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일렛”, 영혼까지 어루만져주는 영화의 경지





세상에는 2시간의 재미를 위해 만들어지는 영화들이 있고 – 그 중에는 그나마 충분히 재미있지도 못한 경우가 많지만 – 단순한 재미를 넘어 훌륭한 메시지와 감동을 전해주기까지 하는 영화들도 있다.

그런데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는 재미와 감동 뿐만 아니라 이제는 보는 이들의 영혼까지 어루만져주는 작품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이런 평가는 지극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만들어진 영화가 재미 있다/없다, 내용이 좋다/별로다, 감동이 있다/없다를 이야기할 때에조차 객관성과 주관성의 이슈가 있을 수 밖에 없는 판국에 무슨 영혼이 어쩌고 한다는 건 그야말로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영혼이라는 것이 주관적인 영역에 해당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니만치 나 역시 부담없이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에 관한 주관적인 생각을 털어놓고 싶은 것이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도 있는 판국에 영혼을 위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라는 표현에 특별히 심각해질 이유는 없다고 본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감독의 전작 <카모메 식당>(2006), <안경>(2007)과 비교할 때 이번 <토일렛>은 미국의 모처를 배경으로 – 실제 로케이션은 토론토에서 진행했다지만 내용상의 설정은 미국이다 – 대부분의 대사가 영어로 진행되며 주인공들 역시 북미에서 캐스팅된 배우들이라는 외형적인 요소들 외에도 몇 가지 변화의 시도가 눈에 띄는 작품이다.

가족이라는 주제를 적극적으로 끌어오고 있는 면에서도 그렇고 클래식 음악을 사용하면서 작품 전반의 격조와 무게감을 조금씩 끌어올리고 있는 연출 의도가 느껴진다. 영화의 중심은 일본인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그 이전까지 생면부지였고 말도 통하지 않는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 삼남매의 이야기이지만 자세하게 소개되지도 않는 죽은 어머니와 할머니의 관계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요소가 된다.

일본 영화에서는 이따금 등장 인물이 죽은 이후에 강한 인간적인 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장면이 등장하곤 하는데 <토일렛>에서는 할머니가 죽은 이후에 그 유언에 따라 재를 어머니의 무덤 위에 뿌리는 장면 – 이제껏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무척 감성적인 연출이랄까 – 이 그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토일렛>을 통해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가 일순간에 확 바뀌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전작들이 슬로우 라이프 선언문에 가까웠다면 이번 <토일렛>은 삶의 고민거리들을 좀 더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으면서 그에 대한 해결책을 슬로우 라이프가 아닌 다른 곳에서 – 낯선 이국이나 외딴 섬이 아닌 내가 살던 그 집안에서 – 모색하고 있을 따름이다.

4년째 공황 장애를 겪고 있던 모리(데이빗 렌달)는 어머니가 남긴 낡은 재봉틀로 직접 치마를 만들어 입고는 다시 피아노 콩쿨에 나설 수 있게 되고 가짜가 아닌 진짜의 삶을 살고 싶어하던 막내 리사(타티아나 마스라니)는 Air Guitar라는 아이러니한 방법을 통해 – 놀랍게도 실제 핀란드에서 매년 개최되고 있는 대회가 있다 – 자기 정체성을 찾게 된다.

프라모델 오타쿠에 연구원으로 살면서 남들과 접촉 없는 삶을 추구하던 둘째 레이(알렉스 하우스)의 경우 남겨진 형과 동생, 그리고 생면부지의 할머니 때문에 처음에는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게 되는 인물이지만 그 역시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구원할 수가 있게 된다.


 




세 명의 남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열어주는 인물은 역시 일본인 할머니(모타이 마사코)다. 영어를 한 마디로 못하고 화장실에서 나올 때마다 깊은 한숨을 내쉬는 이 낯선 존재에 대해 냉정한 성격의 레이는 자신들의 친할머니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까지 하지만 – 갖고 싶은 프라모델을 포기하며 진행한 유전자 검사를 통해 레인은 자신에 대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 결국 말도 안통하는 자신의 손자들 각자에게 변화의 계기를 제공해주게 된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에 개근으로 출연하고 있는 유일한 배우 모타이 마사코는 이번 <토일렛>에서 대사가 단 두 단어 – 두 문장이나 마디도 아니고 정말 딱 두 단어만 하는게 전부다 – 에 불과하지만 그 존재감이란 감독이 직접 ‘나의 뮤즈’라고 하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대단하다.

<카모메 식당>과 <안경>에서도 모타이 마사코가 연기한 인물들은 모두 외딴 섬과 같은 존재였으나 이번 <토일렛>에서는 드디어 부모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고 이는 작품 전체의 변화로까지 받아들여질 수 있을 만큼 상당한 차이점으로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영화 상영 후에 이어지는 GV, 즉 감독이나 출연자들이 나와서 갖는 관객과의 대화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이번 <토일렛>은 미리 알고 갔던 것은 아니었지만 영화 상영 후에 이어진 GV에 흔쾌히 참여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상영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영화를 보고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GV까지 먼 발치에서나마 지켜보았던 과정 전체가 영화 <토일렛>에 대한 나의 감상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이번 영화는 작품 그 자체만이 아니라 영화를 접했던 전체적인 경험으로서 오래 기억에 남겨둘 만한 좋은 추억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가 좋은 이유 중에 하나는 작품 자체가 남다를 뿐만 아니라 이것을 심지어는 유치원생들까지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혹시 이 영화를 보는 중에 주변에서 어린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더라도 어색하게 느끼지 말아야 할 것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는 데뷔작 <요시노 이발관>(2004)부터 연소자 관객들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누가 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만들면서 그 안에서 관객 각자의 몫을 찾아갈 수 있게 하는 영화이니 이거야 말로 성서나 불경에서나 발견할 수 있었던 아주 높은 수준의 경지가 아니겠나 싶다.



영진공 신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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