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의 사탑은 마(魔)의 지대일까?


 
 

굳이 과학에 관심이 있는 과학 꿈나무가 아니었더라도 어린 시절 한번쯤은 갈릴레이의 피사의 사탑 실험을 들어봤을 것이다. 호랭이 담배 피던 시절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무거운 물체일수록 속도가 빠르다고 설레발 친 것을 16세기에 갈릴레이가 ‘그게 아닐텐데!’ 하며 피사의 사탑 꼭대기에 냅다 올라가 무거운 추와 가벼운 추(어떤 책에는 쇠공과 깃털이라고도 적혀있다!)를 동시에 놓자 지면에 동시에 떨어져 ‘모든 물체는 무게와 상관없이 동시에 떨어진다’라고 일갈하며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뻑큐 한 방 먹였다는 이 훈훈한 이야기는 갈릴레이만 나오면 볶음밥에 딸려 나오는 계란 후라이 마냥 어김없이 따라 나온다.

하지만 쥐똥만큼의 호기심이라도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 주장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했을 것이다. 피사의 사탑이 무슨 버뮤다 삼각지대도 아니고 어떤 어둠의 힘이 깃들여 있길래 무겁든 가볍든 동시에 떨어진단 말인가! 궁금증으로 삼일 밤낮을 고민하다 은행에서 대출받아 피사의 사탑으로 날아가봤자 그 동네라고 우리 동네랑 다르지 않다. 우리의 생각대로 피사의 사탑에 올라가 실험해 본들 동시에 떨어지지 않는다. 당 이야기는 갈릴레이의 제자이자 전기작가인 비비아니가 구라친 이야기가 지금까지 내려오며 정설이 된 것이다. 서로 다른 무게의 물체가 동시에 떨어지는 것은 진공 상태에서만 가능한 실험이다. 대기 중에서는 공기의 저항으로 인해 질량이 무거운 물체가 먼저 떨어지게 된다.




그럼 왜 이런 거짓부렁이 아직도 버젓이 책에 실려 호기심 충만한 아이들의 원형탈모를 유발시고 가뜩이나 관광수지 적자인 나라에 부담을 주는 것일까? 진정 관광산업을 노린 이탈리아 정부의 음모일까?!




사실 단지 갈릴레이가 낙하 실험만 하지 않았을 뿐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체의 낙하 운동’에 대한 갈릴레이의 반박은 실제 있었고 과학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습관처럼 쓰여진, 팔다리 다 잘라내고 몸통만 갖다 붙여 놓은, ‘동시에 떨어진다’로 끝나는 피사의 사탑 이야기는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도 아니고 수박밭 거름 씹어먹으며 수박 먹었다고 기지개 하는 꼴이라 볼 수 있다. 그럼 제대로 수박을 먹으며 이야기의 내막을 알아보자.


 

일찍이 고대 그리스에서 잘나가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색과 관찰을 통해 수많은 업적을 이뤄냈다. 그가 제시한 대표적 이론 중에는 세상은 물, 불, 흙, 공기 이렇게 4가지 원소로 이루어졌다는 4원소설이 있다. 원소들은 적당한 성질을 더하거나 빼면 다른 것으로 전환될 수 있고 세상의 모든 물질은 이 4가지 원소의 비율의 변화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에서 보면 굉장히 환타지한 이론이긴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명성에 힘입어 4원소설은 연금술과 플로지스톤론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끼치며 오래도록 과학계의 발목을 제대로 잡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4원소설을 바탕으로 물체의 낙하운동에 대해서도 썰을 풀어놓는다. 


1. 물체의 자연적 운동은 그 내부에 존재하는 네 가지의 기본 원소의 비율에 따라 결정된다.

흙으로 구성된 물체는 불의 원소의 비율이 큰 물체보다 더 큰 자유낙하 속력을 갖으며 흙 본연의 장소인 지구와 우주의 중심으로 가면 갈수록 더 빠르게 움직인다.




2. 진공은 존재할 수 없다. 


 

낙하속도는 매질의 두께나 저항에 반비례한다. 진공은 저항이 0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의 물체의 낙하속도는 무한대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불가능하다.

 

* 아리스토텔레스가 진공은 존재할 수 없다고 우기는 바람에 명성에서 후달렸던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원자가 빈 공간에서 영구적 운동을 한다)은 물먹게 된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정의 전제는 물체의 낙하속도를 무게의 측정값으로 생각했다는 거다. 즉 A, B의 물체 중 B의 낙하속도가 더 빠르다면 이는 B의 무게가 A의 무게보다 무겁다라는 뜻이다. 또한 그가 말하는 낙하 속도는 평균 속도에 가까운 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낙하이론은 이후 계속적으로 문제들이 제기되긴 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이름값 앞에서 무시되었고 오래도록 보편적 진리로써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16세기에 이르자 새로운 생각들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기계주의 철학이라 일컫는 이 패밀리들은 아르키메데스의 정신을 이어받아 과학적 유추와 실험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그 패밀리의 대표 타자 중 한 명이 바로 갈릴레오이다.




그는 과학적 유추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낙하 운동을 반박한다.




① A는 v의 속도로 B는 v’의 속도로 떨어지려고 하기 때문에 A는 B를 더빨리 떨어지게 하려하고 B는 A를 더 늦게 떨어지게 하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A+B)는 A보다 낙하속도가 느리다. v’ < V < v 

② (A+B)는 A와 B의 무게가 합쳐졌기 때문에 A보다 더 빨리 떨어져야 한다. v’ < v < V


==> 모순된 결과가 나오게 된다.

결국 v = v’ = V 이 되어야만 이 모순을 없앨 수 있다. 즉 모든 물체는 같은 비율로 낙하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갈릴레오의 가정의 전제는 물체는 모양과 속력에 독립적이며 오로지 무게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즉 100g의 물체가 100m에서 떨어지는 시간은 10g의 물체가 10m에서 떨어지는 시간과 같다처럼 말이다.)


이를 통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서로 다른 물체는 서로 다른 (일정한) 값의 속력으로 떨어진다는 것이 틀리다는 것뿐이지 모든 물체가 같은 (일정한) 속력으로 떨어진다는 말과 같지 않다.




이와 같이 과학적 추론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이 ‘낙하실험’ 에피소드에서 추론과정은 엿 바꿔먹고 결론만(그마저도 틀린) 이야기 하는건 뭐 웃기지도 않고 남는 것도 없는 기껏해야 피사의 사탑 관광지 소개만 해주는 꼴인 거다. 

그러니 이제 없는 돈에 기껏 피사의 사탑에 놀러가서 저기가 모든 물체들이 동시에 떨어진다는 마의 지대인가 라며 증명사진이나 찍지말고 주위를 둘러보고 갈릴레이 낙하실험 운운하는 외국인들이 있으면 그 중에 참한 이를 골라 가까운 까페에 가서 차분히 위와 같이 이야기 해줘라. 바로 이때가 비로소 영어가 빛을 발하며(?) 진정한 글로벌 작업..아니 인재로 태어나는 것이다. 진정한 글로벌한 작업질의 일 순위는 지식이지 영어가 아니다. (이거 결론이 왜이래..)


영진공 self_fish

“피사의 사탑은 마(魔)의 지대일까?”의 6개의 생각

  1. 질문의 형태는 옳으나 결론이 이상하군요. 한 마디로 잘못 이해하셨습니다..-_-;;…
    갈릴레이의 가정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가정에 의하면 어떤 무게를 가지고 있어도 모든 물체는 같은 속도로 떨어집니다.
    갈릴레이는 말씀대로 피사의 사탑 실험은 안 했지만, 위와같은 증명과 굴러지는 경사면을 통한 실험으로 무게가 다른 물체가 같은 낙하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이것은 추후에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는 공식으로 완성이 되는데,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르면 두 물체간에는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 존재하고 이 힘은 양물체의 질량의곱에 비례하기 됩니다.
    즉, 무거운 물체일 수록 지구가 물체를 잡아당기는 힘이 강하기 때문에 같은 속도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리시간에 중력가속도.. 라는 용어로 배우지요.

    물론 실제로는 공기저항과 토크(경사면에서의 회전의 경우)로 인해 다른 무게의 물체는 다른 속도로 떨어집니다만. (공기저항은 유체역학이 나오고 매우(!!!) 어려운 학문이므로 패스..-_-..) 만약 10g의 유리구술과 100g의 납구슬이 동일한 모양과 크기를 가지고 있다면 두 물체는 동일한 낙하속도를 가질 것입니다.

    1. 제 글은 ‘피사의 사탑’을 들먹이며 ‘동시에 떨어졌다’라고 끝을 맺는 것으로는 ‘동일한 낙하속도를 가진다’는 과학적 정보를 도출할 수 없음에도 아이들의 교양 과학서에 습관적으로 적혀있는 것이 한심해서 “역사적, 과학적 정보도 담아있지 않는 그런 엉터리는 빼버리자. 근데 그렇담 왜 이런 있지도 않은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가”에 대해 적은 글입니다.

      그런고로 ‘피사의 사탑’의 본 쟁점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낙하 운동과 갈릴레이의 입장’으로 한정한 것이며 낙하 실험 에피소드에서 중요한 점은 갈릴레이가 보여준 과학적 추론의 중요성이라는 점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물리학 보다는 철학 쪽으로 약간더 무게 중심을 두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갈릴레오는 그의 저서 ‘두 개의 새로운 과학에 대한 대화’에서 살비아티와 심플리치오라는 두 인물의 대화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무게에 따라 낙하속도가 다르다는’ 선험적 추론의 결과를 과학적 추론으로서 그 이론이 모순됨을 증명한 것이입니다. (즉 모든 물체는 동시에 떨어진다는 가정을 전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두 인물의 대화를 통해 보여준 결론으로는 ‘모든 물체는 같은 속력을 가진다’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없는 ‘서로 다른 물체는 서로 다른 값의 속력으로 떨어지는 것이 틀리다’라는 결론 밖에 내릴 수 없다라는 것이지요.

      예. 다크루리님 말대로 무게와 상관없이 동일한 속력을 갖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피사의 사탑’이야기의 뒷실체인 과학적 추론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동일한 속력을 가진다’라는 물리학을 말하고자 한 것이었다면 다크루리님이 언급한 것들이 쓰였어야 하지요.

      즉. 이 글은 물리학 처럼 보이는 철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2.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결론이 좀 이상한 거 같아서요. 서로 다른 물체는 서로 다른 값의 속력으로 떨어진다는 것이 틀리다는 것을 다른말로 하면 모든 물체가 같은 속력으로 떨어진다는 말과 같은 것 아닌가요 ?

    1. ‘모든 물체는 같은 속력을 가진다’와 ‘서로 다른 물체는 서로 다른 값의 속력으로 떨어지는 것이 틀리다’는 다릅니다.

      이건 가설적 명제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 ‘뚱뚱한 사람은 비만이다(1)’ 와 ‘뚱뚱하지 않다면 비만이 아니다(2)’를 보자면, (1)번은 뚱뚱한 사람은 반드시 비만입니다. 하지만 (2)번은 뚱뚱하지 않은, 보통이나 마른 사람은 비만이 아니라는 말이지 뚱뚱하면 반드시 비만이라는 이야기는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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