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사색의 해변으로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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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년생 일본의 여성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의 세번째 장편 <안경>이 개봉했다. 포스터가 또 희한하다. 안경 쓴 다섯 명이 해변가에서 이상한 동작의 체조를 하고 있다. 같은 감독의 전작 <카모메 식당>(2006)을 본 게 지난 10월 초. 여름의 일본인디필름페스티벌을 거쳐 8월 2일에 정식 개봉했으니 두 달이나 늦게 본 셈이다. <카모메 식당>의 포스터는 정말 가관이었다. 오토포커스 카메라로 찍은 듯한 사진 속 호숫가에 아줌마 셋이 멀뚱하게 서 있다. 영화가 엄청 좋더라는 얘기는 진작에 들었지만 그래도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예매를 하고 보러 가기로 한 날도 정말 힘들었다. 버스 안에서 잠깐 조는 바람에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 한강을 건너버렸다. 이제 다시 돌아갔다가는 저녁도 못먹고 자칫 상영 시간마저 놓칠 수가 있으니 깨끗이 포기하고 가까운 곳에서 다른 영화나 한 편 볼까 망설였다. 우물쭈물 하다가 결국 되돌아가는 버스를 타긴 했다. 이럴 때마다 “내가 영화(映畵) 한 편에 무슨 영화(榮華)를 누리겠다고 이 고생을 하는 건가” 생각한다. <슈퍼스타 감사용>(2004)에서 입단 테스트 한번 받아보겠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뛰던 양복 차림의 주인공 모습도 떠오른다. 다행히 상영 시간에 맞춰 <카모메 식당>을 보았다. 그리고 세상 부귀영화가 부럽지 않은 행복한 경험을 했다. 송이 버섯을 손에 쥔 김혜자 씨의 그윽한 표정을 지으며 되뇌었다. 그래, 이 맛이야. 이런 영화를 만났을 때의 충만한 기쁨 때문에 나는 좋은 영화를 고르고 또 보러 다니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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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과 <안경>은 모두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주요 출연진도 비슷하다. 그러나 헬싱키의 가정식 식당을 핸드폰도 터지지 않은 일본의 오지로 단순히 옮겨놓기만 한 영화가 <안경>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오해다. <카메모 식당>이 “그저 하고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뿐”이라며 완전히 다른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쪽이었다면 <안경>은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삶의 터전을 유지하면서도 새롭게 가꿔나갈 수 있는 비법에 대해 귀뜸한다.

<안경>에는 전작에 없었던 내러티브 상의 대립항이 존재한다. 잠시 조용하게 지낼 곳을 찾아온 타에코(코바야시 사토미)는 낯선 환경과 생활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갈등한다. 갈등 끝에 새로운 장소를 찾아 떠나지만 결국 고생만 실컷 하고 사쿠라(모타이 마사코)의 도움을 받아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온다. 집에서부터 가져온 무거운 여행 가방을 버린 그 순간부터 타에코는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받아들이게 된다. 낯익은 내러티브 구조를 선택한 것은 관객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서려는 감독의 의도다. <안경>은 또한 이상적인 멘토와 성장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말로 설명하기 보다 스스로 맛을 보고 경험하도록 기다려준다. “비법은 서두르지 않는 데에 있어요.” 빙수에 쓸 팥을 삶을 때 오랫동안 지켜보며 기다리는 사쿠라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이미 백 마디 말보다 훨씬 더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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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지 않는 삶의 비법을 따라 <안경>의 카메라도 엄청나게 느리다. 보통 영화에서라면 진작에 휙휙 건너뛰었을 장면들을 인내심 있게 관찰한다. 해변가에 모인 사람들의 일상적인 움직임에서 그리고 그들 앞에 놓인 푸른 수평선 너머에서 사색의 기회를 발견해 관객들에게 제공한다.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는 말로만 떠들지 않는다. 영화에 담을 메시지를 그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고스란히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영화 속에 동화되어 그 비법의 결과물들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된다.

핀란드로 이민을 가서 직접 식당을 차리거나 박민규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2003)의 주인공들처럼 삼천포로 아예 이사갈 필요는 없다. <안경>을 “단번에 찾아올 수 있을 만큼 소질이 있는” 관객이라면 자기 삶 속에서도 얼마든지 사색의 습관을 가꿀 수 있는 해변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영화관도 사색을 위한 훌륭한 해변가다. 숨가쁘고 골치 아프고 마음 상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꿈의 커뮤니티에 참가하는 일이다. 이 글을 읽고 <안경>을 보기로 했다면 당신도 충분히 “소질이 있는” 사람이다. 평소 차림 그대로, 핸드폰 통화를 할 수 없는 극장이라는 외딴 해변가에 가서 사색의 시간을 체험하고 서두르지 않는 삶의 비법을 배워오기 바란다. 당장 내년 여름휴가에 핸드폰도 인터넷도 안되는 실제 사색의 공간으로 찾아가 보는 일은 옵션이다.


영진공 신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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