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도 추억 때문에 … 내 마음 속의 롯* 월드




추억은 애정을 지속시킨다.

그게 아니라면 세상 어느 도시보다 내가 서울을 좋아한다는, 전국 어느 곳보다 서울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설명될 수가 없다.

이토록 공기가 안 좋고, 이토록 날씨가 안 좋고, 구석 구석 잘 정비되어 가는 모습은 겉만 번지르르한 유치찬란한 팬시상품처럼 보이는, 이런 얄팍한 미감을 자랑하며, 때려 부수고 지어대는, 이 사람을 쥐어 짜는 불안정한 이 도시가. 대체 왜 좋겠는가.

서울은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다. 며칠 정도 여행으로 서울을 비우는 것을 제외 하고는, 이 도시를 떠나본 적이 없다. 늘 나의 생활 근거지는 서울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한산한 강남대로를 따라 멋없는 샛자주색 시내버스를 타고 국민학교를 다녔고, 밤사이 잔뜩 뿌려진 나이트 클럽 전단지가 채 치워지지 않은 강남역길을 걸어 중학교를 다녔다. 자율학습을 빼먹고 정동길을 거닐고, 주말이면 광화문 KFC에서 치킨을 사먹는 것을 큰 낙으로 삼으면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지루한 대학시절의 통학길엔, 술기운을 빌어 지하철 역이름으로 당시 유행하던 허무한 이행시 짓기(예를 들어 “잠실”역이라고 하면, “잠. 잠시 쉬었다가자. 실. 실어.” 이런 식의 저속하고 유치한 이행시 짓기 말이다.) 하며 자지러지게 웃기도 했다. 아무리 서울이 변하고 또 변한다지만 지저분한 강남거리와, 그래도 초여름이면 찬란한 에메랄드 빛을 안겨주었던 정동길과, 책과 예쁜 문구류를 보물창고처럼 간직하고 있던 교보문고, 저렴한 술집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학교 앞 골목 등이 기억과 추억을 지배하여 서울에 대한 더 없이 큰 애정을 유지하게 해 주는 것이다.

실은 롯데월드 얘기를 하려고 이리도 장황하게 말을 꺼냈다. 어제 처음으로 아이와 함께 롯데월드에 갔다. 롯데월드. 키치(Kitsche) 서울의 축소/집약판 같은 곳. ‘모험과 신비가 가득한 나라. 모두가 꿈꾸는 그 곳’이라고 노래하지만, 사실은 돈벌이와 장삿속이 가득한 나라, 모두가 지갑을 열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상업적인 그곳. 형형색색의 유럽흉내를 낸 가짜 건축물이 그 싸구려 색채를 자랑하며 가짜 질감과 싸구려 광택을 자랑하는 그 플라스틱 도시. 그 근처에 살 때는 그 곳이 쏟아내는 소음과 빛 공해에 눈살을 찌뿌렸던 그곳을. 나도 모르게 그리워 하고 또 아이와 함께 찾아가게 되는 것을 보면서. ‘아. 추억이 애정을 지속시키는 구나.’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기록을 찾아보니, 롯데월드는 1989년에 개관했다. 그렇다. 한 때 ‘너 롯데월드 가봤어?’가 초등학생들의 뻐기기 레파토리였던 적이 있었다. 한 동안 마음 속으로 부러워만 하다가 (부모님이 놀이공원을 데리고 가주기를 기대하기에는 약간은 많은 나이였다) 정말로 무료하고 추운 겨울 방학 어느날 갑자기, 오빠가 롯데월드를 같이 가자고 제안했을 때 얼마나 신이 났는지.

부모님과 같이 가지않아도 지하철 몇 정거장으로 갈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좋았는지. 잠실역에 내려서 롯데백화점 앞의 트레비분수를 보았을때 얼마나 황홀했는지 (훗날 진짜 트레비분수를 보고, 잠실 롯데의 그 트레비분수가 얼마나 동네목욕탕같은 분위기인지를 깨달았지만), 스페인해적선이 얼마나 다른 동네 바이킹보다 크고 무서웠는지, 신밧드의 모험이나 지하탐험보트(당시에는 정글탐험보트가 아닌 지하탐험보트였음)가 얼마나 신기했는지. 겨울이었는데도 얼마나 따뜻했는지. 아직도 그 기억이 난다.

롯데월드는 중학교 때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 학원 같은 반이었던 애들과 아주 친해서 잘 몰려다녔었는데(부모님들도 우리가 친한 걸 모두 알고 묵인(?)했었다.) 방학특강 수업이 끝나고 나면 가끔은 선생님과, 또 가끔은 우리 끼리 방학마다 한번씩 롯데월드를 갔다. 주로 추억이란 놀이기구가 황홀했던 기억보다 한두시간 기다리는 것인 기본인 인기 놀이시설 앞에서 기다리면서 묵찌빠를 하고, 제로를 하고, 벌칙으로 손목이나 딱밤을 때리기도 하며 평소 학원에서는 해보지 못한 놀이에 관한 것들이다. 후렌치레볼루션이나 지하탐험보트같이 둘씩 앉는 놀이기구를 타게 되면 혹시나 남몰래 좋아하는 그애와 나란히 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기대감과 함께.

중3 겨울방학. 모든 애들이 다 집에 돌아가고, 우연인지 의도인지 9시 그 애와 나만 남아 아이스링크를 내려다보며 레이저쇼를 기다리고. 주위가 어두워지고 천장의 가짜별이 반짝반짝하고 레이저가 황홀한 나비문양을 만들어 낼 때, 짐짓 가만히 내 옆머리를 귀 뒤로 꽂아주던 서툰 그 애의 손길과, 말할 수 없이 두근 거렸던 내 심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고 레이저쇼가 다 끝날때까지 한마디도 나누지 못하고 끝내 밝은 지하철역으로 말없이 발길을 돌리던 순진한 두 사람이 생각난다.

첫사랑과 첫 데이트를 했던 곳도 롯데월드였고, 지방 출신이던 친구가 군대가기 전날 친구들과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우르르 몰려갔던 곳도 롯데월드였다. 결혼하고 미국에서 살던 언니가 첫아이를 얻고 귀국했을 때 같이 갔던 곳도 롯데월드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마지막으로 롯데월드를 갔던 것은 신입사원 시절이었다. 옆팀 신입사원이 뜬금없이 공짜표가 생겼다며 롯데월드를 같이 가자고, 휴일날 집앞까지 우리 집 앞까지 자기 차로 데리러 와서, 같이 하루 종일 잘 놀고 돌아오는 길에 됐다는 데도 극구 로리 인형까지 사 준 일이 있었다. 그게 롯데월드를 갔던 마지막이었고, 시작인 줄 알았던 그 사람의 데이트 신청도 마지막이었다.

오랜만에 가본 롯데월드는 뭐랄까. 더 내공이 강해진 마녀의 숲 같달까. 오래된 놀이기구는 꾸준히 윤색되어 초창기보다 채도가 더 높아졌고, 다닥다닥 테트리스 쌓듯 조그마한 공간을 어떻게든 돈벌이에 사용하겠다는 철저한 공간활용 능력이 더욱 대단해진만큼 가짜의 냄새는 더더욱 강해졌다.

나는 어제 또 다시 이 가짜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과의 추억을 만들었다. 그렇게 많이 롯데월드를 갔지만 회전목마를 탄 건 처음이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500원 넣는 자동차만 타 보던 아이의 눈은 휘둥그레졌고, 터지는 아이의 탄성은 그 무엇보다 진심이었다. 궤도를 뱅뱅 도는 그 단순한 자동차에 타서도 아이는 운전대를 자기 맘대로 돌려도 된다는 자유에 탄성을 질렀고, 내리면서 ‘아쉽다아~’를 연발했다. 그렇게. 아마도 이 말도 안되는 공간에 대한 애정은 지속될 것 같다.


영진공 라이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