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트 로커”, 전쟁과 인간만 달랑 남았구나






지난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한 6개 주요 부문의 상을 수상한 작품이죠.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에게는 첫번째 여성 감독상 수상자로서의 영예까지 안겨다주기도 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전 부인 – 들 중에 하나 – 으로도 알려진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대표작은 역시 <폭풍 속으로>(1991)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패트릭 스웨이지와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이 아드레랄린 넘치는 범죄 액션물은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코미디 <뜨거운 녀석들>(2007)에서 대놓고 찬미될 만큼 줄거리와 연출 스타일에 있어서 남성적인 기운으로 가득한 작품이었어요.

그외 <블루 스틸>(1990)이나 <스트레인지 데이즈>(1995) 역시 여성 감독의 영화에 대한 편견을 거부하는 선굵은 스토리라인과 액션 장면들로 매우 인상적인 작품들이었습니다.











아카데미가 작품상을 안겨준 이라크 전쟁 소재의 영화라고 하더니 과연 이제껏 보아온 이라크 전쟁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대부분 이라크 전쟁 영화라고 하면 전쟁 반대파의 목소리를 담아 그 허구성이나 복잡한 미국 내 또는 국제 정치의 맥락 위에서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었죠. 그런데 아카데미의 지지를 얻은 이 <허트 로커>라는 영화는 이라크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는 있으되 굳이 이라크 전쟁이어야만 했을 이유가 없는, 매우 일반적인 전쟁 영화 – 말하자면 전쟁과 그 안에 몸 담고 있는 인간에 관한 매우 미시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이라크는 없고, 오직 전쟁과 인간만 남아있는 작품이랄까요.



물론 영화의 주요 소재가 되고 있는 이라크 저항군의 폭탄 테러는 후세인 정권이 붕괴되고 그 안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이라크 내의 현재 상황과 매우 밀접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라크 전쟁의 의미를 캐묻기 보다는 등장 인물들이 전쟁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듯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라크 전쟁을 소재로 하기는 하되, 이라크 전쟁의 정치적인 맥락을 배제함으로써 좀 더 전통적인 전쟁 영화로 비춰지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등장 인물들이 그 안에서 영웅 놀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괴로워들 하고 있으니 반전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까지 볼 수도 있기는 하겠네요 – 그럼 안그런 전쟁 영화가 어디 있겠느냐고 하실런지 모르겠지만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2009)도 전쟁 영화이기는 하되 그런 느낌이 훨씬 덜 했던 작품이었던 거죠.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허트 로커>는 거의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질 정도로 매우 사실적으로 전쟁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가이 피어스와 랄프 파인스조차 영화 속에서 단명하는 역할을 맡아야 했을 만큼 감독은 어느 누구든 눈 깜빡 할 사이에 바로 죽어나갈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폭발물 제거반인 주인공들을 따라다니는 작품이니 서스펜스의 수준은 거의 공포 영화가 따로 없을 정도이지요. 그러다 임무를 잘 마치고 BOQ에 ‘살아’ 돌아온 주인공들이 노는 꼬락서니는 영락 없는 <폭풍 속으로>에서의 아드레랄린 과다 상태의 남성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제임스 상사(제레미 레너)는 일종의 전쟁 중독증이 아닐까 싶은 인물로 그려지는데, 남들은 로테이션 근무가 무사히 끝나기만을 바라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남은 삶의 의미는 한 가지 밖에 없다며 처자식을 내버려두고 다시 전쟁터로 돌아가기까지 합니다.




자연스럽게 전쟁의 비극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고, 배우들의 연기나 사실적인 연출에 대해서는 특별히 이견을 달기 힘든 잘 만들어진 영화인 것은 분명하지만 <허트 로커>를 통해 특별히 어떤 메시지를 건져낼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모든 영화에서 명시적인 메시지를 찾고자 하는 것 만큼 스스로 영화의 재미를 제한하는 어리석은 짓이 따로 없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적어도 이라크 전쟁을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 더군다나 매년 그 결과에 주목하게 되는 유명 영화 시상식의 작품상과 주요 부분을 휩쓴 화제작에서 내가 알고 있는 전쟁에 관한 공감대를 얻지 못한다는 건 아무래도 불편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허트 로커>에서 묘사된 전쟁이요? 당연히 참혹합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 참혹하지 않았던 전쟁이 어디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 폭발물 제거반이라서 특별한 영화가 된 것인가요, 아니면 이라크에 관한 직설 화법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이라크 전쟁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방법을 알려준 작품이라서 상을 받은 것인가요.








영진공 신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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