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브 바커 원작의 최근 영화 두 편 + 1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2008) 에 이은 클라이브 바커 원작의 공포 영화 2편이 동시에 개봉됐습니다. 그런데 존 해리슨 감독의 <북 오브 블러드>(2008)와 안소니 디블라시 감독의 <드레드>(2009), 두 편 모두 메가박스 코엑스에서만 상영하고 있어서 마치 조용하게 치뤄지는 클라이브 바커 특별전을 보는 듯 하네요.

<드레드>의 안소니 디블라시 감독은 2006년 <데드 바이러스> 이후 클라이브 바커 원작을 영화화하는 프로젝트의 제작을 줄곧 맡아오다가 결국 본인이 직접 각본을 쓴 <드레드>로 연출 데뷔작을 내놓게 된 인물입니다. 앞으로 예정되어 있는 프로젝트들까지 전부 클라이브 바커의 작품과 연관되어 있을 정도로 아주 푹 빠져서 살고 있는 모양이예요.

영화화된 다른 작품들이 초현실적인 설정 속에게 관객들이 공포를 체험하게 만드는 쪽이었다면 <드레드>는 공포 그 자체에 대한 한 연구라고 할 수 만큼 심리 스릴러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작품입니다. 클라이브 바커가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다루고 있는 공포라는 주제 그 자체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작품론에 해당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클라이브 바커의 팬인 안소니 디블라시 감독로서는 마땅히 자신의 연출 데뷔작으로 욕심을 냈을 법도 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드레드>가 내러티브를 무시한 형이상학적인 작품인 것도 아니고 안소니 디블라시 감독의 연출이 초짜들의 허술한 티를 내고 있는 것도 아니더군요. 원작과의 차이는 알 수 없지만 <드레드>는 심리 스릴러와 공포물의 경계를 가로지르면서 밀도 높은 서스펜스를 제공하고 있는 베리 웰메이드 영화입니다. 취향에 상관없이 기술적인 완성도만으로도 얼마든지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만듬새가 빼어난 작품이라는 얘기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드레드>에서 대결 구도를 형성하게 되는 두 명의 주인공, 퀘이드(숀 에반스)와 스티븐(잭슨 라스본) 중에서 누구의 입장에서 서느냐에 따라 영화는 심리극이 될 수도 있고 전형적인 호러물이 될 수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6살 때 부모가 자신이 보는 앞에서 도끼 살해를 당했던 퀘이드는 약물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든 내적인 공포에 시달리는 인물입니다. 공포와 성욕이 뒤엉킨 나머지 누드 그림을 그린 후 남몰래 도끼 맞은 자국을 그림에 덧칠 해놓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퀘이드는 자신의 삶을 억누르는 공포로부터 벗어나고자 합니다.

그러나 퀘이드로부터 공포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만들기를 제안받은 이후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는 영화학도 스티븐의 입장에서 <드레드>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공포물 그 이상도 이 이하도 아닙니다. 친구처럼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던 한 인물의 광기로 인해 본인과 그 주변 사람들이 말 그대로 생지옥 같은 최악의 상황을 경험하게 되니까요.

영화가 처음부터 스티븐의 입장에서만 진행이 되었다면 <드레드>는 그다지 특별할 일이 없는 평범한 공포 영화가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 물론 만들기에 따라서는 그러는 편이 훨씬 재미있는 영화를 내놓을 수도 있었을테지만요.

하지만 <드레드>는 두 인물 모두, 또는 그 누구의 입장도 아닌 시점을 유지함으로써 매우 독특한 관객 경험을 전달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드레드>는 공포에 관한 나름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으면서 전체적인 내러티브에 있어서는 어느 연쇄살인범의 탄생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퀘이드가 과연 연쇄살인범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다소 모호한 점이 있습니다. 퀘이드는 사실 영화 속에서 누군가를 직접 죽이거나 하지는 않거든요. 영화는 딱 거기까지입니다.

<드레드>는 타인을 각자의 트라우마 속으로 몰아넣거나 죽어가는 순간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미래의 괴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역시나 타인에 대한 고문이나 가해를 통해 본인의 만족을 얻고있다는 점에서는 이미 괴물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요.


<드레드>(2009)와 함께 개봉된 또 한 편의 클라이브 바커 원작의 영화입니다. <북 오브 블러드>는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2008), <드레드>와 마찬가지로 클라이브 바커의 소설집 <피의 책>에 수록된 단편을 영화화한 작품인데, 개봉은 늦었지만 제작된 시기는 세 편의 영화 중 가장 먼저였습니다. 포스터가 너무 징그러워서 감히 봐야겠다는 생각은 못하고 있었는데 기왕 클라이브 바커 원작의 영화들을 보는 김에 마저 해치우자는 기분으로 챙겨보았습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드레드>와 비교할 때 좀 더 적극적으로 서스펜스를 창출하고자 하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본격적인 심령 호러물로서의 으시으시한 면모가 무척 보기 좋았습니다만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점점 맥이 빠지는 듯 싶더니 막상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더이상의 활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담담하게(?) 끝나고 말더군요.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의 세계가 만나는 교차로 위에 세워진 집, 그 곳에서 죽은 자들의 원혼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일종의 채널로서 운명지워진 어느 청년의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막상 죽은 자들의 그 이야기가 어떤 내용인지를 알 수가 없으니 관객 입장에서는 피로 씌여진 그 책의 겉표지만 들여다보고 도로 물러나는 듯한 허전한 느낌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산 채로 죽은 자들의 사연을 위한 책이 되다 못해 죽어서까지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청년의 꼴사나운(?) 운명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조차 알 수가 없으니 참으로 애매한 결말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클라이브 바커의 원작을 영화화한 다른 작품,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이 불가사의한 지하철 연쇄살을에 대한 설명과 의미 부여를 초현실적인 설정을 통해 납득시키고 <드레드>는 아예 초현실적인 설정을 최대한 배제하며 심리 스릴러로서의 면모를 선보이고 있는 반면 <북 오브 블러드>는 처음부터 본격 심령 호러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마치 전설의 고향처럼 마무리되고 있는 결말 부분 때문에 오싹한 공포 체험의 제공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아쉬울 수 밖에 없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관객들에게 마땅히 전달했어야 할 – 또는 완벽한 시나리오가 되기 위해 갖추었어야 했던 – 그 무엇인가를 크게 빼먹고 있는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떠오르지가 않네요.

밤 늦은 시간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도살 당한다는 내용의 영화에 진지한 관심이 갔을리는 없지만 – 제목부터 ‘한밤의 고기 열차’가 뭐냐고요 –;;;  –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필름2.0에서 다뤄준 기사를 통해 원작자 클라이브 바커에 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공포 소설은 제 관심 분야가 아닌고로 그다지 기억해둘만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필름2.0이 그 기사를 다룬 태도에는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에 대해 우습게 생각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뉘앙스가 담겨있었습니다. 그 이후에 좀 더 알아본 클라이브 바커는 그냥 소설가가 아니라 <헬레이저>와 <캔디맨>의 감독이셨으니 이쪽 방면에서는 꽤 유명하신 분이더군요.

젊은 사진작가가 우연히 지하철에서의 연쇄 살인을 목격하고 그로 인해 곤경에 처하게 된다는 설정은 그저 고루하기만 할 뿐만 아니라 전개 과정에서도 지나치게 허술할 수 밖에 없는 면이 있죠. 지하철 살인마(비니 존스)의 활약(?)으로 인해 열차 안이 온통 피칠갑이 되곤 하는데 도대체 저건 어떻게 뒷처리를 하는 것인지, 왜 경찰은 밤 마다 사람들이 실종되고 있는데도 적극적으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 레온(브래들리 쿠퍼)은 왜 저렇게까지 집착하고 있는 것인지 아리송한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은 이 모든 의문과 허점들을 마지막 장면에서 한방에 해결해버리는 구조의 영화더군요. 물론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도살장 지하철이 여태 달렸던 것이고 언론이나 경찰이 모른 척 했던 것이며, 관객 입장에서도 그 이유를 알게 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로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지켜져왔던 ‘그것들’은 영화 속에 보여진 모습만으로는 그저 상상의 괴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그것들이 과연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작가의 의도와 함께 좀 더 나아가 작품의 가치 또한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도시의 얼굴을 담고자 했던 젊은 사진작가가 끔찍한 연쇄 살인범과 마주치게 되는 계기는 유명한 갤러리에서 요구하는 특별한 사진을 얻기 위함이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숨겨진 도시의 진짜 얼굴과 마주치게 되고 자신의 삶도 바뀌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 <미드나잇 비트 트레인>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진정한 공포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고 오랜 세월 동안 지켜져왔던 ‘그것’이란 결국 대도시의 숨겨진 속성, 인간 탐욕의 집단 의식 같은 것이겠지요. 그것이 없으면 도시도 없고 그것으로 인해 도시는 발전하고 존속된다는 사실. 때로는 대공황이나 재앙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암묵적 동의에 의해 근본 원인에는 손을 대지 않고 다시 반복되도록 한다는 것.

최근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모든 일들에 관한 영화가 바로 <미트나잇 미트 트레인>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Clive Barker, UK / 1952 ~

영진공 신어지

“클라이브 바커 원작의 최근 영화 두 편 + 1”의 한가지 생각

  1. 정말 무서운 일이 있었어요. 어느 날 책장을 보니 피의 책이 있는게 아니겠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전 그 책을 산 적이 없단 말입니다. 전 거의 모든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사는데, 구매 기록을 다 뒤져도 피의 책이란 이름은 발견할 수 없었어요. 아무튼 책을 펼쳐들었고 저는 곧 그 선연하면서도 상쾌한 빨간색에 빠져들었지요. 그러다가 자정이 지날 무렵…

    뭐 그건 그렇고,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도 봤고 피의 책도 봤는데 이상하게 영화는 별로 재미 없었어요. 단편을 억지로 잡아 늘린 느낌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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