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갱스터>, 갱스터 영화의 선 굵은 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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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갱스터>는 60년대 말부터 70년대에 걸쳐 활동한 뉴욕 할렘의 마약왕 프랭크 루카스의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영화는 프랭크 루카스(덴젤 워싱턴)의 성공과 몰락을 그리는 전형적인 범죄물과 그를 체포했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공직사회 전반에 만연해있던 마약 커넥션까지 소탕해낸 청렴한 형사 리치 로버츠(러셀 크로우)의 수사물을 병렬하며 진행됩니다. 프랭크 루카스의 이야기가 <스카페이스>(1983)를 연상시키는 갱스터 영화의 전형성을 보여준다면 리치 로버츠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비타협적이었던 나머지 파트너와 가족을 모두 잃어버리면서도 그런 강직함을 기반으로 ‘역사적인 전기’를 일궈내는 영웅담에 가깝습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과 스티브 자일리언의 각본은 원안에서 비중이 적었었다고 알려진 리치 로버츠의 역할을 키우는 동시에 전체적인 내러티브를 프랭크 루카스의 일대기와 병렬 배치시키는 방식으로 재구성함으로써 갱스터 장르의 전형성을 답습하지도 않고 기존 걸작들의 꽁무니를 뒤쫓아가는 듯한 모습도 모두 피해나가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아메리칸 갱스터>는 서로 적대적인 관계일 수 밖에 없는 두 인물이 어떤 점에서 교집합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두 사람이 마침내 만나게 되었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지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두 인물의 이야기와 함께 제시되는 또 하나의 줄거리는 다름아닌 베트남전입니다. 태국과 베트남 밀림의 헤로인 생산지로부터의 직거래와 미군 수송기를 이용한 물류 라인의 확보, 순도 100%의 마약을 기존 제품 보다 싼 가격에 시장에 내놓으면서 성공을 일군 프랭크 루카스의 사업 방식 자체가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가능했었던 만큼 미국의 패전과 철수는 곧 프랭크 루카스의 몰락을 예고합니다. 이를 위해 영화는 TV 방송을 통해 전달되는 베트남전 관련 뉴스를 지속적으로 삽입합니다. <아메리칸 갱스터>는 미국 자본주의 체제의 폭력성을 재확인시키기도 하지만 미국이 해외에서 벌이는 크고 작은 전쟁들과 첩보전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갱스터 영화로서 미국 사회의 내면적 초상화를 그려내는 데에 성공했던 작품들은 많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미국의 전쟁 경력까지 건드려주는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메리칸 갱스터>는 이제 종전 단계로 치닫고 있는 이라크 전쟁에 관한 비판적 시각으로서도 충분히 유효성을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갱스터 영화는 처음이지만 리들리 스콧이 전쟁 영화를 자주 만들어왔고 현재의 미국에 대해 완곡하게나마 자기 목소리를 담아왔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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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갱스터>가 굉장히 잘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또한 미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작품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남는데요, 그것은 프랭크 루카스와 리치 로버츠가 마침내 피의자와 기소인의 신분으로 대면했을 때 나온 리치 로버츠의 대사 때문입니다. “당신과 같이 성공한 흑인은 곧 진보를 의미한다. 진보(Progress)는 기득권층의 해체를 의미하지. 당신이 법정에 서게 됨으로써 모든 것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거야.” 이 대사는 막대한 뇌물로 리치 로버츠를 회유하려던 프랭크 루카스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이번에는 오히려 리치 로버츠가 프랭크 루카스를 회유해 마약 커넥션에 연루된 경찰 조직을 소탕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말에 프랭크 루카스와 리치 로버츠의 양대 ‘똘끼’가 의기투합, 당시 미국 공직사회에 만연해있던 부패를 소탕하고 관객들에게는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게 됩니다. 그런데 “진보는 기득권층의 해체를 의미한다”는 대사가 주는 울림1)은 그보다 훨씬 더 큰 것입니다. <아메리칸 갱스터>는 그 자체로도 이미 훌륭한 작품이지만 프랭크 루카스의 등장으로 기존의 기득권층이 붕괴하고 반발하는 모습 만큼은 다소 피상적으로 다뤄진 것이 아니냐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프랭크 루카스는 자기 생존과 부귀영화를 위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폭력배이기도 하지만 선배 세대와는 다른 접근 방식으로 성공을 일궈낸 인물로 묘사됩니다. 15년간 모셨던 보스는 생산자 직거래를 앞세우고 가게 주인은 커녕 종업원 얼굴도 보일락말락 하는 대형 할인점의 득세를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프랭크 루카스는 그와 같은 새로운 사업 방식을 마약 시장에 도입했습니다. 기존의 유통 방식을 깨고 거의 독점에 가까운 지위를 누렸기 때문에 기존의 마약 커넥션에 연루된 자들은 몰락하거나 일자리를 잃을 수 밖에 없었죠. <아메리칸 갱스터>는 프랭크 루카스과 그 일당의 폭력적인 측면 보다 개혁적인 경영인으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키는 쪽에 비중을 두는 데다가 영화의 절반은 리치 로버츠의 이야기에 할애하느라 “진보와 개혁이 기존 질서를 허물고 기득권층과 갈등하는 양상”를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데에까지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런 부분은 <아메리칸 갱스터>의 흠결이라기 보다는 이후에 만들어질 또 다른 갱스터 영화들에게 남겨주는 숙제와 같은 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 마에스트로로서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한 리들리 스콧의 연출이나 감독 보다는 각본에 출중한 재능을 보이는 스티븐 자일리언의 시나리오, 덴젤 워싱턴2)과 러셀 크로우를 비롯한 배우들의 흠잡을 데 없는 캐릭터 연기, 그리고 촬영과 배경 음악의 사용 등 무엇 하나 놓치지 않은 <아메리칸 갱스터>는 다사다난했던 2007년의 마지막 개봉영화로서 손색이 없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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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여 정부가 갱스터 집단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집권을 하자마자 탄핵을 당하고 결국 이번 대선을 통해 빽도를 하게된 우리나라의 동시대적 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관점이란 생각에 이 대사를 듣는 순간 저는 심장이 벌렁벌렁했더랬습니다. 스쳐지나가는 묘사나 대사로만 끝내지 말고 그런 갈등 상황을 좀 더 부각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럼에도 프랭크 루카스와 리치 로버츠 모두 기존 질서를 거부함으로써 성공과 어려움을 경험하고 마침내 두 인물이 의기투합하여 일견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해냈다는 내러티브의 구성에는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습니다.

2) 9.11 테러 직후 사회 불안을 해소하는데 일조하고자 했던 헐리웃에 의해 <트레이닝 데이>(2001) 같은 작품으로 얼떨결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덴젤 워싱턴입니다. 그가 아카데미상을 받을만한 자격이 충분한 배우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입증이 되었음에도 그와 같은 정치적 맥락 때문에 신통찮은 영화로 상을 받는 모습이 좀 껄끄러워 보였는데요 이번 <아메리칸 갱스터>는 흑인 배우로서 처음 2회 수상의 영광에 도전하기에 충분한 작품이고 또 그런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생각됩니다. 남북 전쟁 당시의 흑인 부대의 이야기를 다룬 <영광의 깃발>(Glory, 1989)에서 처음 본 이후로 계속 좋아해왔던 배우였지만 최근엔 다소 매너리즘에 빠졌는가 싶었는데 이번 영화는 덴젤 워싱턴의 복귀라고 해도 충분한 정말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너무 만족스러웠습니다.


영진공 신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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