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를 팔다>, “순수성이라는 허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람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순수함을 꽤나 중요한 가치로 여깁니다.

그래서 선의나 재능으로 알려진 사람에 대해서도 조금이라도 거기에 다른 요소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거의 사기꾼이나 악마인 것처럼 대하죠. 뭐 연예인들이 100% 순수한 자연산 외모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예민한 것도 비슷한 경우고요.

그럼 이 세상에서 정말 비난할 거리가 없는 위인은 없을까요?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위대한 인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더러운 속사정이 있는 인간들투성이죠. 저는 이 나라에서 그런 비난으로부터 거의 완전히 자유로운 인물은 딱 한명 이순신 장군 밖엔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특히 젊은 스타들에 열광하는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그네들은 아직 충분히 더러워질 시간이 없었을 테니까요.

그럼 지평을 전 세계로 넓혀보면 어떨까요? 비난할 건덕지가 하나도 없는 인물이 이 세상에 적어도 한두 명은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이런 상황에서 떠올릴 수 있는 인물들 중에는 마더 테레사가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평생을 빈민과 병자들을 위해서 봉사만 하다가 떠난 사람. 인간이 어디까지 숭고해질 수 있는지 인간이 얼마나 자비를 위해서 용감해질 수 있는지의 모범을 보여준 사람. 혹시 그것이 가능하다면 아마도 가장 신에게 가까웠을 사람. 현대인들이 거의 유일하게 인정하는 성인(聖人). 테레사 수녀 말이죠.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해왔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 까지는요.

그리고 이 책은 불경스럽게도 바로 그 성인 테레사 수녀의 배후를 파헤칩니다.
대충 뭐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거죠.

그녀가 추구한 ‘봉사’라는 것이 결국은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살아날 수 있는 가난한 병자들을 모아놓고 서서히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었다는 사실. 그것은 그녀가 가진 신앙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야 말로 축복을 받는 사람들”이라는 믿음의 실천이었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그녀 자신은 그런 축복을 마다하고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가장 비싼 의료진에게 몸을 맏겼으며 그 의료진을 만나러 다녀오기 위해서라면 특별전세기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사실.

이런 그녀가 서구세계에 진정한 성인으로 인정받게 된 계기는 선정적인 것을 찾아다니는 미디어와의 만남 덕이었다는 사실. 그녀를 세상에 알린 사진들, 그 어두운 토굴같은 병원 건물에서 찍은 사진들에서 유난히 그녀의 흰 제복이 성스러운 빛을 발하는 것 같은 그 사진들은 사실 당시 코닥Kodak에서 새로 개발한 초고감도 필름 덕분이었다는 사실. 하지만 어느새 그것이 코닥필름의 기술력의 개가가 아니라 현대인들에게 주어진 성인의 징표로 광고되었다는 사실.

그녀가 추구한 것은 자비가 아니라 자신의 교파를 확장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위해서 전 세계에서 출처에는 상관없이 온갖 기부금을 마다하지 않고 받아냈으며 그 돈들은 최소한으로만 병자들에게 사용되었다는 사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혹시 이런 결론에 도달할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엔 정말 존경할 인물은 하나도 없어. 젠장 인간은 원래 추잡한 존재야”

뭐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비합리적인 숭고함을 찾는 것 자체가 실수였는지도 모른다고요.
다시 말해 100% 순수한 어떤 것을 찾는, 혹은 그렇게 순수하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 자체가 잘못이라는 거죠. 이 세상에 정말 100% 순수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순수하지 않으면 옳거나 정당하지 않다는 잣대는 도대체 누가 만든 것이고 누구를 위해서 기능할까요?

이런 100% 순수성의 잣대를 내세워 득을 보는 사람들은 따로 있습니다.
게으르고 용기도 없어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 실천을 하는 모두를 바로 그 잣대로 비난하죠. 정작 비난받아야 할 이들은 바로 자신들인데도, 어느새 그 100% 순수의 잣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인간이 조금이라도 뭔가를 한 인간보다 오히려 더 우월한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겁니다. 더 중요한 건 그 게으른 겁쟁이들 뒤에 숨어서 모든 사람들이 더 게으르고 겁먹기를 바라는, 그 동안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는 거의 100% 욕심으로 가득찬 100% 쓰레기들이 바로 그런 100% 순수를 내세운다는 겁니다.

여튼, 이 책의 정보가치는 꽤나 높습니다. 적어도 저에겐 달의 이면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였다는 걸 깨닫긴 했지만요.

사실 테레사 수녀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을 뿐이라는 게 그렇게 나쁜 이야기는 아닙니다. 단지 아주 당연한 사실을 다시 알려줄 뿐이죠. 비현실적인 기준을 만들어놓고, 그 기준에 맞는 허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것 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한 것이 우리의 의무라는 당연한 사실 말입니다.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힘든 와중에도 남들에게 약간의 배려를 베푸는 사람들, 자신의 안전을 포기하면서 진실을 알리고 불의와 싸우는 사람들이 진짜 숭고한 것이죠.

 


영진공 짱가

* 이 책의 원제 The Missionary Position 에는 두가지 뜻이 있습니다. 보통 더 많이 사용되는 의미는 “정상체위” 인데요.
바로 그 체위를 제3세계에 가르쳐준 이들이 선교사들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죠.
책의 내용과 적절히 어울리는 이중적 제목인 셈입니다.

“<자비를 팔다>, “순수성이라는 허구””의 9개의 생각

  1. 저책을 읽을수 있는것도 문명의 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저책이 팔린 수익금은 책의 저자에게 가는것이구요
    정말 순수라는건 없나봅니다.

  2. 아주 똑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 다크 나이트>에서 투페이스로 변질된 하비 벤트의 진실을 밝히지 않고 희망이자 과거의 영웅으로 남겨두기로 하는 모습에서도 성인이나 영웅을 필요로 하되 그들에게서 1%의 결함을 용납하지 못하는,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결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간의 존재를 의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씁쓸한 뒷맛을 남겨준 장면.

    1. 아, 신어지님 리플 보고 무빅 일러스트 바꿨습니다. 하비덴트를 넣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거든요. 감사…^^

    1. 물론 두번째 뜻은 표면적인 의미인 “선교사의 책무” 쯤이 되겠지요.

  3. 리뷰 잘 읽었습니다.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과연 100%순수라는게 있을 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선행’이라는 것도 일종의 자기만족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보니까요.
    물론 자기만족일지라도 하는 사람이 안 하는 사람보다는 낫겠지만요.

    사실 유일한 인물로 뽑아 주신 이순신 장군도 예전에 역사 관련해 조사를 해 본 결과로는 100% 순수라고 할 수 있는 분은 아니라고 봅니다.
    보고체계를 어기고 전공을 얻은 행위 등도 있었다고 하니까요.
    (전쟁 초반 원균 관할에서 이루어진 전투에서 거둔 승리를, 지원군으로서 나중에 참전한 이순신이 자기 이름으로 승전보고를 올려 버림. 자신보다 웃사람이자 담당 관활관이었던 원균은 전쟁이 진행 중이니 보고는 급한 상황이 끝난 뒤에 올리자고 했었다고 함. – 이라는 기록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당시에도 ‘원균’하고 ‘이순신’이 서로 다른 파벌에 속해 있으면서 얽히게 된
    순수하지 않은 문제들도 있었을 것이고,
    현대로 와서도 군사정권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이순신 장군’이 선택이 되면서,
    성웅화된 점도 고려하면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더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래도 테레사 수녀보다는 이순신 장군 쪽이 말 잘못하면 돌 맞기 쉬울 듯 하군요.)

    1. 음…원본 사료가 아니라면 2차 자료들에서 이순신과 원균을 연결시킨 자료는 전부 의심해보시길 권합니다. 군경력 초창기의 원균과 이순신은 서로 엮일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덧붙여, 원균이 육상이 아닌 수상전에서 뭔가를 했다고 주장하는 사료도 일단 의심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