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셧다운제와 청소년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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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의 게임이용시간을 국가에서 강제적으로 제한하자는 소위 “게임셧다운제” 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밤 12시 이후에는 청소년 이용자들의 게임접속을 차단하도록 법적으로 규제하자는 것이다. 비록 지난번에는 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이 안건은 조만간 실제로 구현될 기세다.
[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articleid=2010070903264532134&linkid=4&newssetid=1352 ]

어떤 사람들은 이 방법이야말로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게임 과몰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과연 이런 법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실제적으로 어떤 결과가 기대될 것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던가. 뭐든 실제로 저지르기 전에 생각을 해보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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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에 시작되어 1848년에 비로소 마무리된 프랑스 혁명의 근본 이념이 자유ㆍ평등ㆍ박애임은 다들 아실 것이다. 여기서 자유는 이후 ‘선택의 자유’와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되어왔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현대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자체가 마무리되는데 60년이 걸린 프랑스 혁명처럼, 이 자유라는 개념이 사람들의 삶과 사고방식에 뿌리내리는 데도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은 심리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Freud는 인간의 성장에 대한 이론적인 틀을 제시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보기에 우리가 온전한 인간 즉, 성인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모유의 수유, 배변훈련, 도덕성의 습득, 그리고 지식과 기술의 습득이었다. 다시 말해서 영양분을 섭취하고, 자기위생을 관리하고, 양심이 있고 어른 구실하기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만 가지고 있다면 그는 성인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50년쯤 후에 태어난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Erikson은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을 추가했다. 바로 자기정체성identity이 그것이다. 정체성이란 내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왜 이것이 중요하냐하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주체적으로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에릭슨은 우리가 진정한 성인이 되려면 스스로에 대한 자각을 가지고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1856년에 태어난 프로이트와 1902년에 태어난 에릭슨 사이에는 근대와 전근대의 차이가 있었다. 프로이트는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을 중시하지 않았다. 무의식의 힘을 중시한 그에게 자유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더구나 봉건사회에서는 주어진 도덕률에 순응하며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사는 인간이면 충분했다.

반면에 에릭슨에겐 자신이 누구인지를 인식하고 그 인식에 근거해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했다. 그것이 근대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성인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었다.


프로이트와 에릭슨, 둘 사이에는 전근대와 근대의 차이가 있다.

청소년 게임이용시간 제한규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펼쳐놓는 이유는, 이 문제에는 우리가 청소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컴퓨터 게임 중독을 ‘영혼을 파괴하는 병’이라고까지 부른다. 물론 게임 중독에 빠져서 자기 자신과 주변사람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극단적인 사례들을 보자면 이런 표현이 지나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게임이 청소년들의 영혼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것이라 단정하기 전에 그 영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영혼’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봉건시대에는 신이 부여한 인간의 기본 속성인 양심이나 죄책감 혹은 신에 대한 믿음이 결여된 인간을 영혼이 없는 존재라고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근대사회에서 영혼은 무엇보다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주체의식을 의미한다.


물론 도덕성도 중요하고 양심도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행동할 수 없다면, 그는 로봇이나 컴퓨터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는 존재라고 해야 한다. 이는 청소년에 대한 태도에서도 차이를 만든다. 전근대적인 청소년 육성은 엄격한 훈육을 통해 도덕관과 가치관을 내면화시키는 것에 중점을 둔다. 반면에 근대 시민사회의 청소년 육성은 자유의지를 인식하고 다룰 수 있는 성인으로 키우는 것이 목표가 된다.


현대 사회에서 청소년의 인권, 특히 참여권이 중시되는 이유는 청소년에게 자율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며 선택할 권리를 부여하지 않고서는 그들을 자유로운 인간으로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를 경험해본 이들만이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대부분의 규제들이 국가에 의해 결정되는 형태에서 점차 자율규제 방식으로 바뀌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나라의 청소년 정책에도 반영되어 있다. 청소년정책은 초기에는 신체적인 육성이나 청소년 보호 중심의 정책이었으나 1989년에 제정된 『청소년육성법』을 계기로 청소년활동을 강조하는 보다 적극적이고 청소년 중심적인 정책으로 변화되어 왔다. 그리고 이는 청소년들의 권리를 강조한 『청소년기본법』을 통해 좀 더 선진적인 태도로 발전되어왔다. 즉, 우리나라의 청소년 정책은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훈육 중심의 청소년 육성에서 청소년의 자율권을 인정하고 강화함으로써 시민의식과 민주의식을 가진 성인으로 키워내는 방향으로 변화해온 것이다.

 




이 달의 우수게임 시상식 -.-;;;

이제 이 글의 주제로 돌아가자.

청소년 게임이용시간 제한 제도의 핵심은 청소년들의 활동에 강제적인 시간규제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즉, 게임을 언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국가가 부분적으로 청소년 대신 선택을 해주는 것이 이 제도의 기본 목적이다.


물론 청소년들의 수면시간을 보장하고 과도한 게임이용으로 인한 폐해를 막고자 하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미 청소년 게임이용에 관한 여러 가지 법적ㆍ제도적 규제 장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이렇게 과격한 규제를 시도하려는 데는 그만큼 절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이 자유의지를 가진 청소년 육성이라는 취지에 부합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역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2008년에 셧다운 대상으로 지목되었던 게임들

만약 이런 법안이 발효된다면 청소년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의 길이 남을 것이다.


자신의 선택권을 박탈당한 상태로 12시 이후에는 잠을 자거나 혹은 시험공부를 하는 방법이 첫 번째 선택이다. 아마도 잠을 못자고 공부를 할 가능성이 높겠지만 어쨌든 게임은 못한다.


두 번째 선택은 법적 규제를 무시하고 12시 넘어서까지 하고 싶은 게임을 하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청소년들이 미성년자불가 게임에 자기 부모의 주민번호로 접속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것 역시 충분히 가능한 선택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이 두 가지 모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첫 번째 선택은 자유의지를 포기하는 법을 배우는 결과가 될 것이고, 두 번째 선택은 범법을 배우는 결과가 될 것이니 말이다.


나는 우리 청소년들이 짜투리 시간에 마땅히 다른 할 거리가 없어서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짜릿하고 즐거운 활동들을 하다가 가끔씩 게임도 할 수 있는 삶을 누리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게임 시간 규제가 아니라 다양한 청소년활동프로그램의 제도화와 함께 지나친 입시경쟁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지만, 어쨌든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물론 나 역시도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12시가 아니라 10시 이전에는 잠자리에 들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강제가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이길 바란다.


혹은 최소한 부모와 자녀간의 약속이나 부모의 권위에 의해서 이런 일이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우리는 모두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자유로운 시민이다. 자신이 혹은 자기 자녀가 몇시까지 게임을 할지 조차 국가의 규제에 맡기겠다는 생각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겠다는 의사표현과 동일하다.


우리가 청소년들의 ‘영혼’을 걱정한다면 특히 더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영혼이 파괴된다는 것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인데, 그것은 게임 중독에 빠지지 않더라도 그저 강제를 당연히 여기는 사회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 게임셧다운제를 실시하는 국가는 태국과 중국이다.
태국이 어떤 나라인지 아시나… 중국은 아실테지?
지금 우리가 태국하고 중국 따라하잔 얘긴가?



  

영진공 짱가

“게임 셧다운제와 청소년의 영혼”의 1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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