던지라, 한번 보지 뭐! 하고 갔었죠. 그런데… 아아, 역시 제겐 좀 쎄더군요. 다시 미이케 다카시 영화를 보라면 도망갈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사람 확실히, 천재인 거 같아요.


영화의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다섯 살짜리 딸래미가 잔혹하게 살해당하고 마누라까지 자살해 버린 뒤, 주인공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관대한 법의 처분을 받고 심지어 가석방이 된 놈을 계속해서 추적합니다. 그러나 그 놈은 반격을 해오고, 마침내 총격전까지 벌어집니다.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탐정물의 살짝쿵 변형인데, 이 단순한 스토리를 가지고 엄청난 스릴과 영화적 쾌감을 제공합니다.


전반적으로 매우 건조하고 하드보일드하며 대사는 절제돼 있는데, 어떤 장면들은 매우 감각적으로 편집돼 있고, 음악 한 곡 쓰지 않으면서 소소한 사운드 효과만으로 긴박감을 만들어냅니다. 특히 감탄했던 장면들은 부인이 자살하는 장면으로, 친구가 절 낚은 것도 바로 이 장면을 살짝 말해줘서였지요. 병원에서 부인을 기다리던 주인공은 부인이 없어졌다는 처제의 얘기에 놀라 병원 입구까지 나와 찾고 있습니다. 이 사이에 옥상으로 향하는 맨발 컷이 삽입되지요. 입구에서 주인공과 처제와 주인공의 친구가 이런저런 말을 나누고 주인공이 다시 병원 안으로 들어가 아내를 찾으려고 하는 찰나, 카메라는 그대로 주인공을 보여주고 있는 상태에서 저 뒤로 차 위에 부인의 시체가 쿵 떨어지지요. 카메라는 시체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피를 뒤집어쓴 와이퍼에서 똑, 똑, 떨어지는 핏방울을 클로즈업합니다. 여기에 똑똑, 핏방울 떨어지는 소리와, 와이퍼가 시체에 걸려서 끽끽대는 소리가 삽입되죠. 그리고 그쪽을 바라보는 주인공을 비추는 카메라. 이때 색이 탈색되면서 영화는 잠시 흑백으로 전환합니다. 3년 후로 건너뛴 장면들 역시 계속 흑백이다가, 살던 동네로 다시 돌아와 새로 얻은 집에서 싱크대에 톡,톡, 물떨어지는 장면(와이퍼의 핏방울이 톡, 톡, 떨어지는 장면과 교차되고 톡, 톡, 사운드만 유난히 강조됩니다.) 에서, 어느 순간 물이 빨간 피로 변하면서 다시 칼라로 돌아오지요. 주인공이 그 놈을 계속 쫓는 집착과 강박증에 대해 매우 강력하게 심리적 설득을 해버리는 장면이죠. 구구절절 지저분한 대사 없이, 컷들로 해결을 봐버리는 겁니다. 게다가 음악 한 자락 없어요. (이 영화에서 음악은 엔딩 자막 흐를 때 딱 한 곡이 나옵니다.)


이게 바로 ‘영화’ 아니겠어요? 언제나 단조로운 화면과 대사로 주리장창 설명을 해대는 한국영화들에 제가 진저리를 치는 건 바로 이런 영화들이 있기 대문입니다. 이미지와 사운드, 그리고 이것들을 자르고 잇는 편집으로 얼마든지 내러티브 구축이 가능한데, 한국영화들은 대체로 컷과 미장센과 카메라 동선과 편집을 고려할 줄 몰라요.  사진으로 치자면, 소위 ‘일장기 샷'(가운데에 피사체 덜렁 놓는 것)으로 일관하고, 편집 효과를 넣고 카메라를 움직인다고 해봐야 그저 주인공 뒤를 졸졸 쫓아가는 샷과 앞에서 걸어오는 걸 보여주는 정도에 불과하고는 어색한 대사들을 주리장창 늘어놓는 영화들이 넘쳐나지요. 화가 날 정도입니다. ‘영화’라는 게 도대체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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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애들 무섭다"는 상투어를 내뱉을 수도 있겠지만 ...


뒤에 나오는 총격씬도, 매우 근사해요. 어디서 누가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건물에 들어간 주인공은 총을 든 채 잔뜩 긴장해서 복도에서 조금씩 전진합니다. 낡은 이 건물은 형광등 불이 불안정하게 깜빡거리죠. 그 형광등 지징대는 소리와 주인공의 발자국 소리만으로 엄청난 긴장 효과를 만들어내요. 그 와중에 정적을 찢는 총소리, 그리고 총격전이 벌어집니다. 모든 것이 끝난 후, 기진맥진해 앉아있는 아저씨 위로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따뜻하게’ 화면을 비추던 아침햇살도 매우 인상적이죠. 그 앞에선, 밤 장면이 많기도 하지만 낮 장면이라 해도 햇살이 그토록 따뜻하고 밝게 묘사되지 않거든요. ‘태양의 상처’라는 이 영화의 제목이 새삼 의미심장하게 와서 박히는 장면이죠.


부랑자를 죽도록 패고 얼굴에 못을 쏴대는 15살의 아이들, 그리고 3년 뒤 어떻게든 사람 한번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나고 실제로 아무런 감정도 양심도 없이 총을 쏴대는 13살 아이들에 대한 감독의 구체적인 논평은 별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건 현재 일본의 법이 미성년자들에게 너무 온건하다는 거죠. 이상적으로야 그게 맞겠지만 일본은 현재 갈수록 청소년들의 잔혹범죄가 이슈화되는 사회이고, 영화 속 주인공이 당한 비극도 매우 끔찍합니다. (세상에, 그 어린 아이의 목을 자르다니.) 하지만 총격전에서 주인공에게 총을 맞은 아이들이 하나같이 터뜨리는 대사가 ‘아파요… 너무 아파요’이고, 여기서 마음이 참 짠해져요. 사실 감독이 이 아이들을 그리는 방식 자체가 무슨 대단한 엽기 살인마들 보듯 하지도 않고. 전 대단히 과묵한 이 감독이 실은 이 아이들을 얼마나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런 장면들을 통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식이 아주 절제돼 있기에, 오히려 더욱 진심으로 느껴지고요. 청소년 범죄에 관한 법을 더 강화시키라는 것보다는, 체제 자체에 대한 한숨이 묻어있는 것 같았어요. 범죄를 예방하지도 못하고 아이들에게 도덕과 윤리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채 다른 이들이 계속해서 엄청난 피해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현상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탁상공론만 하고 있는. 사실 뭐, 이 감독 자체가 그 나이 때 좀 세게 노셨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살짝 들기도 하고… (전 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좀 무서워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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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아버지와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아들,의 유사부지관계 같기도 해요.


지극히 건조하기에 오히려 은근한 서정성이 영화를 감돌고 있다, 는 생각이 드는군요. 새삼 왜 그리도 다들 미이카 다케시 타령을 하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다른 영화들도 이렇게 근사하려나요. 그러나 역시 제 취향엔… 너무 세단 말이죠. (으으으) 다시 보라면 못 볼 것 같고요. 하긴 최근 절 분노케 만들었던 <리턴>이나 <힛쳐> 같은 영화를 다시 보느니, 이 영화를 보거나 차라리 우웩거리면서도 (웬만하면 평생 별로 보고싶지 않은) <이치 더 킬러>를 보겠습니다만.


영진공 노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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