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가 내게 준 슬픈 교훈

추석연휴 마지막 날, 천안서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바람에 외박을 해야 했다. 같이 마시던 선생님 댁으로 가 아들을 다른 방으로 보내고 거기서 잤다. 습관처럼 6시에 잠을 깼고, 그 선생님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느라 알랭 드 보통의 <행복한 건축>을 읽었다. 일주 전부터 붙잡고 있던 책인데, 열페이지쯤 남아 있었기에 다 읽고 나니 6시 15분이다. 책꽂이를 보니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가 있다. 이거면 한시간은 버티겠지 하고 책을 폈는데, 읽고 난 소감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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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러닝타임

그 책을 다 읽는 데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페이지 수도 워낙 적고, 글자도 큰데다 “치즈는 채소다”같이 별 대단한 말도 아닌 경구들을 한페이지 전체에 큼지막하게 배치한 탓이다. 쉽게 얻어지는 진리는 오래가지 않는다. 일주일 걸린 <행복한 건축>까지는 안될지라도, 모름지기 책이라면 최소한 두시간의 노력은 요구해야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30분이라니. 책 한권을 읽었다는 뿌듯함은 제공할 수 있겠지만, 그것 말고 이 책에서 얻을 게 뭐가 있을까? 이 책을 읽고 감동하신 분들도 분명 있겠지만, 그래서 그분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을지 난 회의적이다.

2) 교훈

그래, 대단한 교훈이라도 준다면 또 모르겠다. 이 책을 읽은 수많은 사람들은 ‘변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교훈을 얻기 위해 쥐가 치즈를 찾아 헤매는 책을 읽어야만 하는 것일까? 이 책에 나온 우화는 다섯줄 정도로 요약될 것을 지리하게 늘어놓아 그 자체로도 별반 재미가 없는데, 더 나쁜 것은 바로 세 번째 파트다. 책의 첫 파트는 동창들이 모여 담소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한명이 치즈에 관한 우화를 이야기하는 부분, 그리고 세 번째엔 다시 동창들의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과연 세 번째 파트가 왜 필요한지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원래 책이라는 건 이야기를 들려주고 독자가 그 안에서 교훈을 얻으라는 매체일진대, 이 책은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대신 작중 화자가 아예 교훈까지 들려준다. 이런 식이다.

갑: 이야기 잘 들었어. 그러고보니 요즘 너무 치즈에 소홀했어.

을: 나도나도! 앞으로 우리 치즈 많이 먹자.

병: 치즈도…중국산 있니?

이건 저자가 할 얘기가 아닌, 책을 읽은 사람들끼리 할 얘기다. 굳이 이해를 해보자면 두 번째 파트까지만 가지고 책을 내자니 너무 얇은 것 같아 그랬겠지만, 그 결과 이 책은 정말 최악의 책이 되고야 말았다. 저자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책이라니 원.

3) 슬픈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대단한 판매고를 올렸다. 그게 난 슬프다. 리뷰 역시 찬사일색인 것 역시 슬픈 일이다. 삼겹살은 육체를, 책은 정신을 살찌워 준다고 어릴적 선생님이 얘기하셨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잘팔리는 책들은 더 이상 우리 정신을 살찌게 해주지 못한다. 그것도 난 슬프다. 이 책을 수백부 주문, 직원들에게 돌렸다는 사장님, 사장님 회사는 그래서 번창하고 있나요?


영진공 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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