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브레이커블>, 슬픈 수퍼히어로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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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식스 센스>(1999)가 흥행과 비평 모든 면에서 알찬 성공을 거두었던 탓에 M. 나이트 샤말란(본명 Manoj Nelliyattu Shyamalan, 1970년생) 감독의 영화 <언브레이커블>은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았습니다. 더우기 <식스 센스>에서 함께 작업했던 제작진들과 특히 주연이었던 브루스 윌리스까지 다시 캐스팅해 빚어낸 연작이다 보니 전작의 성공에 너무 기대려 한 인상을 주었던 모양입니다. 이런 경우 비평가들부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뿐만 아니라 극장가에서도 대부분 ‘기대에 못미친다’는 얘기가 나오기 쉽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영화를 만든 사람 자신이 앞에 써먹은 이야기틀에서 금세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식스 센스>와 <언브레이커블>의 관계를 팀 버튼 감독의 두 작품 <배트맨>(1989)과 <배트맨 리턴스>(1992)에 비교하고 싶습니다. 배트맨에 대한 팀 버튼 감독의 탁월한 재해석과 독특한 미술 감각은 <배트맨>을 당대 최고의 영화로 만들었었죠. 뒤이어 만들어진 <배트맨 리턴스>는 팽귄맨이라는 인물을 통해 팀 버튼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게 되면서 전작에 비해 좀 더 어두침침한 느낌을 주었는데, 제가 알기로는 이 두 번째 작품을 더 좋아하고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가 하면 저를 비롯한 더 많은 사람들은 아무래도 처음 팀 버튼 식 배트맨과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을 더 좋게 간직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경우가 있죠.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과 <강원도의 힘>(1998) 말입니다. 이 경우에도 저는 <강원도의 힘>보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더 좋게 기억합니다. 두 작품이 다 훌륭하지만 첫 작품에서 받은 충격의 강렬함으로 인해 두 번째 작품을 보게 될 때에는 좀 면역이 되어서 아무래도 약간 만만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 아닐까요. 첫 작품을 보았을 때에만 해도 ‘아, 우리나라에도 이런 영화가 나오다니!’하며 영화의 높은 완성도 자체 하나만으로도 감격스러워 했지만 다음 영화를 보게 될 땐 잘 만드는 건 어느새 기본이 되어 버리고 좀 더 새롭고 좀 더 충격적인 뭔가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 관객의 자연스런 욕심이자 속성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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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영화에 대한 글을 쓰면서 줄거리에 관한 한 가급적 언급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또 어떤 방식이든 영화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미리 갖게 하는 리뷰도 정말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영화를 보게 될 관객 입장에서는 이 모두가 무척 해로울 뿐이라는 걸 저 역시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언브레커블>의 경우 <식스 센스>에서와 마찬가지로 막판 뒤집기라는게 있어서 배급사 입장에선 요즘 그 흔한 관객시사회조차 안가졌던 것이 잘 이해가 됩니다. <식스 센스>만 해도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야!’ 한마디만 듣고 영화를 보게 되면 이 영화를 통해 즐길 수 있는 것의 반 이상은 날아가 버린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요.(이 영화 만큼은 대부분 보셨으리라 믿고 썼습니다.^^;)

매체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언브레이커블>의 내용에 대한 홍보자료는 ‘대학시절 미식축구 선수였던 한 남자(브루스 윌리스)가 열차사고를 당하는데 함께 탑승했던 다른 사람들은 다 죽는 와중에 자신만 털끝 하나 안다치고 멀쩡히 살아 났더라’는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영화는 물론 훨씬 많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배우들이, 심지어 사무엘 L. 잭슨까지도 소근소근 거리는 이 조용한 영화에서 특출한 카메라 워크와 배경음악을 사용해 관객들을 숨 죽이고 따라오게 만드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재능은 정말 대단합니다.

물론 영화에 대한 평가는 영화를 본 관객들 개인이 직접 하게 되는 것이죠. <식스 센스>의 경우 같은 초현실적인 소재라 하더라도 보기에도 끔찍한 유령들이 출몰하여 관객들을 끊임없는 긴장과 흥분의 도가니에 몰아넣기 쉬웠던 반면 <언브레이커블>은 보다 지적인 재해석을 요구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전작과 비슷한 수준의 서스펜스와 반전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극장을 나설 때의 표정이 과히 유쾌하지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언브레이커블>도 참 재미있게 봤구요, 생각할 수록 더 깊은 인상이 남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그렇게 슬픈 수퍼히어로는 한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영진공 신어지

“<언브레이커블>, 슬픈 수퍼히어로의 탄생”의 11개의 생각

  1. 결말은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샤말란 감독은 이런식으로 인장을 남기나 보다고 생각했어요. 히어로 영화 중 이렇게 깊게 다룬 영화는 처음이어서 더 인상적이기도 했구요.

    1. 코믹스의 수많은 수퍼히어로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샤말란 특유의 인간에 대한 연민을 버무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죠. ^^

  2. 저도 이 영화를 샤말란대형의 최고 작품으로 봅니다. 관객의 입장에서야 식스센스의 충격은 죽을때까지 잊지 못하겠지만, 무게감이나 진지함, 그리고 절묘한 심리묘사등등 정말 숨이 딱딱 막히는 연출과 연기를 보여준 언블레커블이야 말로 진정한 최곱니다. 진짜 슈퍼영웅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바로 이 언브레커블일겁니다. 이 놀라운 실감(리얼리티)는 샤말란이 진짜 천재임을 증명합니다.

    1. 영진공에 샤말란빠가 많이 있으시다고 들었는데 버디님이 그 선두주자셨군요. 저도 샤말란 영화를 보면서 아직까지 실망해본 적이 없습니다. 스릴러의 강약은 작품마다 다르지만 인간에 대한 시선 자체가 기본적으로 너무 마음에 들어요. 그중에서도 < 언브레이커블>은 단연 넘버원이고요. ^^

  3. 신어지님이 쓰신 글이었군요~!!
    저도 ‘언브레이커블’이 샤말란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중의 한명이요~ㅋ

    1. 역시 맬릭님도 이 시대의 진정한 의인이십니다.
      이거 뭐 우리끼지 자화자찬 분위기? ㅋㅋ
      근데 이거 국내 미개봉 시점에 썼던 걸 슬쩍 고친
      거라서 어딘가 어색하지 않나요. ^^;

  4. 새무엘 잭슨의 눈과 코 사이의 중안이 강렬했고, 다이하드의 윌리스 형님의 이미지가
    어쩐지 반영된 것 같아 몰입하기 좋았죠.
    식스센스의 반전(?)을 초반부터 -_- 깨달아버려서 싱겁게 끝났던 기억을 가지고 봤던
    영화라 오히려 언브레이커블 쪽이 확 와닿았던 듯. ‘언브레이커블’과 ‘언터처블’의
    제목이 헷갈렸던 -_- 과거가 있네요. 홋홋

    1. 사무엘 L. 잭슨의 ‘중안’이라고 하시니까 갑자기 무섭습니다.
      정말 가운데 눈깔을 항상 감고 다니는 건 아닐까요? ^^;

      정말로 언브레이커블했던 건 참을 수 없는 삶의 무게가 아니었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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