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디 에어”, 우리 인생의 공허한 숫자들에 관하여


내겐 올해의 첫번째 만점 영화. 영화로서의 안락함과 놀라움을 모두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릴 적 영화를 처음 좋아했었던 이유들 – 예전엔 미처 몰랐던 신세계로의 간접 체험과 좋아하는 배우들을 볼 수 있다는 등의 즐거움 따위 – 로 가득한 영화다.

캘리포니아의 와이너리로 관객들을 느긋하게 안내했던 <사이드웨이>(2004)와 냉소적이며 비극적인 유머가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들던 <아메리칸 뷰티>(1999)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도 하겠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수입/배급사인 CJ엔터가 국내용 제목으로 ‘마일리지’를 내정해놓았다가 철회하는 일이 있어 빈축을 샀는데 막상 영화를 보면 내용과 크게 무관하지 않은 제목이긴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인공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은 해고 전문 인사 컨설턴트로서 연중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 내 공항과 호텔에서 생활을 한다. 결혼도 하지 않은 절정의(?) 미중년 라이언이 삶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천 만 마일의 항공사 마일리지를 돌파해서 세계에서 열 몇 번째에 해당되는 클럽 회원이 되는 것. <인 디 에어>는 결국 마일리지 쌓기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라이언의 이야기이고 이것은 다시 허공 위의 다른 무언가에 의미를 두고 사는 현대인들,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된다.

항공사 마일리지는 고객 로열티 프로그램의 대명사다. <인 디 에어>에는 그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고객 차별적 서비스 행태들이 나오곤 하는데 이는 영화 속에 나름 풍자적인 요소가 있다고 할 만한 부분이 된다.

길게 줄지어 서있는 일반 고객 대상 데스크 옆에 열받게시리 하루종일 비어있는 프레스티지 회원 전용 데스크 같은 것들 말이다. 영화 후반부에 마침내 라이언이 받게 되는 천 만 마일리지 클럽 회원 카드는 메탈 재질로 만들어져 있는데 국내에서는 모 카드사의 연회비 60만원짜리 카드가 이를 벤치마킹한 바 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회원들이 일반 플라스틱 카드 무게의 3배 정도인 금속 카드를 열심히 갖고 다닌댄다. 그야말로 Up In The Air의 삶을 위한 표지판인 셈이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직업이지만 고용보장이 되지 않는 미국에서 해고 통보와 재취업 상담을 해주는 일은 회사의 인사 부서에서 아마도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일인지라, 그리하여 오늘날 라이언 빙햄과 같은 인물을 탄생케 한 것이리라.

최근의 뉴욕발 금융 위기와 경제 불황으로 이러한 특수 직종이 때아닌 호황을 맞이했더라는 설정은 – 월터 컨의 원작 소설은 2001년 7월에 첫 출간이 되긴 했지만 – <인 디 에어>가 관객들의 현재와 함께 호흡하는 작품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계기가 된다. 셀던 터너와 공동으로 각색 작업에 참여한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은 컨설팅사 사장의 대사에 단 한 마디를 추가하면서 큰 효과를 얻어냈다. “지금이 바로 우리에겐 기회입니다”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기회를 얻기도 하지만 위기를 맞기도 한다. 100만 마일리지 고지를 눈앞에 둔 라이언에게 신입사원 나탈리(안나 켄드릭)의 제안은 – 퇴직 상담을 화상통화 시스템으로 대체해서 막대한 출장 비용을 절감하라! – 공항과 호텔을 오가는 라이언의 안정된(?) 생활을 파괴하려는 음모에 가깝다.

그러나 이야기의 구조상 가장 큰 갈등 요인이 될 수 있었던 나탈리의 제안은 파트너급 컨설턴트인 라이언이 나탈리를 데리고 다니며 퇴직 및 재취업 상담 실습을 시키는 과정에서 의외로 쉽게 해소가 되고 만다 –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일반적인 헐리웃 코미디나 멜러 드라마들로부터 <인 디 에어>를 크게 달라지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라이언은 나탈리와 얼토당토 않는 소동극을 연출하지도 않고 연애를 시도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교과서와 강의실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나탈리의 성장을 돕는 멘토의 역할을 하게 된다.

안나 케드릭이 연기한 나탈리는 정말이지 아무도 안보는 곳에 데리고 가서 몇 대 쥐어박고 싶은 밉상 캐릭터를 너무나도 훌륭하게 보여준다. 아마도 10년 전 리즈 위더스푼이 욕심을 냈을 만한 배역이 아니었을까 싶은 이 나탈리라는 인물은 <인 디 에어>라는 인생 극장에서 또 한 명의 주인공으로 깊은 여운을 남기도 한다. 이 역시 ‘아카데미를 제외한’ 여러 시상식에서 각색상 트로피를 들어올린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의 재능이다.

조지 클루니는 <ER>(1994)의 젊은 소아과 의사로 출연해 전세계에 그 명성을 떨친 바 있던 특유의 살인 미소를 오랜만에 되찾은 듯 하다.

<ER> 이후 조지 클루니는 좋은 배우로서, 그리고 존경할 만한 영화인으로서의 행보를 걸어오긴 했지만 다분히 대중적인 캐릭터를 요구했던 초기 출연작들에서의 인물상과는 점점 멀어지면서 사실 영화팬 입장에서는 그닥 즐거움을 선사해주지는 못했던 면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인 디 에어>에서의 조지 클루니는 오랜만에 매력적인 입체감을 뿜어내는 좋은 연기를 선보인다. 그런 주인공 배우의 매력 발산이 있기에 영화 말미의 스산함이 그토록 선명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베라 파미가의 ‘뇌리에 사무치는’ 노출씬은 안타깝게도 대역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베라 파미가가 정상 컨디션이었을 때의 모습과 가장 유사한 대역을 쓴 것이라고 믿고 싶다. 사실 베라 파미가는 <15분>(2001)에서의 – 아, 그러고 보니 앤디 워홀의 “미래에는 모든 사람이 15분 동안 유명인이 된다”는 말에서 따온 제목이었구나 – 매우 불쌍한 동유럽계 불법 이민자 역할이 첫인상이었고 그 이후로 제대로 본 출연작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만난 <인 디 에어>에서의 베라 파미가는 아니 원래 영어를 그렇게 잘 하셨던 건가요, 묻고 싶게 만들 정도로 매우 유창하고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무튼 훌륭한 캐스팅이었고 그 역시 <인 디 에어>라는 인생극장에서 또 하나의 인생이었던 동시에 영화의 반전을 이끌어내는 핵심 원동력이 되고 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라이언과 알렉스(베라 파미가)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인 디 에어>라는 영화 전체의 격조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생각지도 못하게 굉장히 훌륭한 카운터 펀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럴 때 나는 좌석에서 몸이 10cm 정도 잠시 뜬 채로 박수를 친다. 인 디 에어드.

<인 디 에어>를 보면 <주노>(2005)를 통해 발견된 재능이 아카데미 각본상을 거머쥔 디아블로 코디 혼자만의 것이 결코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은 다름아닌 <땡큐 포 스모킹>(2005)이다.

George Clooney와 감독 Jason Reitman

영진공 신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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