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리언 암스트롱, <나의 화려한 인생>

호주의 유명 여성작가 사라 마일즈 프랭클린의 사랑받는 원작소설, [나의 화려한 인생]은,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께, 이것은 모두 나에 대한 이야기이다.”라는 서문으로 시작한다. 19살 소녀가 친구들과 돌려가며 읽을 목적으로 썼다는 이 책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로 넘어가는 지점, 영국의 귀족제도 따위를 그대로 들고 온 사람도 있었지만, “(원주민들을 내쫓거나 죽이고) 저 너른 호주 땅을 개간하느라” 여성의 노동력도 필요로 했고, 그러한 개간을 통해 열심히 일한 사람은 쉽게 부자가 되기도 하였고, 혹은 영국 본국에선 신분이 높았건 말건 이곳에서 황무지에서 뒹굴며 일하는 소위 ‘개척자’가 되기도 했다. 그런 황무지에서 외롭게 자라던 소녀가 또래의 몇 안 되는 여자아이들에게 읽어주기 위해 쓴 로맨틱한, 그러나 로맨틱하지 않은 엔딩으로 끝나는 소녀소설이 바로 [나의 화려한 인생]이었다. 이 책은, 1903년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출판된 뒤 큰 인기를 끌었고, 사라 마일즈 프랭클린은 ‘마일즈 프랭클린’이라는 필명으로 그 뒤 두어 권의 소설을 더 썼다.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끼며 다시 시골로 돌아갔다가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죽은 것으로 아는데, 하여간 호주의 권위있는 문학상 하나가 그녀의 이름을 따 ‘마일즈 프랭클린 상’이라는 걸 보면, 호주에서 마일즈 프랭클린이 받는 사랑이 매우 크단 걸 알 수 있다. 질리언 암스트롱의 데뷔작은 바로 호주의 이 대표적인 소설, [나의 화려한 인생]을 원작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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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 데이비스와 샘 닐의 멋진 연기와 화학반응이 빛난다


 19세기의 사람들이 그대로 호주로 이주한 만큼 그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얼핏 제인 오스틴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보다는 훨씬 독립심이 강해 보인다. 아마도 이것은 제도가 정착되지 않고 그 모든 제도보다 ‘개척’이 먼저였던 호주라는 환경 때문이리라. 제인 오스틴의 여주인공들이 모두 돈많고 잘난 남자와 결혼을 통해 해피엔딩을 맞는 반면, 시빌라는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 대신, 그리고 목장과 황무지에서 농사를 지으며 땅을 개간하는 개척자 여성이 되는 대신 작가가 되는 길을 택한다. 가난과 고난을 무릅쓰고 자신을 실현하기 위한 길을 택하는 시빌라의 선택은, 그녀가 거부했던 소위 ‘호주의 개척자 농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오래 전 이미 나이가 든 주디 데이비스의 영화 한 편을 보고 그녀에게 반한 적이 있었는데(<사랑의 금고털이>라는 소품에서 조연이었다.),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한국에서 내가 볼 수 있음직한 다른 영화가 보이지 않아 거의 잊고 있었다. 그녀의 젊고 어린 시절의 영화를 이런 식(영화제에서 ‘보는’ 것뿐 아니라, 번역작업을 한 인연…)으로 접하게 되다니. 게다가 내겐 <피아노>에서 사이코틱하고 약간 배나온 아저씨로 처음 만나 그대로 각인돼 버린(나이 드실수록 웬지 얼굴에 심술보가 붙어있는 것 같은 인상…) 샘 닐이 이토록 매력적이고 단아한 젊은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니, 그것도 조금 쇼킹했고.  하여간 둘의 화학반응이 매우 좋아서, 시빌라가 나무 위에서 꽃을 따다가 처음 해리 비첨(샘 닐)과 만나는 장면에서 뒤로 넘어가게 웃었고, ‘격한’ 베개 싸움을 포함, 서로 감정이 오고가는 장면들을 매우 즐겁게 웃으며 보고 작업했다. 매력적이고 활달하고 젊은, 주디 데이비스가 열연하는 빨강 머리의 아가씨 시빌라의 모습은 빨간머리 앤과 모습이 겹치기도 한다. 거씨 대고모님의 말대로, 시빌라 때문에 다른 양가집 규수들이 모두 ‘핏기없은 나무토막’으로 보이니. 여염집 처녀가 사다리를 타고 나무 위에 올라가 꽃을 따고, 노래를 부르며 사과를 와삭 베어무는 것도 어쩜 꼭 닮았다. 제인 오스틴과 빨간머리 앤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


영진공 노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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