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꿈을 가지려면 먼저 세상을 보아야한다.”



어릴 적엔 떠나고 싶었고, 세상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달랑 배낭 하나 짊어지고 혼자서, 아님 친구 몇과 함께 여행을 했던 기억들.
그리고 직접 눈으로 보며 배웠던 이 땅, 그리고 사람들.

외국에도 많이 다녀보았다.
미국, 캐나다, 이태리, 스위스, 영국, 프랑스, 러시아, 멕시코, 태국, 싱가폴, 일본 …
그렇게 돌아 다니면서 다른 풍광과 다른 언어, 그리고 다른 생활과 다른 관습들을 접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건 세상 어디를 가나 똑 같다는 걸 알았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이 영화 속엔 혁명가, 게릴라 전사가 없다.
그저 순진하고 착한 그리고 세상을 눈으로 보고 배우고 싶어하는 평범한 청년이 나올 뿐.

채 세상 물정을 알 나이가 안 된 두 청년은 너무도 무모하게,
낡은 오토바이에 배낭 몇 개만 싣고 남미 대륙 여행에 나선다.
그나마 그 오토바이도 중간에 망가져버리고.

그런 그의 모습이 책으로 읽던, 이야기로 전해듣던 모습보다 훨씬 더 따뜻했고 더 많이 친근하였다.

착하고 순수해서 그래서 나중엔 혁명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던 청년.
여행 속에서 보고 접하고 느낀 세상과 사람들,
그 과정에서 차곡차곡 쌓은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그리고 모두 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싶다는 소박하고 단순한 소망.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종내에는 변혁운동과 혁명에 나설 수 밖에 없었던 그 젊은이.



“본명은 Ernesto Guevara de La Serna.
1928. 6. 14 아르헨티나 로사리오~1967. 10 볼리비아.

1928년 6월 14일, 아르헨티나의 로자리오에서 귀족의 후손인 아버지 에르네스토 게바라 린치와 어머니 세실리아 데 라 세르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에르네스토가 두 살 때 천식에 걸려 고생을 한 이후 그의 가족은 모두 코르도바(근처의 알타그라시아)로 이사를 갔다.
천식으로 고생한 적이 있는 에르네스토는 이 경험 때문에 1947년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의학부에 입학하게 되었다. 1952년에는 같은 의대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스와 둘이서 10개월에 걸쳐 모터사이클로 여행을 했다. 칠레에서 바이크가 고장이 나자 페루의 마츄피츄까지 도보로 여행하였다. 한동안은 상 파울로의 나환자촌에서 환자들과 생활하기도 했다. 그후 아마존강을 횡단하여 콜롬비아로 갔다. 그곳에서 그의 친구는 카리카스에 남고, 에르네스토는 비행기로 마이애미까지 갔다. 특히 상 파울로 나환자촌에서의 노동을 통해 “인간들의 사랑과 유대감은 고독하고 절망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싹튼다”는 진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비행기의 출발이 지연되어 마이애미에서 1개월간 더 머물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미국의 실상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8월에 귀국한 후, 의학공부에 몰입하여 1953년 3월, 무사히 대학을 졸업했다.”

“1953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과테말라와 볼리비아를 거쳐 1955년 멕시코에 머무는 동안 F.카스트로[피델 카스트로]와 사귀어 쿠바혁명에 참가하였다.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자 쿠바 시민이 되어 라카바니아요새 사령관, 국립은행 총재, 공업장관 등을 역임하여 ‘쿠바의 두뇌’라 불렀다.
그러나 1965년 3월부터 소식이 끊겨 사망설이 파다하였으나, 카스트로에게 작별의 편지를 남기고 새로운 전쟁터로 달려갔다는 사실이 그해 10월 밝혀졌다. 그는 볼리비아의 산악지대에서 게릴라 부대를 조직, 1967년 10월 볼리비아 산중에서 정부군에게 포위되어 부상을 당하고 사로잡힌 후에 총살당하였다.”


천식을 앓던, 그래서 군대도 안 갔던 순둥이 의대생이,
어찌하여 그리도 열정적으로 혁명의 꿈을 품에 안을 수 있었는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그냥 의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그 젊은이가,
어떻게 온 세상을 변혁하자며 무장투쟁에 나서게 되었는지를,
영화 속의 그는 잔잔한 눈빛으로 어떤 책 어떤 평전보다 더 편안하고 더 절실하게 이야기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사람 사는 건 다 같다는 걸,
사람은 모두 차별 없이 살아야 한다는 걸,
하지만 그런 삶이 거저 얻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 쯤에서는 영화를 보시라는 말 말고는 더 이상 덧붙일 게 없다.

대신 그를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그가 1964년 12월 11일 UN에서 한 연설 중 일부를 첨부해 본다.
영어 번역문을 실으려 했으나 그건 링크로 처리하고 그에 관한 평전 중 하나에서 관련 내용을 아래에 인용하니 참고하시라.

* 영어 번역문을 보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

 


“그 말의 뜻은 결국 소련의 공산주의는 더 이상 순수한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후 모든 아메리카 혁명 노선은 체게바라의 주장대로 소련식 공산주의가 아닌 마르크스주의가 되었다.

당시 소련은 미국과의 냉전대립에서 자신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사회주의 국가를 자신의 속국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또한 미국이나 유럽의 자본주의 열강들이 그러하듯이 소련 역시 자국의 이해 관례를 위해서 불평등한 교환을 통해서 착취를 행하고 있었다. 체게바라가 보기에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은 소련의 보호 우산 속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당시 공산주의 혹은 공산당은 소련의 전류물과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 운동은 공산주의 혁명이 아닌, 라틴 아메리카 전체의 민중 해방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체 게바라의 머릿속에서 확고하게 형성되고 있었다. 말하자면 소련의 속국이 되지 않으면서도 미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위해서는 제3세계 국가의 블록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체게바라의 이런 신념은 1964년 12월 11일, 뉴욕의 유엔 회의에서 쿠바 대표의 자격으로 행한 한 연설에서 표출되었다. 연설의 대부분은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침략행위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는 소련의 불순함을 꼬집거나 소련식 공산주의와는 다른 사회주의의 건설이 라틴 아메리카 해방 운동의 목표라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은근히 소련의 비위를 거스르게 하였다.”

[“아름다운 혁명가 체 게바라 청소년 평전 05” (박영욱 지음, 이룸 펴냄) 에서 인용]


영진공 이규훈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꿈을 가지려면 먼저 세상을 보아야한다.””의 2개의 생각

  1. 저도 영화 재밋게 봤어요.. 대사가 스페인어로 나와서 더욱더 와닿더군요..
    체 게바라가 직접 적은 일기와 편지를 모은 책도 사서 읽고 있는데..
    그의 글을 보며 느끼는건, 아마도 최근 촛불을 겪은 블로거들이 공감할수 있는것이
    많아 보였다는겁니다. 영화도 좋지만 책도 정말 추천해보고 싶네요

    1. 항상 꿈을 꾸지만 두 발은 현실에 버티고 섰던 체. 그라고해서 실수와 약점이 왜 없었겠습니까만은, 언제나 앞장서서 실행하고자 했던 그였기에 많은 젊은이들이 흠모한다고 생각합니다. 리카르도 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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