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Irreversible, 2002)”, 관객을 피곤하게 만드는 영화

등장인물이 과거를 회상하는 정도가 아니라 영화 전체의 시퀀스 구성을 아예 시간 역순으로 되감아 올리는 역배열의 영화 형식은 <박하사탕>과 <메멘토> 등에서 이미 성공적으로 선보인 예가 있어 더이상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제아무리 엔딩 크레딧을 꺼꾸로 틀어보고, 제목과 배우들의 이름을 역상으로 보여준들 최초의 시도는 될 수 없게 된 것이다. 정상적으로 편집된 영화를 아예 처음부터 꺼꾸로 틀어주는 시도라면 모를까, 어차피 영화를 구성하는 시퀀스 단위 내에서는 이렇게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수 밖에 없는 것이 역배열의 한계일 것이다.

관객 입장에서 <돌이킬 수 없는>이 피곤한 이유는 역배열의 영화 형식 때문이 아니라 여과없이 보여주는 잔인한 폭력, 살인과 강간 장면, 그리고 시신경의 한계를 시험하는 정신없는 카메라 워킹 때문이다. 워킹이 아니라 이건 뭐 위아래 좌우로 빙글빙글 돌리면서 아예 덤블링을 해댄다. 그리고 한 시퀀스를 한 테이크로 끝내는 방식으로 찍었으니 영화 전체가 열 몇 테이크 밖에 안되는 셈이다. 감독의 재주나 배우들의 연기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관객의 정서와 육신은 무척 피곤해진다.

미카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를 보면서 감독이 참 새디스트적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돌이킬 수 없는>의 가스파 노에(Gaspar Noe)는 한술 더 떠서 무척이나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면서도 영화적인 야심은 대단한 인물인 것 같다. ’91년 단편 <까르네>에서 ‘자폐증세가 있는 딸의 초경을 강간당한 것으로 오인하고 무고한 남자를 살해한 한 도살업자의 생애’를 다룬 바 있는 그의 ’98년 장편 데뷔작 <아이 스탠드 얼론>은 바로 그 도살업자의 출소 이후의 이야기이고, <돌이킬 수 없는>의 첫 시퀀스에서 자기 딸아이를 강간했다고 고백하는 뚱뚱한 중년의 남자 역시 바로 그 도살업자다.

제도권 영화가 허용하는 한계를 시험하며 온갖 논란을 불러 일으키려는 것이 그의 전략이었다면 그는 일단 성공한 축에 들어간다. 다시 보고싶지 않더라도 영화를 일단 본 사람은 이 영화에 대해 계속 말하고 싶어했으니 말이다.

영진공 신어지

““돌이킬 수 없는 (Irreversible, 2002)”, 관객을 피곤하게 만드는 영화”의 2개의 생각

  1. 맨처음 도입부터 충격적이었었는데요
    결국 끝까지 다봤지만 …정말 놀라운?영화더군요;;;;
    기분은 찝찝하고 더러운데 기억은 계속난다는…

  2. 핑백: 전현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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