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바”, 해사한 지중해에 어리는 슬픔의 그림자

영화 <제노바>
어린 딸 메리가 자초한 사고로 시작한다. 엄마, 언니와 함께 어딘가로 향하던 메리는 지루함을 달래려는 듯 두 눈을 가리고 옆
차선을 달리는 자동차 색을 맞추는 놀이를 한다. 이상할만큼 자신보다 잘하는 언니 켈리를 시샘하다가 메리는 장난삼아 운전 중인
엄마의 눈을 가린다. “엄마도 해봐, 엄마도 해봐” … 그리고 일어난 끔찍한 사고. 엄마는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난다.

일상에 남겨진 세 식구는 좀처럼 아물지 않는 상처를 달래기 위해 애쓰지만, 보일 듯 보이지 않게 두 아이의 자매애는
허약해가고, 그럴수록 동생 메리는 자책감으로 악몽과 환영에 시달린다. 한 순간 아내의 빈 모든 자리를 채워야 하는 아빠 조는 두
딸과 함께 ‘아내 생각을 덜 할 수 있는’ 제노바로 떠나기로 한다.

제노바의 뜨거운 태양 아래 도착한 세 가족은 좁지만 아늑한 새 터전에 짐을 풀고 오붓이 저녁을 한다. 모든 게 평범한 듯 보이는 제노바에서의 차분한 첫 날밤은 계속되는 메리의 악몽과 울부짖음으로 산산이 조각나고 만다.

영화는 화면 안에 지중해의 푸른 바다와 이국의 신비한 구시가지를 놀랍도록 가득 채우는 동시에 빠른 편집과 카메라의
흔들림으로 등장 인물들의 불안함을 전한다. 희한하게도 이 두 장치가 대치될수록 두 눈은 헐렁할 틈 없이 스크린에 압정 박히 듯
고정된다.

감독 마이클 윈터버텀은 마치 사실처럼 연기하는 뛰어난 배우들을 데리고 엄마의 부재가 뒤덮은 가족의 슬픔을, 어린 딸들의
아픔을, 아빠의 고단함을 도시 ‘제노바’ 를 통해 정갈하게  풀어놓는다. 거기에 영화의 공간과 잘어울리는 배경음악은 자칫 어둡고
뿌옇게 될 수 있는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뻔히 허구인 줄 알면서도 메리와 켈리를 진심으로 어루만지며 보게 되는게 바로 영화
<제노바>의 힘이다. 좋은 소설을 읽은 느낌의 우리영화 <파주> 와 <여행자> 만큼이나 문학적인
느낌도 준다.

마이클 위터버텀이 자신의 전작 <쥬드>(1996) 에서처럼 결국 메리를 허망하게 떠나 보내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 하며 영화에 집중했었다. 그리고 희미하게라도 희망을 읽을 수있어 다행이었다.  물론 내용상의 허점이 존재하더라도 깊이 아끼는 감독 마이클
윈터버텀의 <제노바>는 나에게 발꼬락이 시려오는 가을의 맨 끝을 따뜻하게 덥혀 주었다. 한번 더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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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언급했듯 <제노바>
배우들의 연기가 압권이다. 콜린 퍼스는 거대한 유명세에 비해 훨씬 담백하고 정적인 (아버지라기 보단) ‘아빠’를 연기했다. 두
딸 메리(펄라 하니-자딘)와 켈리(윌라 홀랜드)는 도대체 믿기지 않을 만큼의 호연을 펼쳤다. 특히 큰딸 메리가 풀 숏 안에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순간은 감독이 개구지게 엔지컷을 넣은 건 아닐까 의심스러울만큼 자연스럽고, 영리하다.

영진공 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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