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글맨>은 톰 포드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크리스토퍼 아이셔우드의 1964년 원작을 각색해서 만든 작품이지만 원작에서 조지라는 이름 밖에 주어지지 않았던 주인공에게 톰 포드 자신의 미들네임인 칼라일과 첫 연인이었던 이안 팔코너의 이름을 따라 ‘조지 칼라일 팔코너’라고 불리우게 한 것을 보면 단순한 영화 연출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던 것은 확실하다. 여기에 톰 포드는 <싱글맨>의 제작비 전액을 자비로 충당하기까지 했다.
영화는 그 내용과 주제에 부합하는 시청각적 스타일을 선택한 것이라 봐야 하겠지만 – 앞으로 몇 편을 더 만들런지는 모르겠지만 매번 이런 연출 스타일만을 고집하기는 어려울 듯 – <싱글맨>은 누가 패션 디자이너 출신이 만든 영화 아니랄까봐, 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남다른 미감과 완성도를 보여준다.

기존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매우 낯선 독창적인 이미지나 내러티브 구조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느 하나 서투르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과, 시점을 달리하는 씨퀀스들을 교차 편집하면서 조금씩 색감을 달리함으로써 관객들이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는 점 또한 <싱글맨>의 외양에서 매우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다.
대학 교수님치고는 지나치게 수트빨이 좋은 조지(콜린 퍼스)를 비롯해서 등장 인물들의 차림새와 살림살이가 비현실적으로 좋아보이는 것이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영화 전체가 마치 한 여름 밤의 꿈인양 몽환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구 소련의 핵미사일이 쿠바에 배치되었다는 소식에 미국 전체가 공포의 도가니에 휩싸였던 냉전 시대의 LA라는 구체적인 시공간적인 배경을 명시하고 있는 작품이 <싱글맨>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직업이 대학교수이거나 특히 대학생인 경우 영화 속 주제와 밀접한 내용의 강의 장면이 들어가곤 하는데 <싱글맨>에 나오는 조지의 유일한 강의 장면 역시 예외가 아니다. 강의는 과제로 내주었던 올더스 헉슬리의 책으로 시작하지만 학생들과 질문과 답변을 하는 과정에서 살짝 격앙된 목소리로 ‘실재하지 않는 이유, 공포감’과 그것이 ‘사회적 소수’를 괴롭히는 원인이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이는 조지가 짐의 부재로 인해 겪고 있는 절망감을 설명해주는 단서가 되어준다.

사회적 소수자로서 사랑했던 이의 장례식에조차 초대받지 못했던 깊은 절망감 역시 주인공의 자살 결심의 이유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조지가 자살하고자 했던 이유를 아마도 본인이 강의 중에 이야기했던 ‘실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감’으로 설명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느 순간 불현듯이 그 공포감에서 벗어나게 되자 조지는 자살하기로 했던 결심을 철회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인생의 아이러니는 조지가 다시 살기로 마음 먹었던 그 순간에 비로소 영원한 안식을 선물하고야 만다. 자기 삶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건 간에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애써 재촉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그외에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놓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 역시 <싱글맨>이 비전문가의 아마추어적인 시도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