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 달러 베이비”, 꿈이 없는 사람은 꿈을 가진 사람을 알아 본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이우진은 이런 말을 한다. “이제 나는 무슨 낙으로 살죠?”
그래, 인생에 낙이 없으면 뭐하고 살지? 각자의 대답이야 다르겠지만 극 중에서 이우진은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예전의 “이산가족 상봉”이나 “꼭 한번 만나고 싶다”를 보다 보면 거기 나오는 어르신들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그런 건가? 더 사시면서 행복을 누리고 싶다고 하는 건 너무 욕심인 건가.

“매기(Maggie Fitzgerald)”는 서른 두 살이 되었다. 집안이 넉넉하지도 않고 그다지 뛰어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살아온 그녀이지만 그래도 그녀에겐 꿈이 있다.

그래서 그녀는 손님이 남긴 고기를 몰래 집으로 싸가지고 가 허기를 때우면서라도 자기의 꿈을 위해 돈을 모았고, 아무리 무시를 당해도 자기의 꿈을 이루어주리라 믿는 이를 계속 찾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버스 안에서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참으로 해맑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에디(Eddie “Scrap-Iron” Dupris)”는 퇴물복서다. 한때는 잘 나갔지만 이제는 복서시절의 상처로 한쪽 눈이 먼 채 체육관 청소를 하면서 산다. 잘 곳도 없고 의지할 데도 없어서 체육관 한 켠에서 생활하면서 그렇게 산다. 그에겐 꿈이 없다, 아니 꿈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에겐 낙이 있고 여한도 있다.

그의 낙은 꿈이 있는 이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고, 그들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겐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마지막 경기를 해보고 싶다는,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한이 있다. 그래서 그는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에디”는 “매기”를 알아본다. 자기에겐 없는 꿈을 가지고 있기에 그는 그녀의 존재감을 금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도움을 주고자 애쓴다. 그게 그의 낙이니까.

“매기”는 그저 앞을 향해 뛰어갈 뿐이다. 꿈을 좇아 뛰는 그녀에겐 그 꿈을 이루고 나면 다시 무엇을 좇아야 하는지, 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떡해야 하는지 등의 고민은 없다. 꿈을 이루려면 뛰어야 하고 그렇게 뛰는 게 즐거울 따름이니까.

그렇게 “매기”는 꿈을 이룬다. 딱히 그녀가 원했던 모든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자기의 삶에 그만큼이라도 찾아와주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하지만 그 꿈은 대가를 요구했고 그녀는 그걸 치러야 했다.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아니 남으로 하여금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면서 그녀의 꿈보다 더 크고 탐스런 걸 얻는 이도 많지만 “매기”는 그런 건 크게 억울해 하지 않는다. 어차피 나의 꿈은 내 것이고 나는 그걸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거니까.

“에디”는 “매기”가 꿈을 이뤘다는 걸 안다. 대가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꿈을 못 이룬 그이기에 그녀가 이룬 꿈을 알아본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꿈을 이룬 대가로 더 이상은 꿈을 갖지 못하게 되었기에 “에디”는 그런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할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낙도 없고 여한도 없는 그녀가 어떻게 살아갈지 그는 알아채는 것이다.

지금 당장 누군가가 “당신은 무슨 낙으로 사는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무런 답을 적지 못할 것이다. 언제쯤 그 답을 적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오던 나의 등 뒤에서 어느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정말 재미 없다. 너무 실망이야 …”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한편 그 분이 부럽기도 하였다. 그 분은 아마도 아직 삶 속에서 쓰라린 아픔이나 꿈의 절실함을 경험해 보지 않았으리라 제멋대로 생각하고 그래서 이 영화가 그닥 감동적이지도 재미있지도 않게 느껴졌으리라 내멋대로 해석해서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부러워하면서 걸어 나오던 내 머리 속에는 내내 “매기”가 버스 안에서 짓던 미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꿈을 바라보며 아무런 꾸밈없이 해맑게 웃는 그 미소가.

영진공 이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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