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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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텔레비전은 Goldstar였다. 텔레비전을 처음 집에 들이던 당시로는 비디오 데크가 장착돼 있고, 덩치가 큰 나름 고급형이었다. 그건 우리 돈으로 산 것이랄 수도 있고, 아니랄 수도 있었다. 엄마가 누군가에게 빌려준 돈 대신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LG 가전제품 팬인 엄마의 영향을 받아, 나 역시 LG 제품을 좋아한다. 엄마의 애정이 오랜 경험에서 얻은 신뢰라면, 내 애정은 어딘지 막연한 애정일 뿐이지만은. 여하간 나는 우리집 텔레비전도 좋았다. 화면 아래 박힌 Goldstar 마크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그 텔레비전을 오랜 시간 사용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고,  그 사실이 좋았으며, 무엇보다 모두가 Goldstar 제품을 쓰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일어났던 거라. 심지어 Goldstar가 LG로 바뀌고, 그러면서 지금의 빨간 심볼-사람 얼굴을 닮은-을 알리는 신문 전면광고를 흥미롭게 살펴보던 순간까지 떠오르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제 그 텔레비전을 떠나보냈다. 온가족이 휴일이라 모처럼 다함께 집에 있던 오후, 새 TV를 들고 온 기사님이 가져가셨다.

“리모컨도 드릴까요?”
“아뇨, 어차피 폐기처분 하니까요.”

알고야 있었지만 막상 ‘폐기처분’이란 말을 실제로 들으니 그렇게 서운할 수가. 보내면 안 될 곳으로 떠나보내는 심정이여.

이윽고 기사님이 낑낑거리며 덩치 큰 텔레비전을 들고 집을 나섰다.

“이건 추억의 리모컨이 됐구나.”

아쉬운 건 마찬가지인 엄마가, 리모컨을 버리지 않고 서랍장에 넣어두셨다. 그리고 가족이 함께 새 디지털 TV 앞에 모여 “으악, 모공이 보여”, “으악, 편성표가 나와”, “으악, 이걸로 보니까 저 남자 꽃미남이었어!” 하며 법석을 떠는 시간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갑자기 지출하게 된 TV 값에 대해 아쉬워 하셨는데, 마침내 묘안을 떠올리고 흡족해하며 말씀하셨다.

“너희들,  이제부터 시청료를 내거라.”
컥.

이 글을 쓰고 있자니 훗날 언젠가- 저 새 TV를 교체할 때엔 어제같은 서운함은 없을 것이다, 덩치부터 든든하던 예전 놈과 달리 저 새낀 얍실해서 정이 갈 것 같지도 않아, 게다가 그만큼의 추억을 담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라던 생각이 흔들리네. 그때는 또 어제 우리 가족의 모습부터 떠올리게 되려나.

여하간 아, 어제 보낸 것들에게 잠시 인사해야겠다. 안녕 텔레비전, 안녕 아날로그 시절, 안녕 Goldstar…!
 


영진공 도대체

“텔레비전”의 2개의 생각

  1. 저희집도 처음 들여놓은 TV가 GoldStar였죠.. 확실히 요즘 나오는 제품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감성이 그 시절 제품에 묻어있나봅니다.. 어쩌면 오랜 시간을 같이 공유한 세월의 흔적을 지우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나저나 어머님의 비책은 정말 탁월하시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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