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18대 총선이 끝났다.
적어도 향후 4~5년 간의 한국 정치지형이 결정 되었다.
이런 저런 분석 할 것도 없이 보수 우익의 압승이다.
보수 우익이 절대다수를 차지한 나머지에 약간의 중도 우익이 자리를 잡았고,
진보 또는 좌익의 자리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실망스럽고 안타까운 결과인데, 그럼 왜 글 제목에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써놓았는가.
그 이유는 이러하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1945년에 한민당을 창당한 이래 2004년 초까지 대통령과 의회권력을 독점해 왔다.  그들은 자꾸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는데 대통령으로 따지면 그렇겠지만 의회권력까지 함께 보면 잃어버렸다고 해봐야 4년 남짓이다.

그 시기동안 그들이 권력을 차지 또는 유지해온 주요소를 보자면,
군사쿠데타 두 차례, 관권 및 금권 선거 수 차례, 체육관 선거 수 차례, 공안분위기 조성 수 차례, 지역감정 유발 수 차례 등등이 있었다.
그러니까 권력 위임의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의사가 자연스럽게 반영되었다기보다는 독재, 무력, 강압, 공안, 관권, 금권, 지역감정, 북풍, 미풍, 언론 등의 외적인 요소가 더 크게 작용하였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 시기동안 보수 우익의 장기집권에 대한 설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질 못했다.
단지, 독재와 강압에 시달리고 관과 보수언론의 헛된 계몽에 길들여진 유권자들이 제대로 권한행사를 할 수 없었거나 기회 자체를 빼았겼다는 분석 정도.
결국 그 긴 세월동안 한국 유권자들이 실제로 어떤 사회구조를 원하고 어떤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기 매우 힘들었던 것이다.
(17대 총선에서의 권력교체도 실은 탄핵사태라는 외적 요소가 매우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이번 18대 총선에서는 다행스럽게도 과거 선거에서 볼 수 있었던 외적 요소가 거의 작용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 총선의 결과를 우리 사회 유권자들의 자발적인 의사표현으로 보아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반세기가 훌쩍 넘은 세월을 거쳐 이제야 비로소 한국 유권자들의 자발적 표심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실로 즐겁다 표현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또 무엇이 즐거운가.

한국 유권자들의 사회공동체에 대한 시각을 확인하게되어 즐겁다.
54%의 유권자들은 사회공동체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나 의무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나머지 46% 중 2/3는 우리 사회에선 더불어 함께 사는 것보다는 일단 내가 먼저 잘되는 게 중요하다는 의사표현을 하였다.
즉, 80%가 넘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각자 제 살길에 몰두하는 게 좋은 사회를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고 아예 공영의 삶에는 별 관심이 없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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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우리 사회의 약자에 대해서는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스스로 뒤쳐진 사람들로 보아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할 정도만 제도가 갖춰지면 별 문제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각 개인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개선의 의무감이나 공헌 필요성을 느끼지말고 그냥 내가 돈 많이 벌다보면 언젠가는 저절로 나아지리라 생각하면 되겠다.  

어떤가, 우리 이웃들의 그런 사고방식을 확인하여서 좋고 그에 맞춰 나의 생활을 대응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게 되어서 즐겁지 아니한가.  

그리고 도덕성보다는 능력이 우선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여서 즐겁다.
성추행범, 철새정치인, 계파가신, 경제사범, 파렴치범, 선거사범, 극단주의자, 금품제공자 등 수많은 문제인사들이 대부분 여유있게 당선되었다.
능력이 출중해서란다.

그러니까 앞으로 휴일날 승용차로 고속도로를 달릴 때 거리낌 없이 버스전용차선으로 주행하라.  걸리지만 않으면 되고 걸려도 빠져나올 능력만 있으면 된다.
능력이 있다면 앞으로 금연구역에서 담배 피우라, 거리에 가래를 뱉으라, 줄서지 말고 빈자리 양보하지 마라,
세금이나 성금 같은 거 내지 말고 능력으로 사회에 공헌하라, 되는대로 만지고 멋대로 욕하고 아무한테나 반말하다가 불리하면 대충 사과하고 나중에 능력으로 보여주라.
80%가 넘는 유권자들이 그래도 된다고 하였다.

어떤가, 앞으로 공중도덕이나 사회예절에 대한 괜한 부담감 없이 살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또한 즐거운 건, 과거에 대한 각성과 미래에 대한 책임 같은 건 접어두고 오로지 현실의 풍요만 추구하면 된다는 걸 깨달아서이다.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도 없다.
오직 현재의 내 재정이 늘어나기만 하면 된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보장이 없어도 좋다.  말만이라도 기분 좋게 그렇다고 하면 된다.  내가 노력 안해도 해준다고 하면 된다.
80%가 넘는 유권자들이 그걸 좋다고 하였다.

즐겁지 않은가.  내 능력을 개발할 필요도 없고 남들 하는 거 눈치보다가 적당히 따라가면 되고 남들이야 어찌되든 내 주머니만 챙기면 되고.  심신이 힘들 땐 말솜씨 좋고 허우대 멀쩡한 사람들의 립 서비스에 행복해 하면 되니 말이다.

이러니 내 어찌 즐겁다 하지 않을 수 있을소냐.


영진공 이규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의 8개의 생각

    1. 서글프기도 하지만 이제는 정신 더 똑바로 차리고 사주경계 철저히 하면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띵까 님, 자주 들러주세요 ^.^

  1. 대공감입니다..
    하지만 이게 ‘눈에 보이는게 좋으면 좋은거지,,’란 MB가 말하는 실용주의 같다는 느낌이 파바박 드는군요.. 이런 사회에 산다는게 마냥 좋지만은 않다고 느끼는건 저만의 생각인가요?
    80%에 속하는 저에겐 뭔가 찝찝하네요..

    1. 그림자 님 … 저는 눈에 보이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적어보고자 한 것입니다. 현실을 좋다, 싫다고 할 순 있어도 있는 걸 없다고 할 순 없잖겠습니까. 그런 차원에서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고요 … 자주 들러주세요 ^.^

  2. …후…풍자도…독설도…어느 정도까지만 해주셔요.
    이건…..너무 심하시지 않습니까….즐거워서 미치겠습니다. ㅠㅠ

    1. 바로 님 … 세계 보수진영의 우두머리랄 수 있는 부시도 이런 속담을 인용한 적이 있었지요 … “처음에 속았을 때는 속인 놈이 나쁜 놈이지만 또 속으면 속은 놈이 바보다” … 그런데 그렇게 속는 게 자꾸 반복되면 그 사람은 그걸 즐긴다고 생각할 밖에요 … …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우리라도 힘내서 열심히 살아봐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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