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ple Inc.와 포드주의

2007년 7월 Apple Inc.는 iPhone을 내어 놓으면서 정직원과 1년 이상된 파트타임 직원에게 이를 선물했다. 근대에 들어서 한 회사의 ‘생산물’이 그것의 생산에 개입한 노동자가 아무런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소유’하게되는, 조금 혁신적인 사건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이는 처음이 아니다. Apple Inc.는 2005년도에도 iPod shuffle을 전 직원에게 선물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고려해보면 실상은 이와 다르다. 사실 iPhone이든 iPod shuffle이든 분명히 각인된 정보로는 디자인은 캘리포니아의 Apple Inc.에서, 제조 자체는 중국에서 이루어졌고, 중국의 하청업체 노동자는 iPhone을 받지 못하며, 물론 iPhone의 부품인 칩셋을 제공한 소니와 삼성 등등의 기업 노동자도 iPhone을 받을 수 없다.

더군다나 경영관련 서적 좀 넘겨본 사람들은 1만7천여명이 넘는 Apple Inc. 직원 전원이 iPhone을 갖게 되어 이로 인해 생겨나는 부가적인 요소들에 대해 여러 항목들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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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생산수단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은 그리 멀지 않은 시대다. 농작물을 생산하는 농토 단위면적당 생산량의 경제성이 양모를 생산하는 목초지 단위면적당 생산량의 경제성보다 떨어지면서, 농노는 ‘예속’관계에 있으면서 생산수단이던 토지를 버리고, ‘살기 위해’ 도시를 찾아 공장으로 들어갔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 매우 잘 묘사해둔 ‘분업’은 결국 이렇게 공장을 찾아 들어간 노동자들이 자기 힘으로 만든 ‘생산품’에서조차 ‘소외’되게 만든다. 대장장이가 철을 녹여 못을 만들 줄 알아 이를 소유하고 거래하던 시대를 지나 대장장이 여럿이서 쇠를 녹이고, 못의 머리를 만들고, 몸통을 만들고, 이를 다시 결합하는 작업을 나누어서 하는 시대도 지나 아예 이 생산품을 소유는 커녕 대리로 ‘돈’을 받아가며 만들어주는 시대가 온 것이다.

생산 수단으로부터 ‘타의로 인해 자유롭게 된’ 노동자, 자기 노동으로 생산품을 만들어도 그게 ‘내 것’이 안 되는 노동자.

나는 Apple Inc.의 사건을 그 괴리감의 중간 쯤 놓인 혁신적인 사건이라 보는 거다.
생산에 관련된 모든 노동자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제조사’에 있으면서 ‘제조품’을 가질 수 있고, 잉여 생산품을 ‘내다 파는’ 그런 원시적인 개념으로 말이다.

Fordism이라는 것이 있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포드주의라 할 수 있겠다. 자본주의 경제 철학 중 하나인 이 사상은 단어에서 알 수 있듯, Ford Motor Company의 창설자인 Ford가 생각해 낸 것이다.

세계 경제 공황의 파급으로 인해 Ford Motor Company는 생산된 차량의 재고만 쌓이고 팔리질 않았다. 이로 인해 Ford가 내어 놓은 정책은 노동자의 임금을 인상하는 방안이었다. 경기가 경색되어 소비자가 지갑을 열지 않으면 결국 생산품이 팔리지 않아 생산도 줄어들고 전체 부가 감소하는 악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결심한 정책이었다.

물론 모든 노동자가 임금이 오른다고 Ford 자동차를 사는 건 아니다. 하지만 Ford Motor Company의 노동자는 오른 임금으로 인해 어느 정도 소비의 여유가 가능했고, 이로 인해 주변 경기의 경색도 완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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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재미난 나라이다. 대학생들 대다수가 자신은 ‘진취적’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가진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하고, 그렇기 때문에 경쟁사회를 당연히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는 듯 하다. 옆 나라 일본과 비교해 보면 그런 태도는 상이하다.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일본은 결국 근래에 인력이 모자라서, 대학 4학년생들은 이미 취업이 대부분 결정되었고 취업설명회도 3학년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취업 희망 직장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회사가 아니라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미는’ 온화한 직장 분위기를 선호한다.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복지부동으로 편안히 다닐 수 있는 직장을 의미한다. – 일본에서는 법령으로 정년에 대해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얘기하는 복지 부동은 우리 네의 공무원 인식과 비슷한 이야기로 인식하면 된다 –

차라리 일본 청년의 다수가 더 자기 정체성에 충실하다. 대한민국 청년 다수는 고용 불안에 대해 하나의 정체성이 두 가지 대응을 한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경쟁하면 살아남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선호하는 직장은 철밥통인 공무원’이 되어버리는 웃긴 상황이 오는 거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편의점 알바까지도 사장님 마인드로 경영에 충실하다.

대한민국 대기업 신입사원 연봉 평균은 일본보다 꽤 높다. 이는 정년 보장이 되지 않는 우리나라 현행 법령과 보장이 되는 일본의 차이로 인해 노조가 얻어낸 결과다. 대기업 취업이 희망인 한 경영대 학생의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온다.

“임금이 높은 이유는 귀족 노조 때문이죠”

이게 바로 우리가 미처 자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현실의 괴리이며, 노동자 따위 안중에도 없게 만드는 언론과 사회 풍토가 만들어내는 비극이다.

‘돈’이란 건 돌고 돌아야 전체의 부가 증가한다.

억울하게 ‘귀족 노조’라 불리는 노동자도 임금을 받으며 이 임금에서 국가에서 요구하는 세금으로 ‘원천징수’를 당한다. 차라리 온갖 비리와 탈세로 얼룩진 대한민국 대기업의 타락한 모습보다 깨끗하다.

물론 노조도 이권으로 인해 타락할 수 있으며, 노동자도 연말정산에 종교단체에 기부하지도 않은 돈을 기부했다며 익세를 한다.

어쩌면 이마저도 사장님 마인드에 충실한 노동자들이 넘치는 나라여서인지도 모른다.
타인이 나보다 소득이 많아서 행복한 세상이라면 문제가 있다.
그러나 타인이 나보다 소득이 많아서 더 많은 기회와 권력을 가지게 되는 사회라면 그건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다.


영진공 함장

“Apple Inc.와 포드주의”의 4개의 생각

  1. 정말 좋은글입니다. 근래 진보적경제학자들이 갈수록 늙어가서(김수행교수도 은퇴하고) 제대로 된 글을 볼 수 없는데, 아주 반갑습니다. 함장님. 이제 왠만한 경제학 교수들보다 더 풍부하고, 정돈되고, 단단한 글을 쓰십니다. 그려

  2. 전, 중반부는 괜찮았는데 글의 결말부분은 설득력이 떨어져 보이는군요.

    대한민국 대기업 신입사원 연봉 평균은 일본보다 꽤 높다. 이는 정년 보장이 되지 않는 우리나라 현행 법령과 보장이 되는 일본의 차이로 인해 노조가 얻어낸 결과다. ->이 부분에 대한 근거가 있나요? 글쎄요..

    그리고 ‘귀족 노조’라는 말이 전체 노조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그야말로 이권을 가지고 장난치고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던 일부 노조를 지칭하던 말 아니었나요?

    고의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지칭을 교묘하게 혼동하여 마치 언론의 장난에 의해 대부분의 사람(학생?)들이 노동자를 다 귀족 노조라 평하고 폄하한다는 식으로 결말이 나와버리는군요?

    앞뒤말 다 짤리고 “임금이 높은 이유는 귀족 노조 때문이죠” 라는 말 한마디를 근거로

    노동자 따위 안중에도 없게 만드는 언론과 사회 풍토가 만들어내는 비극이다.

    라는건 너무 중간에 건너뛴 갭이 커보입니다..

    그 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면 정말 단단한 구조가 됐을것 같네요.

    1. 임금의 결정은 사측과 노측이 협상해서 얻어지는 과정이죠. 분명 법으로 정년을 보장하는 일본과 이제 보장하지 않는 우리 사이에서 ‘재계’에서 늘 얘기하는 것은 가까운 일본의 대기업 평균 연봉이 우리보다 낮다는 것인데, 늘 이 ‘법’의 유무 차이는 쏙 빼먹고 얘기합니다.

      ‘귀족 노조’라는 단어 자체가 언론의 장난이죠. 노조에 귀족이 어디 있나요? 귀족 노동이 있나요?

      직장 생활 해보면 느끼는 거지만 정말 노동자에게 ‘파업’ 만큼 강력한 무기는 없거니와 그 ‘무기’ 마저도 간단히 무시할 수 있는 게 ‘해고’라는 겁니다. 법에서 아무리 ‘부당해고’를 못 하도록 보호해주려 해도, 일단 해고된 뒤에 닥쳐오는 생계 불안은 몇 날 며칠 농성을 하든 시위를 하든 ‘법 절차’가 행정적으로 이루어지는 긴 시간 동안 ‘노동자’는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글에서도 밝혔듯, 노조도 노동자도 자신의 밥그릇을 위해 취업대기자들에게 기득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노조’를 ‘귀족’으로 만들어버리고, ‘친기업문화’의 적으로 만들어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 나라에 ‘노동자’와 ‘노조’ 자체가 불건전하게 보이도록하는 행태는 역겨울 수밖에 없는 거죠.

      이 ‘당연한’ 사실이 외면되기에 어쩌면 그 ‘건너 뛴 갭’이 커보이실 거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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