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 뭐 좀 하는가 싶더니 지지부진하게 끝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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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봤던 중에 가장 인상적인 호러 영화를 하나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새벽의 황당한 저주>(Shaun of the Dead, 2004)를 들고 싶습니다. 제목부터 조지 로메로 감독의 고전을 재치있게 패러디하고 있는 좀비 영화 <새벽의 황당한 저주>는 비록 극장 개봉을 못하고 DVD로 직출시되었던 작품이지만 정말 애써서 꼭 한번 찾아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정통 호러물이라기 보다는 영국식 코미디를 호러 장르에 이식하는 데에 성공한 작품이라고 보는 편이 맞겠죠. 관객들이 코믹한 분위기에 완전히 긴장 풀었다 싶으면 느닷없이 깜짝 놀래켜주는 면도 있긴 하지만요. <세브란스> 얘기를 하기 전에 <새벽의 황당한 저주>를 언급하게 된 건 같은 영국 영화이면서 “피가 튈 때 폭소도 튄다”는 <세브란스> 역시 비슷한 작품일 것이길 바랬던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 보다는 좀 더 짓굳은 농담에 호러로서는 좀 더 쎄고, 그리고 섹스 코미디의 재미도 안겨주길 바랬습니다.

영국 군수산업체의 직원들이 헝가리의 외딴 곳으로 단합 대회를 옵니다. 그리고 여느 호러물과 마찬가지로 차례로 죽임을 당하죠. 결국 호러물이란 주인공과 그 동료들이 누구에게 죽임을 당하느냐, 그리고 그(들)은 왜 주인공과 동료들을 죽이려고 드느냐의 두 가지 변수만 다를 뿐 대부분 비슷한 줄거리를 따라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주 작정한 영화가 아닌 이상 주인공 한 두 명은 꼭 살아남게 되고요. <세브란스>는 우선 설정이 좋습니다. 미국, 프랑스 등과 함께 세계 무기 시장을 석권해왔고 각종 크고 작은 전쟁에 개입해왔던 영국 정부와 군수업체에 날을 세웠습니다. 과거에 그들이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오늘날 주인공들이 뜻하지 않은 위험에 처하게 된 겁니다. 단합을 강조하지만 무능하기만한 리더쉽과 조직 문화에 대한 풍자도 유쾌하고 무엇보다 기존 호러 장르에 대한 비틀기가 장면마다 상당한 자신감에 넘쳐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공들과 그들 간의 싸움이 본격화되면서 영화는 더이상 풍자물도 아니오 호러물도 아닌 지루한 액션 영화로 변질됩니다.

압도적인 죽임의 위협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사투가 아니라 해볼만한 싸움이 되었을 때, 그리고 결국 영국인 남자와 미국인 여자가 그들을 물리쳤을 때 애초에 이 영화가 겨냥했던 영국 정부와 군수산업에 대한 비판의식은 완전히 실종되고 맙니다. 굳이 동정을 해줘야 할 상대라고 볼 수도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는 우리의 것’ 식이 되어버리니 보던 사람도 그래 니들 잘났다 하고 마는 겁니다. 도망가랴 싸우랴 정신 없는 와중에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또한 마지막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 조차 농담을 날리는 여유는 인정할만 합니다만 더이상의 호감을 유지할 수가 없더군요. 영화를 보다보니 미국인 배낭 여행객들이 슬로바키아에서 된통 당한다는 설정의 <호스텔>(2005)이 궁금해졌습니다. 공포물이라기 보다는 악취미 영화에 가깝다고는 하지만 <세브란스>의 지지부진한 후반부에 비하면 차라리 낫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호스텔>의 주인공들도 마침내 살아남게 될까요? 보기 전에는 알 수 없겠지만 아마 그럴 것 같다는 예상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살려내긴 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호러 영화들이야 말로 진정한 대중 영화의 모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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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신어지

“<세브란스>, 뭐 좀 하는가 싶더니 지지부진하게 끝나는”의 한가지 생각

  1. 이 영화 보고나서 지금은 아내가 된, 그 당시의 자기한테 싹싹 빌었지요 명동 시큐엔이 난방이 안되서 담요를 덮고 본 영화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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