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는 지금의 한국과 싱크로율이 99.9%



경제학자가 쓴데다가 제목이 “미래를 말하다”여서 경제 관련 내용일 줄 알았건만 오히려 미국 정치 분석에 가깝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그의 연구는 이 책의 내용과는 거의 무관하다.)

크루그먼이 책을 통해 설명하고자 하는 의문은 바로 이것이다.

“중산층과 서민에게 아무 도움이 안되는 세금 감면과 복지 혜택 축소를 주장하는 공화당. 그들은 왜 매번 선거에서 이기는가?”  여기서 공화당을 한나라당으로 대체하면 이 질문은 우리에게 싱크로율 99.9%다.

이 의문에 답을 제시하기 위해 크루그먼은 대공황 이전 시절부터 얘기를 시작한다.

대공황 시절 이전 미국은 소득 불균형이 심각했다. 대공황이 발생하고 뉴딜을 실시한 이후 미국 경제의 황금기가 찾아온다. 하지만 레이건 출현 이후부터 소득 불균형이 점점 심각해지더니 현재는 아주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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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 시절의 미국

뉴딜정책 이후 소득의 재분배가 골고루 이어지는 중산층의 황금기이자 미국 경제의 황금기가 찾아왔었다는 얘긴데, 그 이유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책적 차이가 그리 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뉴딜 연합이 그랬고 과도기적 대통령인 공화당 닉슨조차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을 정도로 민주당과 공화당은 정책에서 좌우 스펙트럼이 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알다시피 전국민 의료보험은 후에 클린턴이 관철시키고자 했으나 당시 공화당 하원의장인 깅리치에 의해 좌절된다. 현재 공화당과 민주당의 차이는 이만큼 벌어진 것이다.

이처럼 두 정당의 노선 차이가 벌어진 이유는 70년대 들어서면서 공화당이 다시 세금감면과 복지 축소와 자유 시장을 내세우며 극우화됐기 때문이다. 크루그먼은 그 이유를 미국의 ‘새로운 보수주의 운동’이 공화당을 장악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여기도 우리와 싱크로율 99.9%다. 우리도 있다. 뉴라이트.

이 ‘새로운 보수주의 운동’은 사실 민주주의자들인지도 의심스럽다는 게 크루그먼의 얘기다. 그들은 프랑코 정권을 존경한다고 공공연하게 떠들어댔다. 또한 그들은 정부 규제가 없는 자유 시장과 세금 감면을 원하는 기업의 든든한 후원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또한 공화당은 기독교 민족주의자들, 그러니까 공화당 당대회에서 “정교일치를 하면 왜 안되느냐”고 연설하는 자들의 지지까지 얻는다. 이 역시 우리와 싱크로율이 높다.

게다가 미국은 원초적인 인종 문제가 결부돼 있다. 복지 혜택을 늘렸을 때 그 이득이 유색인종에게 돌아가는 것을 질색하는 남부 여러 주의 인종적 혐오를 공화당은 교묘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는 거다. 이 또한 우리와 싱크한다. 우리도 있다. ‘흑인’ 대신 ‘빨갱이’. 민주당이 싫은 이유는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북한에 퍼주기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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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뉴라이트라 할 수 있는 "Compassionate Conservatism(인정 많은 보수)"를 비꼰 카툰 - 뉴올리언즈의 재해복구에는 예산배정을 안 하고 이스라엘의 군비지원에는 3백억달러를 책정했다는 내용.

이들의 지지를 얻은 골드워터는 하지만 패배한다. 그러나 똑같이 이들의 지지를 받는 레이건은 정권 획득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레이건이 이같은 ‘새로운 보수주의의 정서’를 포장해서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레이건은 유세 중 “복지의 여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니까 복지 혜택만으로 여왕처럼 사는 어떤 여성, 그것도 유색 인종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어떤 여성이 있다는 얘기다. 결국 “복지의 여왕”이라는 단어는 유권자들로 하여금 세금을 악용하는 것에 반감을 갖게 만드고, 더불어 높은 세금과 큰 정부를 불신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레이건이 약속하는 세금 감면과 작은 정부에 동조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주의 어떤 여성이 ‘복지의 여왕’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사실 ‘복지의 여왕’은 실제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레이건은 증명할 수도 없는 사실을 가지고 정서적으로 접근한 것이었다. 이런 언어는 이명박 대통령도 사용했다. 그 이름도 유명한 톨게이트. 대체 어떤 톨게이트가 하루 200대가 통과하는데 직원이 20명인지 정부조차 찾지 못했다. 그도 그저 큰 정부에 대한 반감을 갖게 하는 데 존재하지 않는 톨게이트를 갖다 붙였을 뿐이다.

이명박의 출현은 레이건의 출현과 비견된다. 그는 뉴라이트의 지지를 받았고 세금 감면과 민영화를 통한 작은 정부, 자유 시장을 내걸고 있으며 기독교 장로이다. 게다가 한나라당은 아직도 ‘빨갱이’를 대신해 ‘좌파’라는 단어를 공공연히 사용한다. 이들이 사용하는 ‘좌파’라는 단어는 ‘좌파 정책’, ‘좌파 코드’와 같이 대상이 굉장히 모호할 때가 대부분이다. 이성적인 단어가 아니라 감성적인 단어라는 증명이고, 논리가 아닌 감정에 불과하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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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뉴라이트는 미국의 새로운 보수주의 운동을 벤치마킹했음이 분명하다. 레이건처럼 이명박이 집권했으니 그들은 장기 집권을 꿈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작업이 수반돼야 한다. 노령화로 자신들의 지지층이 많아진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어린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비우호적이다. 그들에게 투표권이 생기면 그것 역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고쳐야 한다. 무엇을? 교과서를.

역사 교과서 개정 논란은 그래서 나오는 것일 게다.

젊은 대학생들도 문제다. 미국의 새로운 보수주의 운동이 대학 공화당 연합회를 조직했듯이 뉴라이트 또한 대학 학생회를 조직해 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방송. 아마도 방송, 그것도 예능/오락 쪽에도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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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뉴라이트의 시각

레이건이 집권한 게 1980년. 거의 30년이 지나서야 미국은 오바마를 당선시키며 레이거노믹스를 걷어치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야 이명박을 갖게 됐다. 이것을 걷어치우려면 우리에게도 30년이 필요한 것일까?

끝으로 폴 크루그먼은 유권자들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안되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할 때 한 가지 커다란 전제를 깔고 있다. 그것은 ‘유권자들이 공화당에게 속았다’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공화당은 어떻게 해서 유권자들을 속일 수 있었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그렇다면 좀 더 원초적인 의문을 가져보자. 유권자는 왜 속을까?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을 내놓을 뿐 아니라, 국정원을 과거 안기부로 되돌리려고 하고, 언론장악을 획책하고, 검찰과 감사원 심지어 ‘헌재까지 접촉’하고 다니는 정권에게 왜 속으며, 아직도 모든 당 중에 압도적 1등으로 왜 지지할까?

김근태 씨야 정치인이니까 이 말 해놓고 무지 욕먹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정답같다.
국민이 노망났다. 그것도 단단히 노망났다.


영진공 철구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는 지금의 한국과 싱크로율이 99.9%”의 6개의 생각

  1.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게 가진게 없는 사람들이 가진자들의 논리에 찬성한다는 겁니다.
    가진게 많고 지킬게 많은 사람들은 그걸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지만 가진게 없는 이들은 그 불균형을 깨는데 시작하기전부터 좌절하더군요
    지난번 교육감 선거때 절실히 느꼈습니다.
    강남서초 두구의 투표율이 가장 높았고 그들이 누구를 지지했는 가를 보면 가진자들이 지키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 수 있더군요
    아~~~ 괴롭습니다

  2. 소속집단과 준거집단을 착각하는 이들, 근일간 정승이 될 예정인 개들(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이런 말들이 떠오르더군요. 왜 배관공 조인가 미국 대선에서 잠시 주목(?) 받았던 이의 경우도 유의미했습니다. 현실은 비록 시궁창이지만 (심지어 배관공조합 조합원도 아닌데다 무자격자로 밝혀졌다죠) ‘내가 만약 내 사업체를 경영하는 사장이 된다면 오바마 당신의 세금정책은 나에게 사업의욕마저 상실케할 수준의 고통을 줄 것이다’ 이런 식이었다는데요. 허지웅 님 블로그에서 본 댓글 중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지적이 있었습니다. 존 스타인벡의 말로, 미국인들이 보수당에 표를 던지는 이유는 자기들이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고 있는) 잠재적인 백만장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탐욕 이기심 허영도 문제고, 법기강 사회기강 도덕이 무너진 것도 문제고, 성공 저세가 우선시 되는 것도 문제고, 돈이면 다 된다는 사회풍조도 문제다 싶긴 한데 가만 생각해보면 기독교의 문제인지 기독교를 악용하는 이들의 문제인지 기독교에서 유래된 것임에 분명한 두 가지 정서가 대단히 거슬립니다. 하나는 ‘죄없는 자 이 자를 돌로 치라’. 또 하나는, ‘믿는 자에게 복이 온다’인데요.

    ‘죄없는 자…’는 분명 관용과 용서, 자성을 뜻하는 경구일텐데, ‘알고보면 모두 더러울진대 과연 누가 누구를 욕하고 벌할 것이냐’는 식으로 흐르고 흐르다 도덕적 해이를 용납하는 정서 근거로 작용하는 듯 싶고, ‘믿는 자에게 복이 온다’는 소위 ‘시크릿’ 류의 주장들은, 성공한 자신을 이미지화하고 이를 믿고 또 믿고 죽어라 믿으면 이루어진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데요.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보면 ‘긍정의 힘’을 넘어 분식회계를 하고서도 그게 왜 나쁜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지로들 가는 것 같더군요.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 대한 성찰, 옆에 사람이 죽어가도 그저 지나쳐 가던 길을 계속 갈 수 있는 비정한 사회에 대한 성찰, 그 비정함이 내 목을 조를 수도 있다는 데에 대한 성찰, 최대다수 최대행복이 왜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지 왜 민주주의 다수결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성찰이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사실상 심정은 그냥 폭탄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몸에 감고 한나라당이나 뉴라이트 단합대회에 난입하고 싶은 심정이고 뭐 그렇습니다ㅎㅎ

  3. 조지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읽어 보면 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위한 정책만을 밀어 붙이는 정권에 투표하는지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설명이 되어 있더라구요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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