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어색함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숑 …





필름이 유실되어 실제로 본 사람은 몇 되지도 않는다는 이만희 감독의 1966년 원작이나 김수용 감독의 1981년 리메이크작, 그리고 이번 김태용 감독의 두번째 리메이크는 모두 감옥에서 잠시 나온 여자와 도망자 신세인 남자의 짧은 사랑 이야기라는 기본 골격을 공유하고 있다.

내가 본 영화는 그 중 세번째인 김태용 감독의 <만추>가 전부라서 세 작품 간의 비교는 불가하다. 설렁 세 작품을 모두 보았다고 한들, 그런 비교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다. 원작이 따로 있었던 리메이크 영화라 해도 지금 내가 본 새 영화가 마음에 쏙 들어서 원작에 대해 특별히 궁금할 일조차 없는 매우 배부른 상태가 되는 편이 누가 뭐래도 최선인 것이 아니겠나.










김태용 감독이 연출한 이번 세번째 <만추>는 짙은 안개가 인상적인 시애틀을 배경으로, 현빈과 탕웨이를 캐스팅한 언어 삼국지 영화로 만들어졌다. 중국계 이민자인 애나(탕웨이)는 가족들과 중국어로 이야기하고, 미국에 온지 2년되었다는 훈(현빈)은 전화를 할 때에는 한국어를 하다가 애나와 이야기할 때는 영어를 사용한다.

기왕이면 영화 속에서도 영어를 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만추>의 사실감을 망쳐놓았다고 지적한 달시 파켓의 글을 읽었는데, 일단 탕웨이의 경우 워낙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자란 것으로 나오기 때문에 중국어와 영어에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현빈이 역시 영어가 아주 유창한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전혀 못하는 것도 아닌 “(원래 영어 만큼은 틈틈히 해두었었는데) 미국에 온지도 2년이나 되어 이제 현지인 서비스도 해볼까 생각할 만한” 정도라고 받아들일 수 있어 두 배우가 구사하는 언어 자체가 특별히 작품의 완성도에 큰 지장을 주었다고 생각하지는 않게 된다.




달시 파켓은 영화 속 두 배우가 구사하는 영어에 관한 문제점 외에도 김태용 감독의 “도가 지나친 창조성”에 대해 지적을 하고 있는데 이 점은 충분히 동의를 할 수가 있는 부분이다. 특히 놀이공원에서의 환상 시퀀스가 지나치게 길게 늘어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을 달기 어려울 만큼 매우 정확한 지적이라 생각한다.

전체 영화 속에서 이 장면이 차지하는 미학적 중요성이 정말 너무나 크다고 판단해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이 장면을 찍기 위해 들였던 노력이 너무 험난했기에 냉정하게 끊어내질 못했던 – 연출자들이 편집권까지 갖고 있는 상황에서 쉽게 벌어지는 지극히 초보적인 실수 –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어쨌든 이 부분은 지나치게 길게 늘어진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연출자의 판단 착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정지우 감독의 <사랑니>(2005)에서 여주인공이 남자에게 키스를 하면서 몸이 공중으로 서서히 떠오르던 씨퀀스처럼 너무 길지 않게 처리되었으면 훨씬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고 마는 것이다.




사실 <만추>의 어색함은 비단 놀이공원에서의 환상 씨퀀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현빈이 연기한 훈이라는 캐릭터와 그것을 연기한 현빈의 능력 자체가 어색함의 출발점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추>라는 텍스트를 김태용 감독이 자기화하는 과정에서 취한 전략 중에 하나가 놀이공원에서의 환상 씨퀀스에서 보여지는 창의성 – 매우 멋진 마법의 순간이거나 오히려 보는 이의 속을 느글거리게 만드는 어색함이거나 – 일텐데 이는 현빈에게 맡겨진 훈이라는 캐릭터에도 반영이 되어있다.

훈이라는 인물은 제임스 딘과 미키 루크의 계보를 이어보겠다는 듯이 보이는 외모와 달리 그저 철부지라고 할 수도 있는 일종의 어린왕자 캐릭터인데 이것이 이번 <만추>에서 성공적으로 형상화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훈의 어색함은 곧 애나와의 관계의 어색함으로 연결된다. 귀신에 들린 것 마냥 지나치게 굳은 표정의 탕웨이도 아쉬웠지만 그런 탕웨이의 애나에게 무턱대로 찝적대면서 상당한 호의와 친절을 베풀고 있는 현빈의 훈이 연기는 더더욱 아쉬울 따름이었다. 시애틀을 배경으로 하는 탕웨이 주연의 중국영화 속에 한국의 트렌디 드라마 주인공을 그대로 꽂아놓은 듯한 느낌으로 시종일관했다고 생각한다.




<만추>에 대한 김태용식 재해석은 애초에 원했던 만큼 잘 나와주지는 못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 차라리 재해석을 하지 말고 원전 그대로의 퍽퍽한 느낌을 살렸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 영화 자체는 그런대로 따라가는 데에 큰 무리는 없는 편이다.

이래저래 어색한 와중에도 현빈이든 탕웨이든, 자신이 쉽게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을 하나를 잘 따라갈 수만 있다면야 나름 흥미를 잃지 않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이유는 충분히 갖춘 작품이라 생각한다.

부산 국제영화제 상영 때의 반응이 워낙 안좋아서 개봉일자를 하염없이 미루고만 있던 상황이이었다는 건 지금에야 알았는데 영화가 또 그렇게까지 괴발개발로 막 만든 건 결코 아니라서 현빈의 주가 급상 덕분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개봉이 되고 또 의외로 많은 관객들이 보러 가는 와중이라는 건 참 다행한 일인 것 같다.



영진공 신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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