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재킷>, 이게 웬 걸프전 천사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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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포스터에서 연상되는 이미지가 실제 영화 내용과 달라 작품이 평가절하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관객이 예상하고 찾아왔던 그 내용을 보여주지 않아 억울한 죄 값을 치르는 거죠. 영화가 너무 형편없이 만들어져서 혹평을 듣는 경우는 변명할 건덕지조차 없습니다만, 관객이 예상했던 내용과 실제 내용 간에 불일치가 있어서 실망을 안겨주는 일은 영화를 만든 이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대중들에게 영화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왜곡 때문에 발생하기도 합니다. 있는 내용을 그대로 알리자니 관객들의 흥미를 끌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좀 더 일반적인 대중 영화로 보이게끔 재포장을 하는 거죠. 덕분에 첫 주말 개봉에서 꽤 많은 스크린 수를 확보할 수 있게 되지만 그 대신 일반적인 화법과 내용을 기대하는 다수 관객들과의 충돌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시하다, 이상하다는 평을 들으며 어느새 사라지게 됩니다.1)

애드리안 브로디와 키이라 나이틀리를 내세운 <더 재킷>의 국내용 포스터는 그런대로 무난한 편입니다만 이 영화의 오리니널 포스터는 완전히 하드코어 호러물입니다. 애드리안 브로디의 얼굴을 잔뜩 왜곡시켜놓고 두 눈을 뻘겋게 칠해놓으니 좀비 영화 포스터가 따로 없습니다. 이상한 재킷을 입으면 사람이 괴물로 변하는 내용인가, 궁금해지기는 합니다. 호러 영화의 이미지를 버리고 어지간한 스릴러 영화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진 국내용 포스터는 SF 스릴러 쪽에 가깝습니다. 여기에 영화 잡지의 프리뷰 제목은 “걸프전 증후군을 다룬 스릴러”였습니다. 갑자기 걸프전이라니,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애드리안 라인 감독, 팀 로빈스 주연의 <야곱의 사다리>(1990) 생각이 나면서 지금도 이라크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을 호되게 꾸짖는 내용인가보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재킷>의 실제 내용은 호러도 아니요 SF 스릴러도 아니요 전쟁 비판도 아닌, 삶과 주어진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아주 착한 영화였습니다.

브래드 앤더슨 감독의 <머시니스트>(2004) 도 너무 착한 결말 때문에 호불호가 상당히 엇갈렸던 작품이었습니다.2) <머시니스트>와 <더 재킷>은 제니퍼 제이슨 리가 두 작품에 모두 출연하고 있다는 점 외에도 유사점이 꽤 많습니다. <머시니스트>와 같이 결말을 알고 나면 이제껏 긴장하고 궁금했던 모든 것이 다 해결되어 버리는, 그리하여 허탈하기까지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더 재킷>도 약간 지나치게 건전한 결말을 유도하고 그와 같은 메시지를 관객 호주머니 속에 푹 찔러 넣어주기까지 하는 강박증을 보입니다. 어쩌면 스티븐 소더버그와 조지 클루니에 의해 영화 제작이 주도되고 여기에 연출자가 섭외된 형태로 만들어지다 보니 최종 편집 과정에서 감독의 의도 보다는 제작자의 현실적인 판단이 더 앞세워졌던 탓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진행된다는 점에서는 <더 재킷>이 <머시니스트> 보다 좀 더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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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재킷>은 내용 면에서 호러도 스릴러도 전쟁 비판도 아닌, 차라리 <베를린 천사의 시>(1987)를 연상시킵니다. 주인공 잭(애드리안 브로디)은 91년 걸프전 참전 하사관인데 치명적인 총상을 입고 1년 후 귀국하자마자 경찰관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정신병원에 수감됩니다. 중증 환자 치료용 압박 재킷을 입고 약물이 투여된 다음 시체 보관함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를 통해 가까운 미래, 2007년으로의 시간 여행을 하게 됩니다. 와우. 이 정도 설정이라면 영화는 어디로든 마음먹은 대로 뻗어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더 재킷>은 스펙타클이나 정치적 메타포의 제시 보다는 지극히 개인화된 삶의 소중함 일깨우기로 마무리됩니다. 그런 메시지가 결코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더 재킷>을 보러온 관객들의 기대와는 다소 어긋나는 내용일 수 있겠다는 얘기입니다. 이와 반대로 생각지도 않게 마음이 크게 움직여서 영화가 정말 좋더라는 반응도 나올 수가 있겠습니다.(이런 얘기는 보통 극장 상영이 끝난 후 케이블 TV를 통해 우연히 보다가, 이렇게 시작되죠)

애드리안 브로디는 어떤 작품에서건 크게 실망할 일이 없는 좋은 배우이긴 하지만 그간 보아왔던 작품들 가운데 ‘제대로 주연작’이 그리 많지 않았던 탓에 아쉬움이 남았었는데 이번 <더 재킷>이 그런 아쉬움을 어느 정도 해갈시켜줍니다. <더 재킷>이 애드리안 브로디를 확인하는 작품이라면 키이라 나이틀리는 배우로서 다시 발견하게 되는 작품이라고 할만 합니다. 주인공이 바꿔놓은 미래 때문에 같은 인물이지만 판이한 두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을텐데 덕분에 키이라 나이틀리가 가진 배우로서의 역량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중년이 된 제니퍼 제이슨 리가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해주면서도 역시 좋은 배우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이제는 새로운 제임스 본드로 자리를 굳히신 다니엘 크레이그 역시 그리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인상적인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전반적인 배우들의 캐스팅이나 연기에 있어서 만큼은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스티븐 소더버그에 조지 클루니까지 제작에 참여한 작품인데다가 걸프전이 배경이 된다고 해서 실제 영화 내용과 다른 예상을 하고 봤더니 어쩔 수 없는 섭섭한 마음을 갖게 되었네요. 반복되는 말입니다만 <더 재킷>은 엄청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호러나 액션 스릴러가 전혀 아니고 비교적 잔잔한 흐름의 판타지 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시체 보관함에 갖혀서 괴로워하는 애드리안 브로디와 함께 폐소공포증을 경험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건 잠시일 뿐, 그곳에 들어가야만 수수께기를 풀고 미래를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주인공과 함께 기꺼이 자청해서 함께 들어가고자 하게 됩니다. 시나리오 자체가 그랬던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연출은 흠잡을 데 없이 참 잘된 영화입니다. 존 메이버리의 전작 <러브 이즈 더 데블>(Love Is the Devil: Study for a Portrait of Francis Bacon, 1998)도 보고 싶고 2008년 말 개봉 예정인 차기작 <The Edge of Love>도 기대가 되네요. 차기작에는 키이라 나이틀리, 시에나 밀러, 킬리언 머피 등이 출연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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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더 재킷>은 2005년작으로 좀 늦었지만 워너 브라더스의 배급 덕분에 국내에서도 정식 개봉을 하게된 경우라고 생각됩니다. 배급사와 극장들 간의 불평등 조약 덕분에 극장이 걸고 싶지 않은 영화라 하더라도 약속된 수의 영화는 일정 기간 틀어줘야 한다더군요. 이런 점은 공중파와 케이블 방송 쪽도 마찬가지이고요. 한국영화의 경우 제작사가 배급도 하는 경우가 많아 형편없는 영화들이 대다수 스크린을 독식하는 일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수입은 오히려 그 반대로 화제작은 아니지만 꽤 볼만한 영화들을 종종 멀티플렉스에서 감상할 수 있게 해주는 기회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2) 시종일관 엄청난 긴장과 공포감을 불러일으키지만 결말을 알고 나면 ‘그게 전부 그거 때문이었어?’하는 식이 됩니다. 저 역시 썩 마음에 드는 결말은 아니었지만 <머시니스트>는 크리스챤 베일의 살신성인하는 연기 때문에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영진공 신어지

“<더 재킷>, 이게 웬 걸프전 천사의 시?”의 7개의 생각

    1. 2번 각주에 영화 제목이 없어서 혼란스러우셨던 것 같아
      뒤늦게 < 머시니스트> 영화 제목을 구겨 넣은 겁니다. ^^;

    2. 아 그렇구나. 그럼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 헷갈린 거군요.
      근데 2번에 영화제목이 원래 없었다면… 헷갈릴 만하잖아효!!!

    3. 본문을 읽다가 2) 각주를 읽으러 내려오시면 헷갈리지 않는데
      각주만 따로 읽으실 때에는 헷갈릴만하다고 판단되어서 뒤늦게
      영화 제목을 넣었습니다. (끝까지 답변 달아드립니다. 친절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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