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쏴라! 슛뎀업>, 거침없이 쏘면서 타란티노를 넘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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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의 개들>(1992)과 <펄프 픽션>(1994) 이후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는 하나의 새로운 트렌드를 이루었고 이후의 전세계 액션/갱/SF 장르 영화들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영화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이루었다’고 함은 이전의 영화들과는 다른 요소들과 스타일로써 관객들과 대화하는 새 문법을 확립했다는 뜻이고 동시에 이후의 많은 영화들이 그 문법을 따랐다는 이야기입니다. 타란티노의 새 영화 문법에 가장 근접했던 작품은 가이 리치 감독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1998)와 <스내치>(2000)를 꼽을 수 있을텐데요, 아쉽게도 쿠엔틴 타란티노를 넘어서는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는 못했던 작품들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자신조차 쉽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이 타란티노 스타일의 본질이란 한마디로 거침이 없다는 점입니다. 주인공들의 지루한 수다와 피칠갑의 총기 액션, 그리고 시간 흐름을 무시한 내러티브의 재조합 등의 개성적인 영화적 취향과 아이디어들이 관객들 앞에 ‘거침없이’ 전시되는 것이 타란티노 영화의 핵심이었습니다.1) 가이 리치의 영화들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타란티노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그 아류작들로 분류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타란티노 영화의 요소들을 추종만했지 그 핵심은 놓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기존 장르 문법을 해체하는 통렬함과 일탈의 쾌감을 담아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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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쏴라! 슛뎀업>은 쿠엔틴 타란티노 이후 타란티노 스타일의 본질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주류 상업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목 만큼이나 말 그대로 거침없이 쏴대는 영화가 <거침없이 쏴라! 슛뎀업>입니다. 이와 같이 거침이 없는 영화는 필연적으로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오류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쏴죽이고 싶은 상대라면 가리지 않고 총질을 해대면서 총기 규제의 이슈를 다루는 뻔뻔함과 남들이 하는 보기싫은 행동들에 대해 질색이라고 나불대지만 그 자신도 누군가에게는 질색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는 모순들로 무장한 영화가 <거침없이 쏴라! 슛뎀업>입니다.2)

이와 같은 영화는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할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동네 재개봉관에 다리 뻗고 앉아 팝콘을 스크린을 향해 던지며 보는 B급 영화들과 그 수요 계층의 정서를 가감없이 반영하고 있는 서브컬쳐 영화입니다.3)  또한 <거침없이 쏴라! 슛뎀업>은 영화 팬들을 위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우삼 영화에서 즐겨 사용되었던 슬로우 모션 총격 액션의 사용은 물론이고 액션 영화들에 대한 등장 인물들의 잦은 언급이나 심지어 여주인공 도나(모니카 벨루치)의 성을 퀸타노(Quintano = Quentin + Tarantino)라고 붙여놓고 영화 속에서는 한번도 언급을 안하다가 엔딩 크리딧에 띄워주는 일에 이르기까지, 영화 팬들을 위한 남다른 서비스 정신을 시종일관 과시합니다.

주연급 배우들의 캐스팅에서도 거침없는 이미지 차용이 돋보입니다. 클라이브 오웬은 <씬 시티>에서의 과묵한 터프가이 이미지와 <칠드런 오브 맨>에서의 생명의 수호자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왔습니다.4) BMW 홍보용 단편영화 시리즈에서 주연을 맡았던 인연 탓인지 줄기차게 BMW만 훔쳐타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여기에 모니카 벨루치는 <말레나>, <매트릭스 2, 3>,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 등에서의 창녀와 모성애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구요.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사이드웨이>나 <아메리칸 스플렌더> 등에서 낙오자의 이미지가 강했던 폴 지아매티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사악하고 과격한 악당 캐릭터를 선보이는데, 이 역시 “찌질이가 총 들고 설쳐대는 꼴은 질색이야”라는 대사를 던지기 위한 최선책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액션 씨퀀스의 구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최근 어떤 영화들보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쳐 흐릅니다. 각 씨퀀스를 가능케 하는 논리적인 개연성을 면밀히 구축하기 보다는 반짝반짝 하는 아이디어들을 거침없이 살려내는 데에 역점을 두고 있는 영화입니다. 손가락이 다 부러진 상태에서 식당에 쳐들어온 3인조 총기 강도들을 무찌는 방법이 궁금하십니까? 이 영화를 보시면 됩니다. 이런 영화 싫다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 대신 좋다는 사람들에게는 보고 또 봐도 끊임없이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작품으로 남게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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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잡담들>

1) 그런 점에서 타란티노 영화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작품은 <저수지의 개들>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데쓰 프루프>는 타란티노가 자기 영화의 본류를 향해 다시 찾아들어간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비록 총기 액션이나 시간 순서를 뒤바꾼 에피소드의 배열 등 타란티노 영화의 인장과도 같은 요소들은 없었지만 이들은 영화의 구성 요소들일 뿐 그 핵심은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2) 콜롬바인 고교 사건과 9.11 테러 이후 한동안 자제되어왔던 과도한 폭력과 인명 살상(?) 영화가 드디어 다시 등장했다고 할 수 있을텐데요, 최근 부시 대통령과 이라크 전쟁에 대한 지지율이 땅바닥을 닥닥 긁어대면서 그 동안 미국 시민사회를 사로잡아왔던 지나친 엄숙주의의 망령이 드디어 해체되기 시작했다는 신호탄로 해석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3) 그렇기 때문에 장르 문법과 플롯 구성의 개연성을 시종일관 무시하며 기존 유사 장르의 영화들을 마음껏 오마쥬하는 자유분방하면서도 거침이 없는 표현 방식이 가능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상업 영화들은 흥행에 대한 부담 때문에 기득권층이나 다수 대중들의 취향과 통념을 의식하게 되고 그 결과로 스스로의 표현 방식에 제약을 가하게 됩니다.

4) 당근을 먹다가 그것을 무기로도 사용하는 주인공 스미스(클라이브 오웬)의 캐릭터는 일견 <에이스 벤츄라>(1994)에서 짐 캐리가 보여준 황당하고 거침없는 캐릭터를 연상케합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저 역할을 짐 캐리가 했더라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진공 신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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