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은 너무 많아 (Five Is Too Many, 2005), “친근함과 즐거움을 주는 독립영화”

엄밀히 따지자면 우리나라에는 ‘독립 영화’라는게 없다고도 한다. ‘독립’ 영화라는 말은 미국 헐리웃의 거대 스튜디오 시스템으로부터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뜻에서 이름 붙여진 범주인데, 우리나라에는 원래 ‘의존’할만한 스튜디오 시스템도 개뿔 없었기 때문에 ‘독립’할 일도 없었다는 얘기다. 심지어는 모든 한국영화가 아예 ‘독립 영화’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영화 한편 제작비가 4~50억을 쉽게 넘나드는 요즘, 거대 자본의 논리로부터 보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넓은 의미에서 ‘독립 영화’라고 부르는 것도 편의상 괜찮은 것 같다. 저쪽이나 이쪽이나 그 태생은 비슷비슷하니까 별로 문제 삼지 않고 그냥 그렇게 부르고 쓰는 말이 된 것 같다.

문제는 ‘독립 영화’에 대한 일반 관객들의 선입견이다. ‘독립 영화’라고 하면 무조건 싸게 만든 영화, 그래서 때깔도 시원찮고 배우들 연기하는 모양새도 굉장히 아마추어스러운 영화들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그리하여 그나마 ‘독립 영화’를 볼 기회를 맞이했을 때에는 나름의 새로운 잣대를 필요로 하게 된다. 돈 없이 기술 없이 찍었으니까 너무 기대하지 말고 많이 접어줘야만 한다는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 개봉에 성공한 한국 ‘독립 영화’ 가운데 <용서받지 못한 자>는 저예산 영화의 태생적 한계를 최대한 극복해낸 작품이었다. 즉, 돈 없이 찍었으니까 그림 후지고 배우들 어색한 거는 대충 눈감아 달라는 핑계를 더이상 대지 않아도 좋을 만큼, 왠만한 ‘비독립’ 영화 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준 사례였다. 그러나 <용서받지 못한 자>의 경우는 앞으로 만들어질 한국의 많은 ‘독립 영화’들이 본받고 따를 만한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같은 저예산의 한계를 안고 있었음에도, 젊은 열혈 영화인들의 열정과 시간(무려 1년 6개월), 그리고 영화를 만든 이가 국가기관으로부터 고발 당하는 사태를 빚기까지 얻어낸 이 정도의 퀄리티를 앞으로의 모든 ‘독립 영화’들이 관객들 앞에 선보여야 할 기준이라고 한다면, 그것 역시 아예 ‘독립 영화’를 만들지 말라는 소리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독립 영화’를 보는 ‘독립 영화’ 나름의 문법에 “내가” 익숙해져버리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을 <다섯은 너무 많아>를 보며 하게 되었다.

디지털 상영 시설이 갖춰진 곳에서 영화가 시작되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아 이거 정말 ‘독립 영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같은 ‘독립 영화’라고는 하지만 <용서받지 못한 자>가 저예산임에도 불구하고 상업 영화의 모양새를 갖추려고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물이었던 것과 달리, <다섯은 너무 많아>는 ‘우리는 우리 나름의 때깔과 연기하는 방식이 따로 있거든’이라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조금씩 자기 나름의 문법에 나를 적응시켜 갔다.

상영관은 멀리 외딴 곳에 있던 데다가 입장료가 별로 싸지도 않다. 8미리 캠코더는 아니었던 덕에 계단 현상은 없었지만 그래도 칙칙하게만 느껴지는 화면과 특히 야간 촬영에서의 노이즈는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대형 화면에 영사할 때의 한계를 대번에 눈치 채게 만든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그나마 누가 봐도 배우처럼 생긴 주인공이라도 한 두 명 캐스팅했었지만, <다섯은 너무 많아>의 배우들은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을 법한 ‘배우 같은’ 인상의 인물들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상업 영화와의 비교를 드디어 멈추고, ‘독립 영화’의 문법 속에 안착했을 때 비로소 ‘독립 영화’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세계 속의 독특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상업 영화의 흉내를 굳이 내려고 할 필요가 없는 ‘독립 영화’ 나름의 세계다. 이제는 ‘독립 영화’를 보러 갈 때마다 반복하던 저예산의 한계를 감안해서 일정 부분을 참아주러 가는 것이 아니라, ‘독립 영화’가 가진 나름의 방식으로 보고 듣고 받아들이는 법에 익숙해져야할 필요를 느낀다.

<다섯은 너무 많아>는 오랫동안 낯설고 어색하게만 느껴져왔던 장편 ‘독립 영화’에게서 친근함과 즐거움을 발견하게 해주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자유롭고도 독창적인 내러티브와 따뜻한 시선으로 ‘독립 영화’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영진공 신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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