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1,2

1. 

 

돈을 갚을 수 있는 사람과 갚을 수 없는 사람을 구별하는 일은 책에서 글자와 종이를 구별하는 일처럼 간단하다. 척 보면 안다. 그는 돈을 갚지 못할 사람이다. 그의 표정은 아물거리는 안개처럼 떠다니고 그의 동선은 차에 치인 유기견처럼 기신댄다. 그래도 나는 그에게 돈을 빌려줄 것이다. 금세 빚은 원금에 이자에 이자에 이자가 붙어 결코 그가 갚을 수 없는 크기로 불어날 터이고, 나는 그 빚의 사십 프로를 할인해서 오거리 김사장에게 양도하면 끝이다. 그것만으로도 빌려준 원금에 은행 이자를 훌쩍 뛰어넘는 금액을 챙길 수 있다. 그 후 오거리 김 사장은 원금에 이자에 이자에 이자가 붙어 늘어난 빚에 다시 이자에 이자에 이자를 붙인 금액을 동생들을 시켜 받아낼 것이다. 더 이상 그를 짜낼 수 없다면 산간마을에서 가난한 소작을 치고 있을 부모, 형제, 친척들을 찾아가 협박할 것이고, 그의 이름으로 가능한 거의 모든 대출과 깡을 받아낼 것이고, 신체포기각서를 쓰게 할 것이고, 고깃배에 넘겨버릴 것이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반전시킬 수 있으리라 믿으며 내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을 테지만 나는 안다. 그의 운명은 이미 끝났다.  

표준약관을 준수할 것을 확약하며 이외의 것은 일반 관례로 해결하며 분쟁시 채권자의 결정에 따른다. 그는 조악한 법률 용어로 포장한 사악한 대부 계약서를 읽는다. 계약서를 읽는다고 돈을 안 쓰는 사람은 없었고, 그도 여느 사람처럼 담배를 한 대 물더니 채무자 이름 옆에 힘차게 도장을 찍는다. 이천오백만 원. 고철구. 이제 그가 자신의 남은 인생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밖에 없다. 사채빚 이천오백만 원을 어디다 쓰느냐, 어디다 쓰고 삶으로부터 지워져 가느냐이다. 


2. 

 

고철구는 은하장 여관 305호에 장기를 끊고 살았다. 처음에는 월 삼십만 원을 내고 405호에 살았는데 육 개월이 넘어 진짜 장기가 되자 여주인은 월 숙박비를 이십칠만 원으로 낮춰주면서 말했다.  


“대신 305호로 옮기쇼. 욕조에 물 받아 놓고 빨래하면 수도세를 감당 못하요. 305호는 욕조가 없응께.” 


여주인은 카운터 쪽유리 너머에서 화투점을 떼고 있었다. 흑싸리에 오동을 잡았으니 여관바리 손님이 꽤 들 운세였다. 옮긴 방 또한 십 리터 냉장고, 십사 인치 TV, 나일론 이불이 전부였고 옆 건물이 하필 삼층이어서 창을 열면 벽만 보였다. 발돋움을 한 채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야 건물 틈 사이로 풍경이랄 게 걸렸다. 그 풍경 또한 어지럽게 연결된 전봇대 하나와 가끔 지나가는 자전거뿐이었다.  


옆방, 그러니까 304호에선 이틀에 한 번 꼴로 여자 신음소리가 새나왔다. 처음에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벽에 귀를 대고 수음을 했다. 상상의 밑천조차 곤고해서 주로 이혼한 아내, 전주 대명동 미스 송, 여관 여주인을 떠올렸다. 여자의 교성은 그의 수음보다 오래 갔다. 바지를 추스르고 담배를 피울 때면 그 교성은 멀리 닿지 못하는 오지의 풍문처럼 허름한 여관방을 떠다녔다. 풍문처럼, 그 소리를 귀에 담아도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얼마 후 그는 그 교성이 같은 여자의 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리에 묻어나는 흥분과 열기가 진심일 때도 있었고 아닐 때도 있었지만 소리의 주인은 한 여자였다. 낮이면 그 여자는 크게 볼륨을 올려놓고 TV, 주로 드라마를 보다가 TV 소리를 밀치며 씨펄이라고 외쳤고, TV 소리에 숨어 끅끅 울었다. 누워 있다가도 그 울음소리가 들리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고장에 흘러 들어온 것처럼 다른 곳으로 다시 흘러 들어갈 수도, 이곳에 고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가진 돈은 말라가고 있었다. TV 소리에 숨은 옆방의 울음소리를 추려내 듣고 있노라면 그의 방에 노을이 내리고 썰물이 들고 안개가 찼다. 변 부장의 전화는 일주일 전부터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라는 응답만 지려댔다. 


그날. 옆방이 소란스러웠다. 또 여자의 달뜬 교성이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방문 여닫는 소리가 들리고 남자들의 음탕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씨발 뭐하자는 플레인데요?” 

여자의 목소리는 앳되었다.  

“괜찮아. 내 친구들이야.” 

“그냥 하던 거 해.” 

“우린 옆에서 얌전히 술 먹고 있을게.” 

여자의 목소리가 자르랑 흔들렸다. 

“돌리려고?” 

“왜? 안돼?” 

“너 칠수 친구들하고도 강강술래 탔다며?” 

“그럼 두당 오만 원씩 더 얹으세요.” 

“쑈 까네. 씨발년.” 


그날 밤 더 이상 여자의 교성은 들리지 않았다. 가는 빗줄기가 유리창을 두드리기 시작하자 묵힌 곰팡내가 여자의 교성을 대신해 텅 빈 그의 방을 흘러 다녔다. 남자들의 삿된 숨소리와 웃음이 종종 이어졌고 다시 문 여닫는 소리가 그 뒤를 잇더니 정적이 찾아왔다. 정적은 무겁고 가무레해서 가여웠다. 도시는 높은 인구밀도를 해결하기 위해 건물 간 경계선 거리를 지키지 않고 덩굴처럼 뒤엉켜 땅 위에 솟아나 있었지만 해괴하게도 사람이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수백만의 인구는 행정 문서에만 존재했고 사람들은 각자의 정적에 들어앉아 나오지 않았는데 그 정적은 사람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그 정적 속에서 빗물이 들이치도록 창을 열어놓은 채 잠들었다.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었을 때는 새벽 네 시가 넘어 있었다.  

“담배 세 가치만 빌려줘요.” 

옆방, 304호의 목소리로 여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목소리처럼 앳된 얼굴이었다. 여관 복도 야간등의 짙은 명암이 여자의 얼굴에 닿자 이마의 여드름이 더 돋아나 보였고 웨이브가 풀린 단발이 부산스러웠다. 외국 배우 사진이 천격스럽게 프린팅 된 하얀 라운드 티는 길게 늘어져 적벽돌 색깔의 반바지를 다 덮고 내려왔다. 여자는 고개를 숙여 앞 터진 슬리퍼 사이로 나온 자신의 발톱만 내려다봤는데 발톱에는 까만 매니큐어가 덮여 있었다. 여자의 차림은 확실히 여자의 질감과 겉돌았다. 여자의 나이가 궁금했고, 왜 하필 세 개비인지가 궁금했지만 잠자코 웨죽웨죽 담배를 꺼내줬다.  


그는 문을 닫고 들어와 담배를 피웠다. 여자도 벽 너머 옆방에서 그가 건네준 담배를 피우고 있을 것이었다. 헤어진 아내가 데리고 간 딸이 지금 열여섯인지 열일곱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여자의 교성을 들으며 수음을 하던 지난밤들의 욕정이 문득 무기력했다. 딸과 아내가 떠난 뒤 제초제를 들고 찾아간 목포 갓바위에는 멀리 물러난 바다만큼 검은 개펄이 드러나 있었다. 개펄 위를 펄떡이는 망둥이가 빙렬처럼 땅거미에 작은 균열을 만들었는데 석양에 반사돼 반짝이는 망둥이의 등허리가 어찌나 많고 찬란한지 그는 제초제를 마실 수 없었다. 철썩철썩. 철썩철썩. 망둥이가 짧은 앞지느러미를 튕기며 은하장의 낡은 벽을 타고 삼층까지 기어올라 빗물처럼 그의 방 유리창으로 밀려들었다. 여자는 세 명을 받았을 것이다. 이 망둥이들이 여자의 방도 방문했을까 궁금해하며 그는 담배를 비벼 껐다.  

 


 

 

영진공 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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