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추리안 캔디데이트”, 문간에 발 들여놓기의 무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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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에 만들어진 <맨추리안 캔디데이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의 비극적 역사 중 하나인 6.25전쟁을 소재로 합니다.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쟁 포로가 되었던 미군 장교들이 주인공이죠. 그들은 모두 포로가 되어 있는 동안 소련의 심리학자들에 의해 미국의 주요인사들을 암살하도록 세뇌당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전쟁영웅으로 대우하는 미군당국은 물론이고 세뇌당한 미군들 자신조차도 자기들이 암살의 도구로 세뇌당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러던 중, 무의식 깊은 곳에 남겨진 세뇌의 흔적이 그들 중의 한명인 마코 소령(프랭크 시내트라)의 꿈속에서 튀어나오는 바람에 그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입니다. 이 영화는 2004년에 <양들의 침묵>으로 유명한 조나산 드미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시대상황에 걸맞게 1차 걸프전쟁을 배경으로 합니다만, 역시 은밀한 세뇌작업과 그에 얽힌 음모라는 소재는 여전합니다.


이 글의 주제는 이 1962년작 오리지널 영화임다.

그런데 이 영화의 배경을 살펴보다보면 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6.25 전쟁은 전쟁포로에 대한 세뇌작업이 큰 이슈로 부각된 최초의 전쟁이기도 했거든요. 중공군이 참전한 이후,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된 미국 군인들 중 일부가 몇 개월 후에 대남방송에 출연해서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난하고 공산주의의 가치를 긍정하고 중공군의 사기가 훌륭하고 포로에 대한 대우도 좋다고 칭찬하는 등, 참전한 연합국 군인들의 사기를 끌어내릴 말만 골라서 해대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놀란 연합군 측은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적방송에 출연한 그 군인들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평균이상의 장병들이었습니다. 본인과 가족을 포함한 주변 인물들도 공산주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고요. 다시 말해서 이들은 포로가 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그저 충성스러운 미국 군인들이었던 겁니다. 결론은 그들이 포로가 된 이후에 중공군이 그들의 정신에 무슨 짓을 했다는 뜻이었죠. 그것이 바로 ‘세뇌’였습니다.

영어로 세뇌를 brainwashing이라고 하는데, 이건 원래 중공군이 사용하던 단어, ‘뇌를 세척하다’는 뜻의 한자어 세뇌(洗腦)를 그대로 영어로 옮긴 겁니다. 즉, 세뇌라는 단어 자체가 이 사건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이죠. 곧 미국의 심리학자들도 세뇌에 대한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도대체 어떤 끔찍한 짓을 했길래 이들의 충성심과 사상이 이렇게 쉽게 뭉개진 것인지는 베일에 쌓여있었습니다. 덕분에 이들에 온갖 상상의 소재가 되었고 그 결과, 1959년 리차드 콘돈이 SF 스릴러 <맨추리안 캔디데이트>를 쓰기에 이릅니다. 물론 그 소설이 영화 <맨추리안 캔디데이트>의 원작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죠.


이런 무시무시한 세뇌를 상상했으나 …

전쟁이 끝난 후, 고국에 돌아온 미군포로들을 통해서 중공군이 저지른 세뇌 작업의 실상이 밝혀졌습니다. 최면술에서부터 시작해서 뇌수술까지 온갖 기괴하고 잔인무도한 기술의 결과물이라고 생각되었던 세뇌의 실상은 허탈할 정도로 단순했습니다. 치알디니가 쓴 유명한 책 <설득심리학>에 그 기본 전략이 잘 나와 있습니다.

중공군은 자기들의 세뇌전략을 ‘유화정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골자는 아주 작은 요청부터 시작해서 점차 더 크고 심각한 요청을 한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공산주의의 장점과 자본주의의 단점에 대한 간단한 글을 써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큰 보상도 없습니다. 단지 글을 쓰는 동안 밖에서 땅파는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도의 보상이 있었을 뿐이죠. 게다가 자본주의에는 모순이 있고 공산주의에도 잘 찾아보면 장점이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말할 수 있죠. 그럴 수 있어야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니까요.

따라서 몇 명이 이 요청에 응합니다. 그런데 일단 글을 쓰면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자기가 작문한 것을 백일장에 출품해보라는 요청을 받죠. 상품은? 별거 없습니다. 담배 한갑 정도죠. 큰 보상을 받지 않으니까 돈에 팔려 국가를 배신한다는 의식도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어차피 자기가 쓴 글이니 발표 못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발표를 하고 나니까, 백일장에서 당선된 좋은 글이라며 미군 부대를 향한 대남 라디오방송에서도 한번 발표해달라고 요청하네요. 이때부터는 일이 진짜 심각해집니다만, 포로들은 거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발적으로 승인하게 되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한번 승인한 요청은 계속 승인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리고 일단 한번 이렇게 공식적으로 발표를 한 포로는 더 심한 요구에도 응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미 저질러 놓은 일들을 보면서 자기가 사실은 공산주의에 호의적이며 자본주의를 싫어하고 있었다고 인식하게 되죠. 자기행동을 보면서 자기의 태도를 정하는 겁니다. 이 사소한 과정이 축적되면, 마침내 미국을 경악하게 만든 “세뇌된 병사”가 탄생하는 것이죠.


아니, 그렇게 간단한 걸 가지고 삽질을 했단 말이야? 응?

이 방법은 미국에서 세일즈의 기본 전략 중 하나인 문간에 발 들여놓기 기법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세일즈를 하려면 일단 어떻게든 집 문간에 발부터 걸쳐놓으라는 것이죠. 발이 들어간 다음에 머리가 들어가면 된다는 겁니다. 1965년판 American Salesman이라는 잡지에서 문간에 발 들여놓기 기법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간단하게 요약했더군요.

“작은 주문으로 시작하여 커다란 주문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 이 전략의 요체이다. 어떤 사람이 당신의 상품을 처음으로 주문한다면, 비록 그 주문 자체를 통해서 당신이 지금 당장 어떤 이익을 얻지는 못할 지라도 그는 더 이상 잠재고객이 아니다. 그는 바로 당신의 고객이 된 것이다”


일단 문간에 발을 들여놓으면 그 다음은 쉽다 …

가장 고전적인 “문간에 발 들여놓기” 기법은 “물 한잔만 달라” 며 고객의 현관문을 열게 하는 방식입니다. 아직도 이 방법을 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요즘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여전히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들은 제품 이용 소감 공모전 같은 것을 많이 개최합니다. 인터넷을 활용해서 블로거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경우도 있죠. 이런 행사에 참여한 소비자들은 처음에는 건성으로 제품을 칭찬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단 칭찬을 하려면 어떻게든 제품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야 하고, 실제로 남들이 보는 공간에서 자기 이름을 걸고 칭찬도 하고 나면 실제로 그 제품이 자기가 칭찬한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나중에는 기회가 있을때마다 그 제품을 남들에게 추천하게까지 되죠. 중국의 정치 백일장과 마찬가지 기능을 하는 겁니다.

중공군의 세뇌기술은 공산혁명 이후 중국국민들의 사상을 개조하는 범국가적인 작업을 통해서 갈고 닦여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기술은 자본주의자들의 최전선인 광고와 마케팅 분야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죠. 이것도 재미있는 아이러니 아니겠습니까?

영진공 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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