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먼곳에”, 가까이 가도 왜 그리 멀기만 한지 …

 


이준익 감독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난 영화를 만들어내지는 않습니다.
왕의 남자도, 라디오스타도, 즐거운인생도 모두 제목과 포스터에서(사실, “왕의남자”라는 이름은 뭐랄까, 영화가 가지고 있는 “왕”과 “남자”의 속내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조금은 천박한 떡밥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제목을 결정한 사람이 강우석 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부터 말입니다.) 알수있는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수도없이 보아온 엄청나게 많은 서사구조 가운데, 마치 제목을 고르면 거기에 딱 맞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주크박스처럼 그 제목에 합당해 마지않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왔었구요.
제목은 좀더 은근하게, 좀더 당황스럽고 알쏭달쏭하게 지었다면 관객이 조금 더 들지 않았을까요?
제목만 보아도 알만한 영화는 아무래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덜 들지 않습니까.

-먼저 알면 영화감상에 방해가 될만한 내용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 “님은 먼곳에”는 놀랍게도 제목과는 영판 다른 시작과 끝을 보여줍니다.
님을 찾아 삼만리하는 주인공 순이(수애)에게 님(엉태웅)은, 형식적으로나 님일 뿐 사실상 님이라고 불러주기엔 모자란 점이 많습니다. 그 점은 남편이 월남에 뛰쳐갔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이의 행동이나(시어머니가 그 사실을 알고 난 다음에야 이실직고를 합니다. 그 전에는 ‘그딴 놈, 뒤지든지 말든지’하는 심정까지는 아니었더라도 그닥 그립고 걱정되는 심정 또한 아니었다는 뜻이겠지요) 마침내 먼 곳까지 가서 만난 님에게 날리는 분노의 싸닥션 7단 콤보만 보더라도 분명합니다. 한두대 철썩 때리고 덥석 안기는 것도 아니고, 품에 안겨 팔을 동동 구르며 앙탈을 부리는 것도 아니요, “너이새퀴 좀 쳐맞고 시작하자.”라는 식의 싸닥션 7연타는 아무리 보아도 짙은 애정을 담은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당 영화를 보고나서 드는 본 영화 제목에 대한 생각은,
“아아 내 님아 님은 먼곳에 있고 나는 갈 수가 없으니 답답하네 이사람아.”라기보단
“니뮈… 졸라 멀리 있네 그 새끼.”에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당 영화, “사랑하는 님을 찾아 전쟁터 한 복판을 크로스하는 여인네의 애 끓는 사연” 따위를 담고 있다기보단 주인공 순이의 자아발견 여행에 동참하는 로드무비에 가깝습니다. 어찌보면 [반지의 제왕]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간계를 구할 막중한 임무를 띄고 세상에서 젤 뜨거운 용암(반지가 거기서만 녹으니까…)을 찾아 가는 프로도나, 라이언 일병을 구해야 하는 지들끼리만 막중한 임무를 띄고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밀러 대위와는 달리 순이에게는 명확한 미션이 없습니다. 멀고 먼 월남까지 남편을 찾아가서 순이는 대체 뭘 할 작정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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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긴 가는데… 나 왜 가는거야?”

순이는 자기 뜻대로 자기 삶을 결정해 볼 기회를 몽창 박탈당한 우리 어머니, 혹은 그 윗 세대의 여성입니다.
원치않는 곳에 시집가서, 원치않는 남편의 씨를 얻기 위해 싫은 걸음을 어기적대며 부대를 찾아가는 동안 순이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하며 얼굴에 떠올리던 그 평온한 미소를 단 한번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원치 않는 일이니까요.
순이는 자신에게 억지로 주어진 삶을 거부할 만한 용기도 없지만, 그렇다고 피할수 없으면 즐기겠다는 식의 해병대 마인드도 결코 없습니다. 대신 모든 소통을 거부하지요. 재수없는 시어머니가 주는 핀잔에 변명을 하지도 않고, 대학물 먹은 애인에게 눈깔이 뒤집혀 남의 얼굴에 삽질하고 자기는 돌 보듯 하는(감히 수애를!!) 남편에게 애정을 구하지도, 돌아누운 등에 노크 한번 해보지 않습니다. 그것이 순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의사표현이며, 반항이었을 터입니다. 나도 너 싫어 임마.

월남으로 찾아가는 길 역시 그녀의 의지가 아닙니다. 어중띄게 자신의 책임이 되어버린 일에 다시한번 그녀는 그냥 그렇게 순응도 아니고 반항도 아닌 그런 선택이겠지요. 하긴 하는데.. 나 진짜 내가 원해서 가는 거 아냐. 알겠냐? 뭐 이렇게 말입니다.

수애가 연기하는 순이는 처음부터 전형적인 순응형 여성도 아니고, 적극적인 개혁형 여성도 아닙니다.
아직 어떤 색깔이 칠해져 딱딱하게 굳어지기 전, 색보다는 여백을 더 많이 가진 덜 자란 인간일 뿐입니다.

약간은 안 맞는 듯한 옷을 입은 것 같은 수애의 연기는, 돌이켜보니 이런 순이를 가장 잘 나타내는 모습이었습니다. 수애는 참 여러 모로 칭찬할 거리가 많은 배우입니다 그런 섬세함을 빼고도, 무대의상을 입고 수줍은 듯 그러나 과감하게 노래하는 수애는 순이라는 자칫 목적없는 캐릭터가 될 뻔한 주인공에게 훌륭하게 생명력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관객 역할을 하는 수많은 엑스트라들에게 본능적 욕구가 담긴 군인연기의 추진력을 실어 주고(공연하는 장면 보세요. 군부대 위문공연에서 핑클의 등장에 절규하다 못해 표효하던 내 전우들의 모습과 1000%의 싱크로를 보여줍니다.) 더불어 영화를 보는 남성 관객들에게까지 울끈불끈을 선사합니다.
당분간 한국영화에서 순이만큼 사랑스런 여성 캐릭터가 나올 지 의문스럽습니다.
수애만세. 수애만세. 수애만세.
(만세 삼창이 아깝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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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녀는 이렇게 사랑스러운 그림까지 만들어줍니다…!!

이준익 감독은 순박한 시골 아낙 순이에게 “노래”라는 막강한 소통능력을 부여하여, 그녀를 세상과 크로스오버 시킵니다. 노래를 통해 순이는 자신의 감춰진 재능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며, 본래 자신이 갖고있던 가치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확실한 사회적 권력)를 깨닫고 그것을 즐깁니다.
밴드와 함께 한판의 놀음을 만들어내는 위문공연 장면은 그녀가 세상을 항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표출시키는 유일한 수단이고, 애시당초 그녀가 마땅히 받았어야 할 박수갈채를 이끌어내는 그녀의 한풀이입니다(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요..) 이는 이준익 감독이 왕의 남자의 두 광대들을 통해 풀어내던 때부터 꾸준히 이야기하던 점입니다. 신분이라는 벽을 넘고, 한물 간 가수에 촌구석 DJ라는 현실을 넘고, 가장으로서 강요받아야 했던 육중한 책임의 짐더미를 벗어던지게 만드는 한풀이 장으로서의 음악 말입니다.
 
영화는 마침내 별로 살 의지도 없어보이는 주제에 끝까지 살아남은 그녀의 남편과 그녀를 조우시키며 끝을 맺습니다. 전쟁이라는 냉혹한 현실에 부딪혀 보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좁았는지 깨달은 남편과, 모든 현실을 받아들이며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그 자리에 선 순이는(다리를 후들거리지도, 무릎을 굽히지도 않습니다. 전쟁터 한가운데에 꼿꼿이 서 있습니다) 그렇게 재회하며,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납니다.

동화같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영화는 아닙니다만 순이가 그닥 걱정되진 않습니다.
적어도 그녀는 자기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너무 낙관적인 말이군요. 현실적으로 그녀가 경험하고 알게 된 것들은 앞으로 그녀의 삶에 커다란 암초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 시대엔 말이지요.)


영진공 거의없다

사족 1) 소외된 자들이 만들어내는 한풀이 한마당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엔 무한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역시 사람은 고생을 해봐야 한다니까요(…뭔말인지…)

사족 2) 영화 리뷰가 온통 수애(가 연기한 순이)의 이야기로만 꽉 찰 정도로, 영화 전편을 통해 그녀가 발휘하는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다른 인물들은, 좀 냉혹하게 이야기하자면 이준익 감독의 영화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그냥 그런 사람들입니다.

사족3) 이준익 감독은 자기을 친미성향으로 오해할까봐 좀 걱정이 되었었나 봅니다. 정치적인 공정성의 획득을 위해 끼워넣은 장면들 중, 조금은 오바다 싶은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사족4) 분량이 많지는 않습니다만 베트남 전쟁의 한복판에 뛰어든 듯 한 전쟁 장면들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크게 살려주고 있습니다. 특히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개무시되던 전쟁신의 공간 구성이 무진장 만족스러웠습니다.

사족5) 정진영과 주진모와 정경호는 훌륭합니다. 단 드럼 연주자였던 철식(신현탁)은 영화에의 몰입을 심하게 방해합니다. “즐거운 인생”에서 허세근석의 과다 후까시 연기가 그랬던 것처럼.

사족6) 수애의 노래를 거부감없이 듣는 데에는 약간의 적응기간이 필요한 느낌입니다. 기교없이 담백하고 깔끔하게 노래하려고 노력한건 알겠는데, 그럴거면 조미령의 노래솜씨는 넣지 말았어야 했어요.

““님은 먼곳에”, 가까이 가도 왜 그리 멀기만 한지 …”의 3개의 생각

  1. “주인공 순이의 자아발견 여행에 동참하는 로드무비”라는 데 딱 공감해요. “님은 먼 곳에”의 “님”의 의미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 시집 앞에 나오는 “군말”에 나오는 “님”이라고 생각해요.

    <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은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느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은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저문 들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긔루어서 이 시를 쓴다.

    제 느낌에서 이 영화와 비슷한 문학작품은. 카프카의 성. 멜빌의 모비딕. 노인과 바다.
    수애가 찾아가는 ‘남편’은 사랑하는 남성의 의미라기 보다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마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의 예쁜 고래 한마리. 월남은 동해바다. 크흐.

  2. 끝에 정말 동감합니다 ~ 조미령씨 노래를 정말 잘하더라구요ㅎ 영어발음도 좋고..
    수애씨는 김추자 노래 잘했지만 ㅎ

    +) 저는 정경호씨 연기가 좀 너무 튄다는 생각을 좀 했습니다. 처음에 정진영이랑만나는 장면에서요, 자기 돈 떼먹었다면서 소리를 지르잖아요? 그 때 뭐랄까.. 너무
    심각하달까. 물론 타지에서 누가 자기 돈 떼먹으면 심각해지긴 하겠지만 다른 연기자
    들에 비해서 너무 심각하게 보이는거 같았어요, 개늑시 이미지가 넘 강해서 그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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