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트레져”, 그게 왜 니네 나라 보물들이냐고




역사학에 있어 정사는 역사 흐름이 대강 이래왔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것이 정식으로 통용된다, 라는 것을 확인하는 데에 유용하게 써먹기 위해 공부하는 거고, 실질적으로 흥미로운 자료들은 각종 다양한 야사들과, <음모론>이다.

정사의 모든 역사 기술이 승자와 남성, 권력자들을 중심으로 기술되고, 그들의 공적이 찬양되는 데에 반해, 야사는 이들 역사의 주인공들의 다양한 이면들을, 그리고 특정 역사씬에서 그들만큼이나 중요하나 그들의 그늘에 가려진 다양한 패자와 약자들의 면면을 파악할 수 있다는 데에서 매우 유용하다.

음모론은 그 특유의 재미와 호기심 충족은 물론이고 권력의 다양한 속성들을 엿볼 수 있으며, 때로 야사들도 의도적으로 삭제한 기록들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데에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음모론을 신봉함에 있어 한 가지 위험한 점이라 한다면 권력 위주의 사고방식인데, 말하자면 정사 중의 정사, 그것도 공식 기록을 왜곡할 정도의 승자 중심 역사관과, 정반대로 패자 중심의 화법을 통해 ‘실질적 권력집단’을 상정하는 것은, 승자 중심 역사관과 너무나 똑같이 소수권력 위주의 사고 패러다임을 공유한다는 것. 그러나 어느 시대에든 음모론이 통용되는 것은… 음모론이 사실로 드러난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호사가들의 재미와 호기심은 물론이고 상상력까지 만족시킨다는 점일 터. 나 역시 음모론 신봉자는 아니어도 음모론 enjoyer 정도는 된다.



서구에서 성당기사단, 프리메이슨, 카발라, 그노시즘을 비롯한 각종 은비학에 관한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속성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수구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보수적인 개신교 하에서 지속적으로 ‘사탄숭배주의’로 지탄받는다는 사실(실제로 ‘프리메이슨’으로 구글링을 해보라. 제대로 된 자료들이 아닌, 보수 기독교도의 ‘비난을 위한’ 악의적 자료들이 가장 먼저 튀어나온다.)과, 이러한 소위 ‘이단’ 혹은 ‘사탄숭배주의’라 불리우는 것들에 기독교적 색채가 강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독교가 유럽의 정신세계를 ‘점령’하면서 쫓겨나고 박해받을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고대 지식들과 민간전승 지식들이 기독교적 감수성과 일부 결합하면서 살아남은 것의 흔적, 그리하여 바야흐로 ‘기독교의 세계통일 기도’의 후유증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또 한편으로 이런 은비학적 전통일 터이다. (그리고 미국과 한국 공히, 유럽의 마녀사냥과 미국 뉴잉글랜드에서의 마녀사냥이 여전히 ‘정말로 마녀가 존재했기에’ 벌어진 일이라 철썩같이 믿고 있는 이들이 아직 꽤 남아있을 거라 자신있게 추측할 수 있다.)

은비학의 깊이와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자료들 중 가장 대중적인 것으로는 아무래도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를 꼽을 수밖에 없다. 『내셔널 트레져』의 은비학?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한 영화에서 그런 걸 기대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쯤은 모두 다 충분히 짐작하고 있으리라. 그냥,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두루뭉실하게 알려져있는 은비학의 기본들 중 선정적 호기심의 가장 얄팍한 것들만 모으고 모아 이것저것 비빔잡탕을 해놓을 수밖에 없다.

성당기사단과 십자군전쟁, 프리메이슨 같은 거 하나도 몰라도 이 영화를 보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다. (나도 모른다.) 이건, 그냥 액션 어드벤처 영화니까. 다만 어릴 적 매우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천리안’이나 ‘피라미드’, ‘프리메이슨 기호’ 같은 것들이 모두 사탄숭배를 위한 것이라는 교육을 철두철미하게 받고 난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더할 수 없는 “호러영화”가 될 수는 있겠다.

과거 인디애나 존스가 성가시기만 한 여자, 덜 성가시지만 그래도 보살펴줘야 하는 어린애를 달고 다니며 거의 모든 활약은 혼자 했던 것과 달리, 『내셔널 트레져』에서는 여자도 남자 동행도 나름대로 한몫 한다. 여자동행은 지적인, 역사에 대한 지식 부분을, 남자동행은 그 외의 컴퓨터, 운전, 전기/물리학적 지식 부분을.

아, 악당도 등장해 주셔야지. 이번 악당은 다른 문화권의 나름대로 수호자를 지독한 몰이해와 편견으로 뒤집어씌운 존재가 아닌, 보물에 욕심이 먼 <같은 미국인>이자 <부자>이다. 미워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래도 좋은 배우인 건 변함없는 숀 빈이 기꺼이 출연해 낭비당해 주신다. 비록 각본구조상 악당인 션 빈이 <보물을 볼 수 있는 눈>, 즉 <안경>의 존재에 대해 알래야 알 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전화로 <안경도 꼭 갖고 오라>며 협박하는 신통력도 발휘해가면서 말이다.

션 빈이 맡은 ‘이안’이란 캐릭터는 멀리서도 이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는 신통력의 소유자거나, 스크린 안과 밖,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캐릭터인지도 모른다. (대단히 실험적인 영화 캐릭터 창조방식이 아닌가. 영화에 대한 정의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물을 발견하고서 보니 맨 처음에 딱 눈에 띄이는 게 수많은 이집트 파라오의 미이라들이던데, 그게 왜 미국이라는 나라의 ‘내셔널 트레져'(국보급 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대사를 통해 이 민망한 제목의 느끼함과 서구유럽의 오랜 역사에 걸친 <약탈>의 민망함을, 조금 걷어내려 노력해 주고 계신다. “세계 모든 사람들의 보물이에요, 세계 모든 박물관에 나눠줘야죠.” 참, 인심 한번 후하게 쓰신다.

화끈한 액션이나 숨죽일 만한 스릴/ 서스펜스도 없고, 추리의 재미도 없고, 그렇다고 배우들이 매력적이지도 않은 (라일리는 쫌 귀여웠다), 있는 매력도 없애버리는 느슨한 이 보물찾기 영화를 보자니, 제리 브룩하이머도 참 많이 늙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존 터틀타웁은 역시 사람과 사람간 잔잔하고 소소한 감정흐름을 따뜻하게 엮어나가는 영화들이 맞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위에서 내가 좀 비아냥대긴 했지만, 우리를 열광시켰던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나 젊은 시절 셜록 홈즈를 등장시킨 『피라미드의 공포』 등의 기존 어드벤처물을 생각해볼 때, 분명 정치적으로 ‘나름대로 겸손해진’ 이데올로기를 발견할 수 있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건 그만큼 발전일 수도 있고, 미국의 위기감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솔직하고 분명하게 말하자면, 영화적 만듦새와 재미는 분명 퇴보했다.

영진공 노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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