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루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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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여기 있다."
조지 루카스의 전설적인 데뷔작 <THX 1138>은 루카스 자신이 밝혀놓고 있듯,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영화에 ‘스튜디오’가 돈줄을 대줬던 거의 마지막 시대의 거의 마지막 영화이다.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1971년. 아무도 성공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영화들이 줄줄이 성공했던 때였다. 일단의 젊은 감독들이 기존의 체제에, 기존의 시스템에 도전하며 기존 영화에 비하면 굉장히 적은 돈으로 자기들 멋대로 찍어온 영화가 대박을 치고, 이들이 ‘이지 라이더 세대’라고 불리었던 이른바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아이들이 대거 등장한 시대 말이다. 아메리칸 조에트로프를 설립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이 영화의 총괄 제작자가 되어 워너브라더스의 간부들을 구워삶은 것도 바로 그런 말들이었다. “<이지 라이더> 같은 대박작이 될 수 있다니까요!” (완성된 영화를 본 워너브라더스 간부들에게 코폴라는 ‘사기꾼’ 소리를 들어야 했다. “돈 되는 영화 만들어온다며!!”) <스타워즈>의 세계가 워낙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치고 조지 루카스가 미국 헐리웃 내에서 손꼽히는 억만장자가 돼버린 모습을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영화청년’  조지 루카스(뿐만 아니라 ‘영화청년’ 코폴라)의 모습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는 영화가 <THX 1138>이다. <스타워즈>로 하룻밤 사이에 억만장자가 된 조지 루카스는 자기 돈을 들여 ILM을 설립했고, 이 ILM의 역사가 바로 헐리웃 CG 역사의 기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특수효과를 발전시켰는다. 조지 루카스는 작년에 자신의 모교(USC) 영화과에 억대의 돈을 기부했다고 한다. (저 억대는 원화 기준이 아니라 달러 기준이다.) 툭하면 조지 루카스와 스필버그 이름을 팔아먹는 누구와 참 대조되는 행보가 되겠다. 하여간에.


감독이 구축해 놓은 이 세계가, 참 재미있다. 억압과 통제와 감시의 사회가 등장하니까 사람들이 그냥 쉽게 ‘오웰적 세계’란 말을 많이 하지만, 이 세계는 모니터로 모든 것이 서로 감시/통제된다는 점을 빼면 그닥 오웰스럽지 않다. . ‘중앙’의 절대 권력인 Big Brother가 없을 뿐 아니라, 소위 ‘상부’ 내지 ‘권력층’이라는 것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약물로 통제되는 사회여서만이 아니라, 결국 이 세계는, 오히려 인간의 철저한 이성과 정확함을 추구하며 공공의,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이 평등한 이들이 자발적으로 서로를 통제하고 감시하며, 스스로 억압에 동참하고 이를 재생산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의무적으로 복용하는 약은 진정제이며, 이를 통해 이들은 극단의 침착함과 이성적 사고를 유지하고 작업에서의 정확성을 높인다. 이는 근대적 특성을 극단으로 밀어부친 결과일 터. 이들의 감옥은 심지어 철창도 없고 감시하는 자도 없다. 오히려 넓게 활짝 열린 공간. 다만, 아무것도 노동할 것이 없다는 점, ‘사회’에 공헌할 수 없다는 점이 오히려 인물들을 미칠 듯한 상태로 몰고 간다. (SEN은 “우리를 일할 수 있는 조직(working unit)으로 바꿀 아이디어를 찾아오겠다”고 외치지 않는가.) 친구가 지적해준 바에 의하면 <THX 1138>의 세계는 오웰보다 오히려 헉슬리적 세계에 더 가깝다. (그러나 [훌륭한 신세계]를 읽은지 워낙 오래 돼서,  헉슬리의 세계가 이토록 이성 중심적인 세계였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긴 주인공이 탈출해서 만나는 게 소위 원시적 종교제례였지, 아마.)


그렇기에 나는 이 영화에 대해 기존 평론가의 말을 그대로 반복해 ‘디스토피아를 그렸다’고 말하며 이 영화의 세계를 손쉽게 ‘나쁜 것’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이 영화가 그리는 세계가 디스토피아라고 생각하는지 묻고싶은 충동이 인다. 바로 지금의 한국사회야말로, 정체도 불분명한 ‘국가’와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의 선과 이익과 영광을 위해, 또 한편으로는 취향과 능력까지도 하향평준화된 수준을 지향하도록 각자가 자발적으로 다른 개인을 감시하고 억압하며 이를 재생산하는 사회이자, 능력을 넘어선 소비를 부추키며 수시로 지름신을 맞고 이를 자랑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THX 1138>의 세계가 우리의 세계보다 더 합리적으로 평화롭게 보이는 측면이 있지 않은가? 이들은 누군가를 처벌할 때도 철저하게 규정에 따른 처벌을 하고 재판을 하며, 대중의 이익, 공동체의 이익을 함께 구현하고자 강제와 억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노력한다. 죄인에게 체벌을 가하는 것조차 철저하게 (숫자로) 법제화된 과정을 따른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한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천재들이 통찰해줬듯, 유토피아가 바로 디스토피아이다. 우리의 삶의 방식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이, 거의 대부분의 인간이 매일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매일 다른 옷으로 갈아입으며 향수를 뿌리고 액세서리로 장식을 하는 것은 그리 역사가 오래 되지 않았다. [섹스북]의 저자마저도 현대사회가 지나치게 ‘체취’에 대한 공포와 ‘청결’에 대한 강박증으로 이루어진 사회라고 지적하는 것을 보면, 머리카락을 한 올도 남기지 않고 모두 밀어버리고 하얀 옷을 입으며 청결에 힘쓰는 THX가 사는 세계의 가치관이, 그들의 사는 모습이, 과연 우리와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건지 묻고 싶다. 우리가 사용하는 체크카드와 신용카드 등으로, 우리는 오늘 우리가 어느 경로로 언제 어디를 가서 무엇을 했는지 얼마든지 기록이 가능하다. 기록이 가능하단 얘기는 누구든 필요할 때 열람할 수 있다는 얘기기도 하다.


다소 코믹하게 그려진 SEN 5241,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인 THX 1138은 루카스가 감독 코멘터리에서 밝힌 대로 한 사회 내에서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그리고 다소 ‘자뻑’에 취해있는 사람)과 실천으로 ‘혁명’을 해버리는 두 사람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그린다. 나중에 옴에게 가서 기도하는 SEN은, “단지 조금만 조정해도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고, 나는 이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기도한다. 반면 어쩌다 원치않게 이 사회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룰을 어기고 사회의 범법자가 돼버린 THX는(그가 약을 끊은 건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다.) 사랑하던 LUH마저 잃은 뒤 이 사회를 완전히 탈출한다. 이것은 한 개인이, 자신이 아무런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는 자신의 현실의 사회에서 벗어나 다른 현실로 탈출하는 과정인 셈이고, <THX 1138>에게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 그래서 공동체 묘사가 비슷하고 심지어 의복도 거의 흡사한 – <아일랜드>보다는 주제적인 면에서 오히려 <매트릭스>가 루카스의 세계를 더 충실히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안드로이드 경관이 경고한 대로, THX는 지하도시의 세계를 벗어나 저 바깥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지 모른다. 인간이 그렇게 지하로 숨어들어가 지하도시를 건설하고, 모두가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감시와 통제체제를 이룩한 것, 그리고 그토록 청결에 신경을 쓰며 사회의 주요 동력을 핵 에너지에 의존하되 그 사용에 있어 그토록 조심스러운 것도, 지상에서 핵전쟁을 겪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 ‘태양’ – 인간이 절대 볼 수 없는 ‘원지식’이자 ‘근원자’를 은유하는 – 앞에 선 THX의 존재는 장엄하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목적은 ‘장엄한 죽음’을 위해서인지 모르겠다.

 


영진공 노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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