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클레이튼>, 계시가 되고자 했던 스릴러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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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나 정부의 비리를 소재로 하는 영화는 둘 중에 하나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거대 조직의 비리와 폭력성을 실감나게 보여주던가 아니면 비리에 맞선 주인공의 활약상을 멋지게 그려주던가. 물론 실제의 영화들은 두 가지 요소가 적절히 혼합되어 있으면서 작가의 지향성에 따라 어느 한쪽에 좀 더 많은 비중을 두게 마련입니다. 글로벌 제약 회사가 아프리카 사람들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하고 있다는 설정의 <콘스탄트 가드너>(2005)와 같이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지막 방점은 주인공의 멜러에 찍어주는 작품도 있습니다. <마이클 클레이튼>의 감독 토니 길로이가 시나리오를 썼던 제이슨 본 3부작은 주인공의 사실적이고도 통쾌한 액션을 앞세우면서도 CIA 조직의 음모를 파헤치고, 여기에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묵직한 주제까지 전달하며 스릴러 장르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토니 길로이의 감독 데뷔작인 <마이클 클레이튼>은 극중 주인공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제목으로 정한 것부터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주인공은 조지 클루니입니다. 그가 TV 시리즈 <ER>에서 소아과 의사 역을 할 때 그 눈빛과 표정, 목소리에 반하지 않은 시청자는 없었을 겁니다. 본 시리즈의 토니 길로이가 데뷔작을 내는데 조지 클루니가 원톱 주인공으로 나섰으니 기대가 클 수 밖에 없지요.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마이클 클레이튼>은 제이슨 본 3부작을 비롯해서 이제껏 토니 길로이가 각본을 쓴 여러 히트작들(<돌로레스 클레이본>, <데블스 애드버킷>, <아마겟돈>, <프루프 오브 라이프>, <베이트> 등)과는 그 궤도를 완전히 달리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즉, 앞에서 언급한 거대 조직의 비리와 주인공의 활약을 앞세운 단순한 장르물이 아니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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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마이클 클레이튼>도 기본 요소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U/노스라는 글로벌 회사가 만든 제초제로 인해 농부들이 죽었습니다. 이 때문에 7년 간에 걸친 소송이 진행 중이고 주인공은 회사 측 변호를 맡은 KBL 법률회사의 사고 전담 변호사입니다. U/노스가 악당이고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건 너무 뻔합니다.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사람마저 죽일 수 있다는 점 역시 충분히 납득됩니다. 주인공은 이 위험에 맞서 진실의 편에 서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토니 길로이와 같은 작가가 전형적인 스릴러를 만들고자 했다면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모를리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토니 길로이의 데뷔작 <마이클 클레이튼>은 스릴러의 공식을 거부합니다. 주인공 마이클 클레이튼이 경험하는 가장 극적인 사건이 영화 초반에 먼저 보여집니다. 죽을 뻔 했는데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를 체험을 통해 살아납니다. 그리고 영화는 4일 전으로 돌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던 내러티브가 다시 현재 시점과 만나는 순간은 영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입니다. 그리고 통쾌한 역전 만루 홈런을 때리며 순식간에 끝나버립니다.(사실 이 장면의 플롯 조차 너무 뻔하게 읽힙니다) 택시 뒷좌석에 탄 마이클 클레이튼의 얼굴을 롱테이크하며 엔딩 크리딧이 올라갑니다. 여운은 깊으나 스릴을 만끽할 겨를이 없습니다. <마이클 클레이튼>은 스릴러가 아닌 인간 드라마로 기억되고자 하는 영화입니다. 시종일관 의도적인 촌티를 냅니다. 80년대 TV 연속극이나 B 무비를 보는 듯한 미장셴입니다.1) 카메라는 마이클 클레이튼 뿐만 아니라 거의 광인처럼 행동하는 선배 변호사 아서(톰 윌킨슨)와 U/노스사의 법무팀장(틸다 스윈튼)의 모습까지, 스릴러의 구성에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지켜봅니다. 모두들 거대 자본과 조직의 불가항력 아래 짓눌린 인생들입니다. <마이클 클레이튼>은 이들의 갈등 구조를 부각시키기 보다 각 인물들의 개별성에 주목하는 영화입니다.

(스포일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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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클레이튼>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논란이 될만한 부분은 주인공이 기밀 유지 서약을 저버리고 U/노스의 중역들을 경찰에게 넘기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입니다. 사실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마이클 클레이튼이 자신에게까지 밀고 들어온 죽음의 위기를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8만 달러에 팔린 자신의 양심을 끝내 저버리고 말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결국 그와 같은 극적인 반전은 생각해내지 않았을런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마이클 클레이튼을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낸 언덕 위의 그 말들은 과연 무엇일까요? 아들이 추천하고 아서가 죽기 전에 줄쳐가며 읽던 붉은 표지의 판타지 소설2) 속 삽화 중에 말 한 마리가 들어있긴 했습니다. 그리고 마이클은 아들에게 “넌 강하니까 이겨낼거야. 난 알아.”라고 마치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폐인이나 다름 없는 주인공, 아버지와 아들, 어린 아들이 좋아하는 판타지, 그 판타지를 좋아하던 광인, 판타지 소설 속에나 나올 법한 언덕 위의 종마 세 마리, 그리고 구원. 그와 같은 계시적인 체험이 있어야만 우리는 체제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는 걸까요? 절반쯤 광인이 되어야만 사무실 밖으로 나와 세상을 다시 둘러볼 수 있게 되는 건가요? 자발적인 용기과 결단을 통해서는 결코 진실의 편에 설 수가 없는 걸까요? 영화는 단지 마이클 클레이튼과 같은 처지의 미국에게 그와 같은 계시적 체험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였을까요? <마이클 클레이튼>이 대중 영화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는 부분은 스릴러의 공식을 벗어던진 독특한 내러티브 구성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이 모호하게 형상화된 현실 인식과 주제 의식에 있습니다. 분명한 한 가지는 스릴러의 달인 토니 길로이의 감독 데뷔작에서는 모든 것이 의도적인 선택이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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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런 점에서 토니 길로이의 시나리오를 기초로 많은 영화를 감독한 테일러 핵포드의 지극히 단조로운 화법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토니 길로이의 연출은 다른 감독의 스타일을 따라했다고 하기 보다는 의도적인 화법 선택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좀 더 박진감 넘치는 스릴러의 연출을 원했다면 얼마든지 제이슨 본 시리즈의 스텝들을 불러모으거나 유사한 스타일을 다른 누군가에게 요구할 수 있었을테니까요. 촬영 감독인 로버트 엘스위트의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보아도 연출자가 원했다면 얼마든지 더욱 박진감 넘치는 화면을 보여줄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제가 단기 기억상실증이 있어서 이름이나 책 제목 같은 건 절대 외우지 못합니다. 그래서 스테판님 포스트에서 찾아왔습니다. <마법의 영토>(Realm and Conquest)라는 제목의 책인데 실제로 존재하는 책은 아니라고 하네요.

영진공 신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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