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즐링 주식회사> – 인생,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온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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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 감독의 다섯번째 장편 <다즐링 주식회사>는 2001년작 <로얄 테넌바움>에 이어 국내에서는 두번째로 정식 개봉된 작품입니다. 2004년작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은 빌 머레이가 주연을 맡으며 적잖은 기대를 모았었지만 결국 정식 개봉을 하지 못하고 DVD로만 출시된 바가 있습니다. 낯익은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웨스 앤더슨의 작품들은 지극히 소수 취향의 영화로만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번 <다즐링 주식회사>도 오웬 윌슨, 애드리안 브로디와 같이 잘 알려진 배우들을 앞세운 작품임에도 모 멀티플렉스의 인디영화 전용관 3군데에서 지극히 짧은 기간 동안만 상영될 뿐입니다.

그렇다고 웨스 앤더슨의 영화가 난해한 내용을 다루거나 지나치게 독특한 표현 방식을 사용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선호도에 따라 다소 지루한 감을 줄 수는 있으나 코미디와 가족 드라마의 범주를 결코 벗어나는 일이 없는 것이 웨스 앤더슨의 영화들입니다. 가족의 발견과 성장을 주제로 세련된 유머 감각을 구사하면서도 6 ~ 70년대 포크 음악과 슬로 모션을 적절히 사용하며 인상적인 ‘영화적 순간’들을 제공하기 때문에 단순한 코미디 영화 그 이상의 뭔가가 더 있지 않겠냐는 고민을 하게 만드는 면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대중적인 감각으로부터 다소 거리가 먼 작품들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 웨스 앤더슨 영화의 딜레마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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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즐링 주식회사>은 Part 1으로 명명된 13분짜리 단편 <호텔 슈발리에>로 시작됩니다. 파리의 호텔방에 처박혀 한달째 머물고 있는 잭(제이슨 슈왈츠먼)이 헤어진 애인(나탈리 포트먼)과 재회하는 이야기입니다. 짧은 단편이지만 일찌기 <로얄 테넌바움>에서 선보였던 디테일과 극적인 감수성을 다시 한번 응축해서 보여주는 작품이 <호텔 슈발리에>라고 생각됩니다.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등장해 남자 여럿 잡아먹을 듯한 도발적인 매력을 선보이는 나탈리 포트먼도 이채롭지만 그 앞에서 자궁 회귀본능을 달래는 콧수염 기른 제이슨 슈왈츠먼은 <로얄 테넌바움>에서 얼굴의 털을 다 밀어버린 채 손목을 긋고 말았던 리치 테넌바움(루크 윌슨)의 모습을 다시 보는 듯 합니다. 인도 출신의 영국 가수 피터 사르쉬테트(Peter Sarstedt)의 69년 히트곡 Where Do You Go To (My Lovely)를 들으며 호텔의 발코니로 이동하는 두 사람의 마지막 슬로 모션은 웨스 앤더슨 영화에서 경험할 수 있는 전형적인 ‘영화적 순간’의 재현입니다.

<다즐링 주식회사>의 본편은 아버지가 죽은 후 1년만에 만난 세 형제가 수녀가 된 어머니(안젤리카 휴스턴)를 찾아 인도를 여행하는 로드 무비입니다. 고용인이나 형제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나 여성들과 자기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세 형제는 아직 미성숙한 소년들에 불과합니다. 이런 남자 주인공들의 면모는 웨스 앤더슨 영화에서 줄기차게 대물림되고 있는 공통 유전인자라고 할 수 있는데, 전작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노년이 되어서도 유소년의 내면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던 아버지들이 부재하다는 사실입니다. 그와 유사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빌 머레이의 출연이 첫 장면에서 다즐링행 열차에 탑승하지 못하고 이내 사라지는 것으로 처리됨으로써 <다즐링 주식회사>의 내러티브는 동세대의 인물들만을 남겨놓는 한층 축약적인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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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세 남자의 인도 여행은 어찌보면 세상살이의 진짜 쓴 맛이라곤 한번도 경험해본 일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법한 부잣집 철부지들의 성장담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명품 여행가방 풀세트를 들고 기차를 향해 뛰고 또 올라타는 우아한 슬로 모션의 반복이라니요. 거의 홍상수 영화 속 인물들에 가깝던 주인공들이 열차 밖에서 극적인 경험을 하게 되고 과거의 공유된 기억을 떠올리며 관계를 복원하는 모습은 대부분의 로드 무비와 성장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장르적 컨벤션에 가깝습니다. 자신들을 버리고 왜 떠났느냐, 아버지의 장례식에는 왜 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어머니는 대사가 아닌 보여주기1)를 통해 세 아들과 관객들에게 화답합니다. <다즐링 주식회사>는 웨스 앤더슨 영화의 기존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보다 친숙하고 명확한 방식으로 주제를 앞뒤 딱 맞게 요약 정리하는 상당히 대중적인 화법의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다지 새로울 건 없지만 불변의 가치를 지닌 보편적 깨우침을 전달하는 영화가 <다즐링 주식회사>입니다. 주연급 배우들이 조연으로서 대거 참여해왔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에는 애드리안 브로디만이 새로 참여해 오웬 윌슨이나 기타 단골 배우들과의 순도 높은 케미스트리를 선보입니다. 주요 등장 인물들의 숫자가 적절하고 내러티브 또한 전형적이라 할 만큼 기승전결이 맞아 떨어지는 대중친화적인 작품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면서도 이제껏 보여줘왔던 웨스 앤더슨 영화의 스타일 상의 개성은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참에 <다즐링 주식회사>를 출발점 삼아 웨스 앤더슨 영화들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는 것도 썩 괜찮은 ‘웨스 앤더슨 월드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복잡한 분석과 인용을 필요로 하는 소수 취향의 영화가 아니라 누구나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한 보편적인 요소들에 좀 더 집중해보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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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소 장황할 수가 있는 대답을, 그리하여 작품 전체를 망쳐버릴 수도 있는 부분을 하나의 초현실적인 롱테이크로 펼쳐보이는 수법은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차라리 침묵하라”던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 ~ 1951)의 통찰을 떠올리게 합니다. 논리적인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들은 언어적 표현 대신 ‘보여주기’의 방법을 통해 전달이 가능하다고 했던 바, <다즐링 주식회사>의 이 장면이야 말로 형이상학적 주제를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삽입된 친절한 설명문이라 하겠습니다. 누구나 각자의 객실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지만 삶이란 결국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진정한 나’가 되기 위한 하나의 여정이란 깨달음을 웨스 앤더슨은 이 한 장면으로 통해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논리적인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대중적인 소통의 한 방식이 아니던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영진공 신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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